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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기다렸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향한 기다림

by 박세신

1. 기다림은 언제나 쉽지 않았습니다


살다 보면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자주 마주합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누군가는 기회를,
누군가는 자신이 변하길 기다리죠.


하지만 기다림이란 언제나 막연한 일입니다.
결과를 모른 채 버티는 시간,
그 안에서 마음은 수없이 흔들립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가르치는 일 속에서도, 글을 쓰는 일 속에서도
항상 무언가의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변화, 성장, 그리고 작은 확신 하나라도.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기다림은 ‘결과를 향한 인내’가 아니라,
‘지금을 견디는 연습’이라는 것을.


2.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자라는 것들


어떤 날은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표정도, 내 마음의 온도도,
그저 같은 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됩니다.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도
조용히 자라나고 있던 것이 있었다는 걸요.


식물도 매일 자라나는 건 아닙니다.
겉으론 멈춰 있는 듯 보여도,
땅속에서는 여전히 뿌리가 조금씩 뻗어갑니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보람도 사라진 것 같아도,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습니다.


기다림은 멈춤이 아니라,
조용한 움직임이었습니다.


3. 결과보다 과정이 먼저 오는 사람들


세상은 빠른 사람들을 칭찬합니다.
결과로 증명한 사람,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사람들.


하지만 요즘, 점점 다른 사람들에게 눈이 갑니다.
매일 같은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조용히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에도
“오늘도 괜찮았다.”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들.


그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어떤 약속보다 신뢰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의 기다림 속에는 시간을 견디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조급함 대신 꾸준함으로,
확신 대신 신뢰로 하루를 쌓는 사람.


그게 제가 배운 ‘기다림의 품격’이었습니다.


4. 기다림이 나를 바꿔놓았습니다


예전엔 기다림이 답답했습니다.
빨리 성장하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노력한 만큼 결과를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이제는 느리게 피어나는 시간의 의미를 압니다.


기다림이 나를 약하게 만든 게 아니라,
그 시간들이 나를 유연하게 만들었다는 걸요.


이제는 더 이상 조급하지 않습니다.
결과가 늦게 와도,
그 시간 속에서도 내가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하나의 성장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5. 그럼에도 기다렸습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늘 무언가를 기다려왔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변화를,
내 안의 확신을,
그리고 언젠가 올 작은 평온을.


기다림은 때로 외로웠고,
보상 없는 날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들이
나를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기다립니다.

결과가 오지 않아도,
길이 보이지 않아도,
지금 이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그럼에도 기다렸습니다.


아직 피지 않은 꽃처럼,
조용히 내 안에서 자라나는 시간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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