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을 떠올리는 노래
초등학교 4학년, 가요를 잘 몰라야 멋지다 생각한건지.. 임창정 노래는 알아도 여자 가수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건 꽤나 쑥스러운 일이었다. 용재, 요한이와 침대에 구겨 누워 노래를 듣고 있을 때 양파의 노래가 나왔다.
조금만 더 가까이이~
요한이는 실눈을 뜨고, 손을 허공에 허우적 거리며 좋아하는 노래라고 말했다. 요한이. 이름에서 느껴지는 교회 향기와 다르게 능글맞은 친구. 웃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아무렇지 않게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요한이가 부러웠다.
나는 모든 진심을 말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은 매번 짝 바꾸기를 다른 방법으로 시도하셨다.
"오늘은 남자가 원하는 짝에게 가서 앉는 거야. 하나 둘 셋!"
하나에 같이 앉고 싶던 수현이와 눈이 마주치고
둘에 주변 친구들을 둘러보고
셋에 뛰었다.
하지만 실패였다.
나만 달린 건 아니었다. 코흘리개 병관이가 빨랐다.
원망스럽고 허탈한 심정이었다. 너무 확신했던 걸까. 잠시 멍해졌다가 주위를 둘러보다 앉을자리를 발견했다. 선화의 옆이다. 선택을 늦게 받아서 그런지 선화는 소침해졌다. 평소 놀리고 장난칠 때 반응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그 모습을 보니 잘해줘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그 이후 제비 뽑기, 종이 모양 맞추기, 여자가 뛰어오기 등등 우연히 선화와 짝을 이어 오며 그 '의무감'은 사라졌다.
단체사진에서 옆자리를 차지했고,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수준에선 그린라이트였다.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선생님은 운동장에서 나와 선화의 사진을 찍어주셨다. (계속 짝이 된 게 혹시..)
"둘이 사진 하나 찍자. 하나 둘 셋!"
하나에 마음이 뭔가 찡해졌고,
둘에 무언가의 확신과 용기가 차올라,
셋에 선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깨를 감쌌다기에는 올려놓은 것뿐인데 손이 무거웠다.
순간 눈 밭을 다 끌어안은 듯 벅차올랐다. 마음이 붕 떠오르는 만큼 땅이 발을 더 당겼다. 발과 땅이 어떻게 붙어있는지 신경 쓰였다.
그리고 긴 겨울 방학, 편지하겠다고 장담했지만 보내지 못했다. 마음만큼이나 연필도 무거웠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개학 때나 되어서 손에 쥐어줬다. 아무것도 변한 건 없었는데, 마음속은 어려웠다. 주저함이 만든 시간은 꽤 커져있었다.
침대에 끼워 누워있던 용재는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할 용기가 생겼나 보다. 나도 애송이의 사랑을 좋아했다. 내가 선화도 더 좋아한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소중한 친구를 잃을 수 없었고, 우정을 위해 사랑 따위는 한 발 물러서주는 게 멋있는 거라 배웠다. (무슨 드라마였는데..) 마음을 숨기고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해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 언덕에서 혼자 불러보았다.
어찌하겠는가. 말 못 할게 많아지는 나이 열한 살.
노래 제목처럼 사랑에는 애송이인걸.
잠 못 이룬 새벽 난 꿈을 꾸고 있어 흐느낀 만큼 지친 눈으로
바라 본 우리의 사랑은 너의 미소처럼 수줍길 바래
조금만 더 가까이 내 곁에 있어줘 널 사랑하는 만큼 기대쉴 수 있도록
지친 어둠이 다시 푸른 눈뜰 때 지금 모습 그대로
양파의 데뷔곡이자 타이틀 곡이었던 <애송이의 사랑>. 당시 주요 기획사였던 신촌뮤직에서 출발했다. 1996년 발매곡이지만, 다음 해에 1위를 기록했다.
대중가요 춘추전국시대에 많은 이들을 애절한 멜로디에 빠뜨렸다. 약간 다른 비트에 두둠칫 거리며 들었는데, 알고 보니 미국소니 뮤직에서 활동하던 작곡가 Mike Taplinger의 곡이었다. 역시 색다른 두둠칫에는 이유가 있었다.
https://music.bugs.co.kr/track/70148
https://music.bugs.co.kr/track/526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