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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ul 14. 2021

내 아이 정말 놀고 있나요?

자녀에게 퇴근을 허락하자

'나'를 잃고 산다는 것은 언제나 외롭고 힘겹다.

권위적인 부모가 되어 절제된 삶을 자녀에게 가르치면 목소리를 내야 할 때 내 자녀는 움츠리게 된다.


큰 아이가 5살이 되었을 때 근무지를 옮기게 되어 이사를 했다. 아이를 보낼 유치원을 찾지 못해 아이를 데리고 출근을 했다. 교사들에게 원장 딸인지 아무도 모르게 특권 주지 말고 다른 원아들과 같이 대할 것을 당부하고 5세 반에 입학시켰다. 5세 반 교실이 원장실 옆이어서 아이 노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아이가 의식하지 않도록 책상 옆 블라인드를 내리려는데 갑자기 한 아이가 딸아이의 양쪽 뺨을 연속으로 때리는 것을 생생하게 보게 됐다. 당황스러웠지만 담임교사가 개입하도록 두고 블라인드를 내렸다.


딸아이는 피하지도 울지도 않았다. 상대 아이는 담임교사가 사과를 시키니 억지 사과라도 했고 딸아이도 받아주는 듯 보였다. 부자연스럽지만 아이들이니까 가능한 현상이다. 뺨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맞고도 사과를 시키니 받고 용서의 포옹을 하는 그 상황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 내 아이처럼 뺨을 때리고 맞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유치원 현장에서 아이들 간의 다툼이 있을 때 교사의 중재로 자주 빚어지는 현상이다. 나는 놀라고 당황스러웠지만 개입은 할 수 없었다.


퇴근하면서 뒷자리 딸아이에게 물었다.

"은영아, 아까 지은이가 때리던데 많이 아팠니?"

"응, 좀 아프더라?"

"근데 왜 피하거나 밀어내지 맞고 있었어?"

"엄마, 갑자기 그래서 피할 수가 없었어. 지은이는 아직 어리잖아. 몰라서 그런 거지. 엄마가 모르고 하는 일은 용서하라고 했지? 오늘 나 잘했어?"

"용서한 건 잘했어. 그런데 아프면 아프다고 얘기하고 슬프면 울어도 돼. 참지 않아도 괜찮아."


가슴이 아팠다. 내가 그렇게 키운 것 같아서...

부모님이 무서워서 제 생각 하나 속 시원히 전하지 못했던 유년기가 생각났다. 너무 엄해서 난 친구와 싸우거나 억울하게 맞아도 부모님께 이르지 못했다. 잘잘못을 떠나 갈등이 일어난 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혼날 사유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나의 기분과 감정을 감추는 것부터 배웠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됐다. 아이가 세상을 따뜻하게 느끼도록 키우고 싶었다. 사소한 것도 아이의 의견을 물어주고 존중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내 아이는 갈등 상황이 되면 무조건 양보하고 자기가 놀던 것을 내어 준다. 귀찮도록 옆에 붙어서 괴롭혀도 그 투정을 다 받아준다. 5살의 아이가 말이다. 나는 딸아이의 마음이 아픈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놀이치료실에 데려가 기초 검사를 받았다.

공격성 zero


"공격성이 없는 것은 자기 방어 능력도 없는 것이니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만큼의 공격성은 있어야 한다."

는 상담사의 진단을 받고 6개월 동안 주 2회씩 놀이치료를 받았다.


상담사가 내게

"어머니, 마음이 아프시죠?"

"네."

"그런데 왜 슬픈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세요?"

"제가 그랬나요?"

"어머니 내면에 희로애락이 제대로 표출되지 않으면 아이도 희로애락을 배우지 못해 힘들 수 있어요."

"아이가 공격성이 없는 것도 그래서 인가요?"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머니의 억압적 양육 방법이 아이를 수동적으로 만든 거예요."

"제가 억압적으로 아이를 키웠다고요?"


믿기지 않는, 믿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진단이었다. 나는 상당히 노력했고 단 한 번도 아이를 야단치거나 큰소리를 낸 적도 없었다. 특히 큰아이는 9개월에 걷고 11개월에 말문이 터서 13개월 즈음에는 문장으로 자기 생각을 전달할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아기 때부터 대화로 양육이 가능한 아이였다. 위험하거나 하고자 하는데 할 수 없는, 아이가 하면 안 되는 것을 하고 싶어 할 때도 충분히 설명하고 대화를 하면 이내 수긍하고 이해했던 아이여서 아이와 갈등을 겪었던 적이 없었다.


