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가 필요할 때
뜨거웠던 감정은 어느 한순간에 식어버리기도 한다.
지난번엔 그런 감정의 온도를 바라보았다.
이번엔,
그 감정들이 자주 되풀이되는 흐름을
그냥… 지켜보려 한다.
#1막
도로 위, 감정이 끼어든 순간들
일찍 도착하면 좋은 거고,
조금 늦더라도 괜찮은 시각.
딱히 촉박한 상황은 아니었다.
파란불이 꽤 오래 켜져 있다.
곧 노란불로 바뀔 것 같은데…
에라, 일단 가보자.
신호가 노란불로 바뀌는 순간,
그대로 교차로를 통과했다.
어, 아까 지나갈 때 신호등이 무슨 색이었더라?
엑셀 위에 발을 올리면서도
시선은 룸미러를 자꾸 맴돈다.
머릿속에 신호위반 고지서가 살짝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때 갑자기 툭- 끼어드는 차.
놀라서 브레이크를 끼익 밟는다.
화가 올라오는 순간 보이는 '초보운전' 스티커.
“초보?”
그래, 운전 선배인 내가 봐주지 뭐.
곧이어 또 한 대가 깜빡이를 켜고 들어오려 한다.
“너까진 안 되지! 내가 도로 위에서 무슨 수련하는 줄 아나?”
그 애처로운 깜빡이를 무시하고 엑셀을 밟는다.
그 순간, 마음이 살짝 걸린다.
그 차… 정말 급했던 건 아닐까?
그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부우우웅-”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스쳐 지나가는 람보르기니.
오, 저 차 엄청 비싸다던데…
저런 차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타는 걸까?
까맣게 선팅된 차 너머를,
마치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들여다본다.
오늘도 도로 위에서
감정 단막 로드뮤비 한 편이 완성됐다.
사실,
나는 이 영화를 꽤 자주 찍는다.
#2막
감정, 그 짧은 순간들을 바라보다
사실 이건 그냥 기분이 아니었다.
그날그날의 교통 상황에 따라 생겨나는 즉흥적인 반응이 아니라,
익숙한 자극에 자동처럼 반응하는 내 모습이었다.
파란불에서 노란불로 바뀌는 신호, 불안
갑작스레 끼어드는 차로 올라온 짜증
초보운전 스티커를 보고 꾹 눌러본 감정
두 번째 차량의 깜빡이를 무시하고 난 뒤의 미안함
요란한 엔진 소리에 불쑥 올라온 비교, 그리고 열등감
나 자신도 모르게
매일 반복되는 감정의 조각들이,
차창 밖 스치는 풍경처럼 지나간다.
같은 감정이,
다른 날 다른 상황에서도 비슷하게 올라온다.
하나하나는 사소하지만,
쌓이면 그게 ‘나’라는 사람의 감정 패턴을 만든다.
익숙하게 반복되는 감정의 패턴은
아, 이건…
도로 위에서 풀 이야긴 아니지.
오늘은 굳이 그 이유를 들춰보지 않기로 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감정 속에
조금 더 머물며 바라봐주기로 했다.
#3막
감정을 갈무리하는 순간, 다시 끼어든 감정
우회전으로 빠지는 유일한 길.
브레이크를 떼며 감정을 갈무리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왼쪽 차선 멀리서 달려오는 한 대의 차량이
내 멈칫하는 틈을 보고 휙-
차 머리를 들이민다.
… 그래, 들어와.
속도를 늦춰주는 그 순간,
아무런 깜빡이도 없이
유유히 앞으로 출발하는 그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