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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un 07. 2021

쉬어가도 괜찮아

죽음의 문턱에서의 깨달음

 몇 년 전 왼쪽 다리에서 단단한 덩어리가 만져졌다. 그저 뭉쳤거니 지나쳤는데 한 달, 두 달이 지나가며 덩어리 부분이 쪼글쪼글 쪼그라들며 딱딱해지더니 움푹 꺼지는 모양새로 변해갔다.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동네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 했다. 부랴부랴 대학병원에 갔더니 정밀검사가 필요하니 2박 3일 입원을 해서 검사하자고 했다. 시간을 끌 문제가 아니라기에 그 길로 바로 입원을 했다. 순차적으로 검사를 하며 만약에 있을 수술을 대비한 수술 전 검사까지 완료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이틀 째 아침 회진을 돌며 병실에 들어선 담당 교수는


"MRI 촬영 결과를 보니 악성 종양이 의심되네요. 근육 육종이라는 희귀병인데 이 암에 걸리면 한 달 정도도 살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군요. 환자분은 종양 부위가 림프절에 가까워 수술하다 잘못 건드리면 하루를 넘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병원에서는 조직검사도 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암센터로 가서 조직검사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차트를 보니 9월 8일에 정기검진 예약이 있군요. 혹시 그때까지 살아계시면 9월 8일에 봅시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돌아선 의사 뒤편으로 같은 병실에 있던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일제히 나를 돌아보았다. 이제 겨우 둘째가 3살이라는 젊은 아기 엄마가 한 달도 못 사는 희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은 6인실을 함께 쓰는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고, 보호자도 없는 환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툭툭 암 선고를 하는 배려 없는 의사를 보며 끌끌 혀를 찼다.




슬퍼할 새가 없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집에서 3살, 11살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의사가 회진 왔는데 악성암이 의심된다고 암센터로 옮기래요. 암센터에 전화했더니 오늘 토요일이라 주말 보내고 월요일 9시에 오라고 하네요."


마음이 어수선한 상황에 홀로 병원에 전화해서 예약을 하고 남편에게 담담히 알려주었다. 남편은 당황하지도 놀라지도 않은 채 이따 들르마고 전화를 끊었다.




오후 4시쯤 되었으려나... 남편은 둘째만 데리고 병원에 들렀다. 1층 로비 카페에 앉아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남편은 수술을 하게 되면 치료 기간은 어떻게 되는지, 보험은 든든히 들어뒀는지, 보험에서 간병비는 지급되는지, 내가 부재중인 동안 아이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등 추후 일정에 대한 질문만 무수히 던졌다. 이제 갓 암 선고를 받은 아내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위로가 필요한 건 아닌지, 놀라지는 않았는지... 등의 질문은 없었다.


태양이 지며 달이 떠오른다. 잊히기 아쉬운 태양이 빛을 발하며 어스름 하늘에서 마지막 발악을 한다. 멀리 작은 점으로 태어난 달은 내게로 다가오며 몸집을 키우며 빛을 이어간다.



삶을 살아가는데 열심을 다하다 어느 순간 뒤돌아 보았을 때 그 자리에 '내'가 온전히 서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를 챙기지 않고 그저 악착같이 시간을 쪼개며 열심만 다하면 어느 순간 허무함이 친구처럼 다가온다.


7번의 수술과 6개월의 병원 생활을 이어갔지만 다행히 악성 종양은 아니어서 몇 년이 지난 오늘까지 건강히 살고 있다. 병원 생활을 오래 하고 독한 약들로 보낸 시간이 길다 보니 지금도 약으로 인한 여러 후유증으로 잔병치레를 하고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니 이 땅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선한 일을 하라."는 메시지로 알고 나눔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죽음의 문턱을 오가며 깨닫기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부터 달라졌다.


하늘의 태양과 달이 서로 만나지 못해도 각자의 시간과 장소에서 세상을 번갈아 비추듯 사람도 그러해서 각자 비추는 빛의 파장이 다름을 이제 안다.


옳다 그르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선한 일 악한 일로 O, X를 구분하여 단정하며 교만했던 나는 지금 없다. 교만했던 삶을 살던 그때는 모든 기준이 내게 유익되는지 해가 되는지, 나에게 아군인지 적군인지, 내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등 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오만과 이기심을 내려놓으니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이의 뜻이 제각기 다름을 알게 되었다. 창조하신 이의 뜻을 찾아 내게 주어진 일에 성심을 다하는 것이 그저 내가 할 일인 것이다.





누군가 내게 위로를 얻고자 찾아오는 것이 감사하다. 힘이 되는 말을 듣고 싶을 때 나는 어떤 말이 듣고 싶었을까 생각하며 위로의 손을 내밀어준다. 상처로 힘 없이 마음이 무거울 때 이렇게 이야기해 보자.


"너무 외롭고 힘들었겠구나.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너를 향해 따뜻한 눈길을 보내줬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겠니? 열심히 살면 인정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인정받지 못해서 많이 힘들었겠구나."


"사랑받지 못해서 사랑을 나눠주는 것도 어렵겠구나. 많이 사랑하는데 그것을 표현하는 게 두려울 수도 있어. 그래도 열심히 잘 살고 있구나. 네가 부족하다고 느껴도 어쩌면 상대방은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고 행복하고 편안함을 느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었어."


"많은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치고 도우면 우리 삶은 그럭저럭 지낼만하단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지. 너무 애썼구나. 너무너무 대견해.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많은 것을 바라는 것 같지만 어쩌면 그 바람이라는 것이 풍성한 꽃다발도, 반짝반짝 귀한 선물도 아닌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일 때가 더 많다.


요즘 나는 사람들을 만나며 위로하고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그들은 그 안에 해답까지 갖고 있다. 그저 마음을 읽어주고 그 답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망설일 때 지지의 말 한마디 나눠주길 기다리고 있을 뿐...


앞으로의 삶은,

생활 속에서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내가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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