상담사는 내게

"어머니, 만 3세의 유아에게 엄마는 세상의 전부죠. 어머니가 아이와 대화할 때 어머니 마음속에는 내려야 할 결론이 있었을 거예요. 이미 답을 정해두고 아이와 대화를 했기 때문에 어른의 유려한 말에 아이가 수용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겠죠? 어머니는 대화를 나눈 거고 아이는 억압된 거죠. 받아들이기 힘드시죠?"


상담 회기가 마쳐질 6개월 동안 내 마음에 [억압]이라는 단어가 내내 머물러 나를 괴롭혔다.


'그럼 도대체 어쩌란 말이야?'

'위험한 상황에도 그럼 그냥 두거나 아이가 판단해서 하도록 뒀어야 해?'

'좋은 엄마, 친구 같은 엄마가 돼 주려 얼마나 노력했는데 억압적인 엄마라니...'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인들께 묻고 추천받아 교수님이 운영하는 센터를 찾아갔었다. 어렵게 지인 찬스로 다니게 됐던 놀이치료실이었고 유명한 교수라 치료비도 배가 비쌌다. 비싼 값을 지불하고 처방받은 '처방전'은 [억압]이었다. 이후 오래도록 양육태도에 대해 곱씹어 생각하게 했고 나는 성장했다.


그래도 난 뚝심 있는 여자다. 속이 베베 꼬이고 화도 났지만 주어진 6개월을 비싼 상담료를 내면서 꾸역꾸역 다녔다. 아이는 건강해졌고 나는 숙제가 늘었다.




나이가 들고 교직에 머무르며 그때 그 처방을 아직도 기억하며 살아간다. 억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했고 내린 결론은 그 처방이 옳았다는 거다.


세상을 배워가는 미숙한 유아에게 많은 말들로 엄마의 생각을 거듭 이야기하며 "이것이 옳은 거야."라고 가르치는 말 자체가 억압일 수 있다. 아이를 수용적으로 키우고자 하는 엄마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큰 오류인 셈이다. 방향을 제시하되 결론으로 가는 길은 아이 스스로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수용적 양육이다. 나는 급했고 아이가 빨리 답을 찾도록 유도했다. 기다려 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말문이 빨리 트이고 대화가 된다고 해서 유아가 어린이, 청소년, 성인이 된 것은 아니다. 그냥 말을 빨리 하게 된 유아였던 거다.


20년이 넘게 유치원을 운영하며 수많은 엄마들을 만난다. 요즘 엄마들은 20년 전의 나보다 지혜롭고 열정이 가득하다. 태어나면서부터 1:1 맞춤교육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이 생겼고 조리원 문을 나서며 영영아 보육이 가능한 어린이집에 입소한다. 그렇지만 세상이 변했다고 양육방법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엄마(제1양육자)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무엇 무엇이 좋더라."

식의 "~카더라" 교육은 유아가 선택한 양육방법이 아니므로 지양하길 권하고 싶다. 아이는 신이 부여한 재능으로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고 잘 자라 줄 충분한 준비를 마치고 엄마 태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다.


많은 엄마들이
"우리 애는 배우는 것을 좋아해요."
"저는 아닌데 아이가 OO를 배우고 싶다고 졸라서 보내는 거예요."
"아이가 방문 선생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선생님 오시는 시간만 기다린다니까요?"
"1세에는, 2세에는, 3세에는... OO을 꼭 배워야 한대요. 적기 교육이라잖아요."
"아이의 민감기에 엄마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흥미가 떨어지기 전에 자극을 줘야 해요."
"영어는 언어라서 모국어와 함께 배우면 영어를 모국어처럼 느끼니까 쉽데요."
.
.



유아와 20년이 넘도록 함께 해 온 나는 내 아이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아이가 요구할 때까지... 아이가 제 필요에 따라 엄마에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엄마는 열린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굳이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영유아 시기에 학원차를 갈아타며 떠돌아다닐 이유가 전혀 없다.


간혹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에 영재들이 소개되기도 한다. 아이의 재능이 발견되고 아이 스스로 흥미를 느끼며 무엇인가 하고 싶어 할 때 부모는 뒷받침만 해 주면 제 역할을 다 한 거다. 그런데 그런 영재는 TV에서나 나올 뿐 대부분의 아이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내 아이도 역시 평범하다. 모든 아이를, 특히 소중하고 귀한 내 아이를 혹시 영재 일지 몰라 다양한 경험을 시킨다는 이유로 [고등학생처럼 뺑이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길 바라본다. 혹자의 부모들은 내 아이가 정말 영재인데 부모가 민감하지 않아서 평범하게 키우게 될까 걱정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다양한 경험을 아이에게 시킨다. 해 보지 않으면 알지 못하니 재능을 스스로 알 수 없지 않으냐고... 나는 과감히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얼마 전 [세상에 이런 일이]에 10살 작곡 신동이 소개되었다. PD가 아이 엄마에게 물었다.

