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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당약사 Mar 29. 2024

너와 내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 사랑

 이 대화는 소개팅으로 두 번째 만남을 가진 당일 밤 현재 나와 여자친구와 톡으로 나눴던 대화다. 두 번째 만남 당일까지도 여자친구는 나에 대한 감정을 모르겠다고 했었다. 그에 반해 나는 첫 만남부터 그녀에게 반해버렸다. 긴 생머리에 오뚝한 코, 작고 귀여운 입술로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과 분위기는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밝게 웃으며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언제나 아름다운 그녀의 미소는 나에게 봄날의 햇살 같은 안식처가 돼주고 있다.


키가 크다. 진지충이라 노잼이다. 생각이 깊다

 소개팅 주선자인 친구가 나를 그녀에게 소개했던 내용이다. 주선자는 사람은 괜찮으니 그녀에게 가볍게 만나고 오라고 했단다. 그래서인지 첫 만남에 그녀도 나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나왔다고 말해줬다. 그런데 슬펐던 건 친구의 묘사가 부정할 수 없는 팩트였다는 것이다. 진지하다는 것이 장점이 될 때도 있지만 처음 만나는 자리에선 별 도움이 안 되기에 나는 밝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나의 언어중추와 입은 내 마음철 머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가 노력해 준 덕분에 대화는 흘러갔다.


그녀 : "저는 독서를 좋아해요. 어릴 때 두꺼운 책을 다 읽고 나면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많이 느꼈어요. 책 읽는 거 좋아하세요?"


나 : "네. 저도 책 읽는 거 좋아해서 이 소개팅 주선해 준 친구랑 독서모임도 하고 있어요. 이번 달에는 맹자를 읽고 독후감 써서 한 달 뒤에 만나기로 했어요."


 이 독서모임은 소개팅을 한 다음 달에 수명을 다했다. 현재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사기 위해 저지른 나의 만행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떳떳하다. 한 달이라도 모임을 한 것은 맞으니까. 그렇게 첫 만남에서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난 두 번째 만남을 약속하고 고심에 빠지게 되었다. 소개팅으로 커플이 되는 확률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두 번째 만남에서 그녀에게 나의 진심을 확실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책을 선택했다. 책 앞머리에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그녀의 앞 날에도 행복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내용을 적었다. 그녀가 나의 마음을 받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웠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었다.



 나의 책 선물을 받은 그녀와의 대화내용이다. 두 번째 만남이 있었던 그날 밤 뜬금없이 보고 싶다는 나의 직진을 받아준 그녀와 나는 다음 날 또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만난 지 4일 만에 나의 직진에 못 이기는 척 그녀는 나와 연인이 되었다.


"나는 1형 당뇨가 있어"

 연인이 된 지 7일 만에 새벽 전화로 그녀에게 나의 비밀을 고백했다. 요양병원에서 한의사로 일하고 있던 그녀가 당직을 설 때면 우리는 새벽에 전화 너머로 사랑을 속삭였다. 새벽에 4~5시간 통화하면서 서로를 알아갔으며 그다음 날 출근을 해도 피곤하지 않았다. 사랑의 힘이란 실로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의 건강상의 비밀을 그녀에게 빨리 말해주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건강상의 비밀을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연애나 결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이성과의 만남은 내 삶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나의 삶에서 연인으로 인연을 맺은 지금의 여자친구와 과거의 한 친구는 나의 이런 점을 잘 이해해 주었다. 나의 고백을 들었던 상대방은 '많이 힘들었겠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라는 위로를 나에게 전했다. 덕분에 나도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랬던 나에게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상대방이 있어 '난 정말 복 받은 놈이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연애란 너와 나의 새로운 세계

 연애란 '나의 세계'에 있는 두 사람이 '너와 나의 세계'라는 새로운 세상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기에 어려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나의 세계'에서는 당연 것이 '너의 세계'에선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많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오늘 뭐 먹을까?"

"음... 먹고 싶은 거 있어?"

"보리밥 어때? 저번에 갔던 데 괜찮지 않았어?"

"음... 괜찮았지... 그럼 거기 갈까?"


 식단관리를 한다는 명목으로 데이트할 때 메뉴 선정 주도권을 자연스레 내가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관리를 위해 메뉴 선정을 하다 보면 제한된 옵션 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상대방은 가끔씩 입을 즐겁게 하는 음식이 당기거나 분위기 좋은 식당을 가고 싶을 때가 있는데 난 그런 배려를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것이 상대방에게 서운함으로 다가왔고 나에겐 미안함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해결책을 찾은 것이 낮에는 먹고 싶은 메뉴를 마음껏 먹고 저녁엔 소소하게 식사를 하는 방법으로 서로를 배려했다. 활동량이 많은 낮에는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혈당 변동에 대처가 가능하다. 반면에 저녁에 먹은 음식은 그다음 날 아침 혈당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에 되도록 음식을 가볍게 먹는 것이 좋다.


"자기야. 그냥 밥 먹은 다음 이 자리에서 인슐린 주사 맞도록 해. 주위 시선 신경 쓰지 말고!"


 식후에 나는 인슐린을 맞기 위해 항상 화장실을 가야만 했다. 그렇게 쭈욱 살아왔으니 나에겐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화장실에 가지 말고 자신과 함께 있는 이 자리에서 주사를 투여하라고 말했다. 또 내가 주사를 투여하러 화장실에 가있는 동안 혼자 있어야 하는 그 순간이 외롭다고 덧붙였다. 사람은 본래 자신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닌 이상 나 이외의 사람에겐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주사를 맞든 뭘 하든 주위 사람은 크게 신경 안 쓴다. 그렇지만 이것을 때때로 망각하게 된다. 나의 일상에 젖어 살았던 나머지 그녀의 입장을 세심하게 챙기지 못한 나를 반성하게 된 순간이었다. 게다가 당당한 나를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준 그녀의 커다란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나와 함께 하는 미래를 그려봤을 때 당뇨합병증에 대한 두려움과 식단 조절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당사자인 나도 이것에 익숙해지는 데 오래 걸렸기에 고민은 당연했다. 그녀의 고백은 이어졌다.


"내가 그런 두려움과 책임감으로 인해 고민이 될 때도 있었지만, 자기가 여태까지 살아왔던 삶이 나에게 믿음을 줬어. 자기처럼 열심히 운동하면서 식단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잖아. 누구나 언제든지 불편한 곳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부터 건강관리하면 자기는 남들보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거야."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고민이 많았을 그녀가 자신의 고민으로 인해 내가 힘들어할까 봐 위로하는 그 모습이 미안하고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고마움의 크기를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있을지 의문일 정도였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녀와 나는 서서히 서로의 일상에 스며드는 존재가 되었다. 이 스며듦은 나에게 기쁨이자 행복으로 다가오는 동시에 그녀와의 일상에서 은은한 황홀함을 선사해주고 있다. 언제나 나는 그녀를 사랑하며 존중할 것이다.


사랑합니다.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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