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즐거움
2010년 출판된 <Psychodynamic therapy: A guide to evidence-based practice> 을 읽고 있습니다. 한주 동안 읽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11주차에는 치료 초기 단계의 마지막 요소인 '치료초점을 정의하기'를 다루고, 12주차는 본격적인 치료 작업이 시작되는 중기 단계에서 다뤄지는 '내러티브 narrative'를 공부했어요.
11주차. pp. 176-194.
이번 주는 치료초점과 목표 설정을 다뤘어요. 사례개념화를 내담자와 공유하고 수정하면서 치료 초점을 정의하게 됩니다. 치료 초기 단계에 어설프더라도 치료 초점을 설정하는 것이 위험보다 이득이 많다고 봅니다.
치료초점을 정의하는 작업은 문제가 무엇인지 구체화하고 어떻게 그것을 다뤄나갈지 내담자와 합의하는 과정입니다. 주요 문제와 사례개념화가 구체화되는 치료 초기 2-6회기 내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치료 초점은 치료자에게 무엇을 탐색하고 개입의 얼개와 진행 과정을 알려줍니다. 치료초점은 치료의 종착지인 치료목표와는 다릅니다. 목표란 내담자와 치료자가 성공적으로 치료초점을 다루었을 때 일어나기를 바라는 어떤 것입니다.
내담자는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치료목표를 품고 오기 때문에 자신의 목표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치료자에게 표현합니다. 내담자의 표현된 목표는 치료초점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게 합니다. 치료자는 물러서서 치료 초점을 정의하기 시작하죠. 사례개념화, 내담자의 표현된/표현되지 않은 목표, 내담자의 동기와 특성 등을 인식하여 치료자는 치료 초점을 제안합니다. 치료초점은 알아서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치료초점을 정의하기 위해 치료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치료 초점을 정의하는 작업은 사례개념화를 토대로 문제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어떻게 다뤄나갈지를 수립하고 합의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사례개념화가 문제를 이해하는 전반적인 틀이었다면 치료 초점의 정의는 '치료계획'과 관련된 보다 간명하고 구체적인 솔루션인 셈이죠. 그런 점에서 사례개념화 요약지와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요.
내담자의 목표가 표현되지 않은 목표와 상충될 수 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내담자가 말하는 변화 목표가, 실제로는 정반대의 소망을 품고 있을 수도 전혀 다른 소망을 품고 있을 수 있다는 거죠. 그 소망은 대개 미해결 과제나 갈등과 연관이 있을 거 같고요. 이러한 가능성을 인식하면서 논의를 진행해나가야 한다는 점이, 치료 초점을 정의하는 데에는 치료자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아마 기존 사례개념화에서 이뤄지는 '임상가의 목표'는 이러한 표현되지 않은 목표까지 고려하여 설정되는 목표일 것 같고요.
[내담자의 의식적 목표가 얼마나 중요한가?]
좋은 심리치료사는 내담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수용하고, 표현된 목표를 존중하며, 표현되지 않은 목표를 주의 깊게 살피고, 가능한 수준의 성장과 변화를 기대한다. 만약 치료목표가 비현실적이어서 바꾸어야 한다면 이를 제안하는 것이 합당하다. 성공적인 치료는 합리적이고 성취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어떤 목표는 성취하기 어렵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비합리적인 목표는 내담자 잠재력에 대한 관대한 평가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 실망, 실패의 재경험, 좌절로 귀결된다.
12주차. pp. 197-214.
지난주까지 치료동맹, 사례개념화, 치료목표설정처럼 치료 초기에 필요한 요소들을 다뤘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변화를 촉진하는 치료 중기를 다룹니다. 특히 이번 주 분량은 정신역동치료에서 중요한 변화 기제인 개인의 이야기-내러티브-가 무엇인지,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를 다루었습니다.
1) 내러티브는 한 사람의 중요한 인생 정보를 일관된 방식을 요약한 이야기입니다.
