— 보람과 사명으로 다시 하루를 시작하며
1. 일의 시작은 가벼웠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저 가르치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아이들이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완성할 때마다
작은 기적을 보는 것 같았죠.
그때의 나는 ‘보람’이라는 단어 하나로 충분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하루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그저 좋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즐거움 위로 묵직한 무게가 내려앉았습니다.
'나 때문에 공부하기 싫다고 하면 어떡하지.'
‘혹시 내가 틀리면, 이 아이의 길을 막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알았습니다.
이 일이 단순히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에 닿는 일’이라는 것을.
그 깨달음은 내게 책임이라는 단어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이, 조금씩 나를 바꿔놓았습니다.
2. 이 일을 하는 의미는 보람과 사명감 입니다.
얼마 전, 이상한 꿈을 꿨습니다.
누군가가 내게 말했죠.
“내일이면 당신은 죽습니다.”
그런데 꿈속의 나는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죠.
그리고는 평소처럼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수업이 끝난 뒤에는 평소처럼 글을 썼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 하루처럼 그렇게 보내고 잠들었습니다.
그렇게 꿈에서 깼는데, 제 자신이 너무 웃겼어요.
나는 내일 죽는다는 말을 듣고도, 어김없이 출근했더군요.
그 꿈이 며칠 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왜 도망치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날 내가 한 일들이 바로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습니다.
가르치고, 글을 쓰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
그게 곧 나였죠.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피로와 반복 속에서 의미를 잃을 때도 있었고,
때로는 과정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일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 안에는 보람과 사명감,
두 가지의 다른 온도가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누군가가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느끼는 따뜻함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그 길을 지켜야 한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었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보람은 감정이고,
사명감은 방향이라는 걸요.
보람이 나를 다시 강의실로 데려오고,
사명감이 그 자리에 나를 서 있게 합니다.
그 두 마음이, 내가 오늘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3. 일은 나를 지치게도, 단단하게도 만들었습니다
일이란 참 이상합니다.
나를 지치게 만들면서도,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건 언제나 일이었습니다.
종종 생각합니다.
사명감이란 대단한 게 아니라,
그저 내가 맡은 자리를 지키는 일에 가깝다고.
그 자리를 버티는 동안
일은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늘 고맙지만은 않았습니다.
지칠 때도 많았고,
억울한 날도 있었고,
모두가 쉬어갈 때 혼자 남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시간을 지나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더 넓어져 있었습니다.
그게 아마 ‘일이 사람을 키운다’는 뜻이겠죠.
4.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이 힘든 이유는 언제나 일 자체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람 사이의 온도, 말 한마디,
그 미묘한 공기가 하루를 무겁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 지칩니다.
하지만 사람으로 다시 버팁니다.
커피 한 잔 건네며 “오늘 좀 피곤해 보여요”라고 말해주는 동료,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고 웃어주는 한마디.
그런 순간들이 일의 의미를 다시 되살렸습니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달릴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주는 사람 덕분에
우리는 다시 출근할 수 있습니다.
5. 그럼에도 출근했습니다
돌아보면, 나는 여러 번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이 일이 너무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었죠.
그럴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처음에는 보람 때문이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사명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두 가지가 모두 나를 움직입니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습니다.
가르치는 일이 항상 즐거운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일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이젠 압니다.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누군가는 신념을 위해,
누군가는 '하고 싶으니까’라는 이유로.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그 모든 출근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일은, 나에게 주어진 자리다.”
일은 때로 나를 지치게 하지만,
그 무게가 나를 다시 일으킵니다.
사명감이라는 단어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그건 오늘도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아,
눈을 마주치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출근했습니다.
피곤하고 버거워도,
누군가의 하루가 나로 인해 조금 달라질 수 있다면 —
그 이유 하나로, 나는 다시 일어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