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8가지 성장 프로그램, 연재①
1. 사랑이 별거니?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불쑥 나타난 그이. 나는 미처 사랑할 준비도 안 됐다.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은 나와 정반대 성격이라는 것뿐이다. 그래서 약간의 신비감도 있었다. 그는 점잖을 때는 점잖다가도 나설 때는 그야말로 에너지 상승이었다. 나는 그런 그가 신기했다. 만난 지 한 달이 됐을까. 그는 내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생일 파티를 거창하게 해줬다. 꼭 이벤트 회사 진행자 같았다. 노래 솜씨도 한몫했다. 마음이 솔깃했다.
그는 나의 부모를 만나자, 부모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달콤한 언변을 늘어놓았다. 과묵한 아버지는 그를 좋아했으나, 신중한 어머니는 남자가 너무 가볍다고 좀 더 생각해 보자고 했다. 과묵하고 신중한 부모 밑에서 성장한 나, 나는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진 그에게 끌렸다. 친구가 물었다. “그래서, 사랑하니?” 내가 대답했다. “사랑이 별거니. 피할 수 없는 끌림, 그게 사랑이지.”
사랑이 아닌 피할 수 없는 끌림, 그 끌림 때문에 나는 그와 결혼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늦게 결혼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다고 하더라. 결혼하는 날, 신부 화장을 하러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나는 왜인지 모르게 허전했다. 빨리 얼굴을 두꺼운 화장으로 가리고 싶었다. 우울한 속 마음을 하객들에게 들키면 안 됐다. 혹시 엄마가 내 감정을 읽으면 어쩌나, 걱정됐다.
나는 결혼식장 안에 있는 메이크업실 의자에 맥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두껍게 해주세요.” 그러자 들려오는 말. “저희가 하는 방식이 있어요. 만족하실 겁니다.” 거울 속에 비친 내가 점점 나 아닌 사람으로 변해갔다. 나는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려가는 노예가 된 기분이었다.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사랑하니?” 내가 말했지. “사랑이 별거니. 피할 수 없는 끌림, 그게 사랑이지.” 그렇다. 나는 지금 피할 수 없는 끌림으로 결혼하는 거다. 그래서 슬펐다.
신부 대기실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그 친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머, 딴 사람 같다. 얼굴에 활짝 꽃이 폈어. 너 같지 않아. 결혼이 좋기는 좋은 거구나.” 나는 뭐라고 변명 같은 말을 하고 싶었으나 말았다. 그래서 슬펐으나, 그날은 일부로 활짝 웃어야 했다. 나도 모르는 이 허전함을 신랑은 알까? 불안한 출발이었다. 주례사, 축가, 하객들의 박수, 축포, 그런 것들이 그냥 소음으로 들려왔다. 그날 사진을 보면, 나는 입만 벌려 웃었고 얼굴은 굳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