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즈데이 마틴의 <나는 침대 위에서 이따금 우울해진다>는 불륜을 저지르고 싶어도 위험 불안이 많아 실행할 수 없는 여성의 문제를 다룬다. 남편과의 섹스는 끝난 지 오래고, 낯선 남자와 정서적 교감 말고 섹스만 하고 싶은데 사라는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호텔에 가서 침대 위까지 올랐지만 결국 눈물을 흘리고 죄책감에 실행할 수 없는 사라.
이를 보고 당연한 일 아닌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불륜은 범죄니까 사라는 당연히 죄책감을 갖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라는 몇 년 후 이때 폴과 섹스를 할 걸 후회한다. 그때 사라가 바람 피우지 않은 이유는 윤리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으니까.
사라는 폴과 섹스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걸릴까 봐" 였다. 여성이 불륜을 했을 때 이혼율이 더 높다고 한다. 왜? 여성의 섹스는 더 쉽게 손가락질받고 주변에서 뒷담화하고 재판에서조차 더 큰 형벌을 받으니까. 결국 사라는 그게 무서웠던 것이다.
남성의 성욕에 관대한 사회
반면 남성의 성욕에는 너무나 관대한 사회다. 아저씨들이 룸살롱에 가고 성인 노래방을 가는 것에 대해 쉽사리 농담할 때가 있다. 반대로 중년 여성이 호빠에 가거나 어린 남자랑 놀고 싶다고는 하지 않는다. 티브이 방송에서조차도 이런 이야기는 자주 나온다. 김구라와 이경규는 자신이 룸살롱에 갔을 때 가장 젠틀한 연예인 중 하나라고 했고, 노홍철은 집단성폭행 피해자의 불법촬영물(빨간마후라 사건)을 자신이 직접 불법 복제하여 팔았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 연예인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구조다. 스스로 검열하여 애초에 이런 발언을 조심한다.
또한 티브이에서 남성 방에 휴지가 있으면 건강한 청년일세 이러면서 자위에 대한 소재를 꺼내며 농담을 친다. 반대로 여성의 집에 딜도가 있다면? 말도 안 되겠지. 그리고 딜도 말고 휴지(남성의 자위를 뜻하는)처럼 여성의 자위를 뜻하는 기호가 있는가. 없다. 왜냐하면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은폐되거나 부조리하게 뻗어나가니까.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하하 웃으면서 공중파에서 드러날 수 있는 상징 기표는 찾기 어렵다.
그래서 남성은 섹스섹스섹스 거릴 수 있다. 어딜 가나 이런 애들은 한 명씩 있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말한다고 좀 이상한 애로 취급될 수는 있지만 대체로 웃긴 애, 또는 막 나가는 재밌는 애로 생각하지 이 남성을 성적인 비하 단어로 부르지는 않는다.
그리고 대체로 많은 남성이 섹스를 하고 싶다고 쉽게 드러낸다. 성욕에 자유로우니 조그마한 성욕이 있어도 그 성욕을 폭발시키는 것이다. 반대로 여성에게 그런 작은 성욕의 불꽃이 생긴다면? 아마 스스로 검열하여 이를 없앨 것이다. 더 큰 성욕도 어찌어찌 숨길 수밖에 없다. 물론 어딘가에서 드러내거나 현명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많겠으나, 남성이 성욕에 휘감겼을 때 대중을 향해 또는 공공장소에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처럼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땠을까.
이것을 설명하려 했는데 배경 설명이 길어졌다. 다음 편을 마지막으로 <페미니즘, 이후의 섹스> 연재를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