"혹시 가족 중에 음악을 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아니요. 친가, 외가에도 없고 먼 친척 중에도 음악을 하는 분은 없어요."

"그럼 어떻게 아이가 재능이 있는 것을 알게 되셨나요?"

"우연히 아이가 초인종 벨 소리를 듣고 따라 하기에 '이거 어떻게 쳤어?' 하니 '응, 소리가 계이름으로 들려' 하길래 피아노를 가르치게 됐어요."

 재능은 생활 속에서 아이 스스로 발현하기도 한다. 아이의 재능을 애써 찾아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감한 눈으로 아이를 따라가며 관찰하고 지지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살아갈 충분한 자격이 있다. 자연 가운데 호기심을 배우고 동네 놀이터에서 사회성을 배우고 친구 집에 놀러 가서 힘의 기울기도 익힌다.


"많이 배운 학자의 자녀보다 동네 마실 다니는 오지랖 아줌마가 아이를 더 건강하게 키운다."
돈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뭐든 살 수 있고 우리네 삶을 윤택하게 하며 삶의 질도 높인다. 하지만 돈으로 "사람을 살 수는 없다."


아이가 학원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에게 던지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학원 강사나 방문교사처럼 40~50분 동안 아이에게만 시선을 맞추고 충분히 공감하며 함께 놀아주고 계신가요?"

혹시 내 아이는 학원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서 놀아주는 어른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집안 풍경을 그려보자. 엄마는 할 일이 태산이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집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오로지 엄마뿐이다. 그래서 아이가 무언가 함께하길 원할 때 엄마는 분주한 손을 내려놓지 못한다. 엄마가 하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 일이니 어쩔 수가 없다. 아이는 분주한 엄마보다 자기와 놀아주는 방문교사와의 놀이가 더 재미있을 수 있다.


그럼 한 번 물어보자.

"OO아~ OO선생님이랑 노는 것이 재미있어? 엄마랑 노는 것이 재미있어?"

억압 같은 질문이지만 아이는 대체로 엄마를 선택한다. 나이보다 조숙한 아이는 엄마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아서 엄마를 먼저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엄마가 자기와 놀아주기를 원해서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엄마들은 아이가 학원에서 놀다 오는 거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애한테 공부는 안 시켜요. 피아노, 미술, 태권도, 수영, 인라인, 무용, 놀이수학, 짐보리, 몬테소리, 영어동화... 놀이 수업 이잖아요. 이런 거 다 아이가 원해서 보내는 거죠. 샘플 수업 다녀오더니 보내달라고 얼마나 졸랐는지 몰라요. 이거 다 놀고 오는 거예요."


정말 놀다 오는 걸까요?


아이가 태어나 젖을 무는 행위부터 학습을 시작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알지 못하다가 알게 되는 것"의 모든 것은 배움이고 공부다. 놀다 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끊임없이 배우고 오는 것이기에 엄마의 욕구가 아니라 아이의 욕구로 선택해야 한다. 0세부터 마땅히 해야 할 공부를 엄마의 선택으로 쥐어 주면 청소년기에 정말 스스로 자기 삶을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때 막막해진다.


"선택" 은 태어나면서 인간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학습이다. 에둘러 "OO아, OO 배워볼래? OO가 하고 있는데 정말 재밌대."라고 묻지 말자. 묻는 행위 자체가 이미 억압이 시작된 것이다.




아이는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무엇인가 묻고
무엇을 하자고 조르며
뜻대로 안 되면 떼를 쓰고
쉬지 않고 논다.


아이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부모들께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하고 싶다.

아이에게 양질의 교육을 하기 위해 좋은 선생님, 유익한 과목, 민감기에 맞춘 발 빠른 행동력을 갖추고 계신가요? 이 모든 것은 아이가 혼자 충분히 익혀갈 수 있습니다. 집 주변 산책로에서, 풀숲에서, 도로 위 달리는 차를 보며, 엄마가 차려준 식탁 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일상 속에서 쏟고 닦고 그림을 그리고 뛰놀며 배워가는 것들을 윤택하고 여유로운 삶이 망가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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