마치 문학작품이 그렇듯이 도움이 되는 내러티브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긴장과 갈등이 떠오르고 해소되는 형태를 나타냅니다. 내러티브는 언제나 과거에 일어난 것과 그것이 현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중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이중 구조의 긴장과 불일치가 새로운 내러티브 작업의 단초가 됩니다. 내러티브는 스스로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내담자의 언어로 구성되기 때문에, 치료자 중심의 '해석 interpretation'보다 간결하고 유용합니다.
2) 그렇다면 정신역동 심리치료에서 내러티브가 주요한 치료 기제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Malan의 삼각형에서 심리적 갈등은 1과거 관계, 2현실적인 현재 관계 3치료자와의 관계에서 드러난다고 가정하듯이, 더 넓은 탐색과 더 포괄적인 내러티브가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높인다고 가정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내담자의 치료동기가 내러티브 작업을 통해 높아질 수 있다고도 봅니다. 통합되고 일관된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작업은 자기이해를 촉진하고, 불편한 상황에 대한 불안 감소와 통제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은 새로운 내러티브가 심리적 혼란을 줄이고 오지각을 교정하며 새로운 행동전략으로 이끌어주기 때문에, 약물이나 증상초점적 심리치료보다 정신역동 심리치료에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CBT에서 핵심 신념과 심리도식에 초점을 맞춰 작업을 한다면, 정신역동치료에서는 더 펼쳐진 형태인 '내러티브'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한다고 느껴져요.
3)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드는 작업은 반복적인 과정입니다.
정신역동 심리치료는 본질적으로 자신과 타인을 보고 경험하는 방식을 바꾸는데 초점을 맞춘 학습 과정이기 때문에, 반복과 검토가 매우 중요합니다. 먼저 암묵적으로 갖고 있는 내러티브를 표층부터 탐색하고 의식화하면서, 이 내러티브가 과연 유용한지 숙고하고 점검할 수 있도록 질문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내담자들이 이전 회기에서 일어난 중요한 것에 대해 무엇인지 기억을 하지 못할 수 있다고 언급합니다. 불안회피와 억압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 대해 새롭게 배우는 일의 어려움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완전히 일깨우지 못한 무엇은 잊힌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자가 좌절하거나 불안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구성해온 내러티브에 대해 다시 치료자가 질문하고 재구성하고 요약하며 새로운 내러티브를 공고화합니다.
4) 치료자의 기술: 투명성, 질문, 요약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치료자의 질문은 내담자의 지각이 완전히 합리적이고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는데요. 어떻게 이 지각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지, 어떤 다른 관점이 내러티브를 완전하게 하고 더 유용하고 유연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과연 그 관점이 통합되고 일관되어서 편안한가, 혹은 단절되어 있고 고통을 유발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방식의 질문을 통한 탐색과 숙고 작업은 CBT의 소크라테스식 질문이나 길잡이식 발견법과도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도움이 되는 내러티브의 공통적인 8가지 요소]
- 삶의 코스에 대한 설명: 왜 삶이 그렇게 일어났는지
- 가장 중요한 삶의 사건과 경험
- 중요한 관계에 대한 다차원적인 그림
- CCRT: 소망, 타인에 대한 반응, 자신에 대한 반응
- 무엇이 변할 수 있는지: mutability 가변성 - 변화에 대해 희망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
- 희망과 자비
- 문화적 맥락: 이야기에 진실성을 부여한다
- 내러티브의 어조: 치명적인 결점, 사고, 제한점, 실수, 그리고 과거의 작은 이탈로 인해 통제 불가능한 정교한 순환 등을 강조하는 '비극적인' 이야기. 현재의 고통은 선행 사건의 결과로 본다. 아픔과 고통은 삶에 많고 이해 가능한 원인이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무죄에 대한 전제는 변화, 초월, 그리고 희망에 대한 풍부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