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와 짝사랑의 평행관계에 대하여

찌질하고 슬펐던 우리의 이야기

by 박희성

바늘에 지렁이를 끼우고 던진다. 찌는 목욕탕 들어가듯이 다리부터 쑤욱 들어가 온 몸을 헹구고 머리만 빠꼼 내민다. 낚시꾼의 망상이 시작된다. 오늘은 월척을 잡을 것 같은 감이 온다. 낚시를 올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오늘은 뭔가 느낌이 다르다. 흐뭇하게 찌를 바라보다가 문득 어제까지 연락하던 그 여자가 생각이 나서 카톡을 보낸다. ‘뭐해?’.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카톡 보내는 것만큼 설레는 감정도 없다. 보내고 나서 언제쯤 연락이 올까 기대하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 넣고 기다림을 즐긴다. 꾸준한 기다림은 성공의 기분을 갑절로 만들어준다. 원래 붕어 낚시는 기다림의 낚시라고 한다. 괜히 입질도 오지 않은 낚시대를 들었다 놨다 하면 오던 붕어도 도망가버린다. 시간이 아직 붕어가 밥 먹는 시간이 아니니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 태연하게 햇빛을 즐기고 물비린내를 크게 들이마시며 이 순간을 느낀다. 옆에 있는 설레는 분홍색의 개여뀌의 줄기를 꺾어 구경도 한다. 한 줄기에 꽃이 수 십개 달린 개여뀌 꽃을 손으로 하나씩 꺾어 본다.


개여뀌 꽃이 발 밑에 수백개 쌓여가고 담배꽁초도 벌써 3~4개 짓이겨져 있다.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꺼내 괜히 카톡에 들어갔다 나오고 프로필 사진을 바꿔볼까 고민에 빠진다. ‘뭐해?’는 너무 노골적이었나? ‘ㅋㅋ’나 ‘ㅎㅎ’를 붙일 것을 그랬나? 지금이라도 붙이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렀다. 다리를 너무 심하게 떨어 이러다 휴대폰을 강에 빠뜨리는 건 아닌지 불안해진다.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 넣는다. 아니 집어 넣는 척만 하고 다시 휴대폰을 켠다. 어제까지 했던 카톡에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확인한다. 이상하게 붕어 입질도 오늘따라 없다. 입질이 올 때까지 대를 들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낚싯대를 들어서 확인하는데 한시간동안 물에 퉁퉁 불어버린 지렁이는 깨끗하기만 하다. 오늘은 붕어 포인트를 잘못 집었나? 오늘 같은 날에는 반대편에서 해야되나? 야속하게도 이런 고민을 시작하면 반대쪽 조사님들은 잘만 붕어를 낚아 댄다. 멀쩡한 지렁이를 빼고 다시 싱싱한 지렁이를 바늘에 꽂아 나름 치밀하게 포인트를 향해 던진다.


아직 붕어가 밥 먹을 때가 아니라 잡히지 않는 거라며 스스로 위로한다. 이제부터가 진짜 붕어님 진지 드시는 때다. 해가 뉘엿거리며 동산 위로 기어간다. 곱게 들어 가면 되지 귀찮게 사람 눈을 찌르며 자기 좀 봐 달라고 시위한다. 인상을 찡그리고 애써 해를 무시하며 가만히 낚시에 집중한다. 옛 선인께서 붕어는 기다림의 낚시라고 하셨으니 받들어야지. 忍苦(인고)의 끝에 大物(대물)이 올지 어니! 그러니 주머니에 넣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찌를 노려본다. 휴대폰을 꺼내지는 않는다. 아마 그 친구 어제 밤 늦게까지 놀다 왔으니 아직 잘꺼야. 잠이 많으니까 저녁 먹을 때는 일어나지 않을까?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는다.


해는 이제 다 저물었고 흙바닥에서 찬 기운이 올라와 등골이 시리다. 담배 한 곽을 다 피우고 빈 통에 담배 꽁초를 집어 넣으니 수북하다. 메뚜기 뛰어 다니는 소리와 여치 우는 소리가 심포니를 이루고 조용한 낚시터에 배경음을 틀어준다. 허리가 아파 일어나니 찬 바람이 불어온다. 차가운 강 바람을 맞으며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볼 때도 눈은 찌를 향해 있다. 이제 포기할 때가 온 것 같다. 더 이상 기다리는 건 미학이 아니라 멍청한 짓이다. 한 낮에 보낸 카톡을 아직까지 읽지 않는 건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 것이고, 수 시간 째 입질도 없는 건 내 주변에 붕어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의 연속성만 유지한 하루였다. 굳어버린 손가락을 억지로 피며 짐을 정리한다. 몇 시간만에 찌에서 눈을 떼고 쓰레기를 줍고 남은 지렁이를 풀어준다. 뒤를 돌아 낚싯대를 정리하려 하는데 강물 위의 찌가 사라졌다. 멍하니 강물을 바라보다 아차 싶어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얇은 낚싯줄 한 가닥을 통해 생명의 팽팽한 진동이 손끝으로 전해 들어온다. 크기는 크지 않아 고기가 금세 뭍으로 올라온다. 그래도 이게 감지덕지다. 하루 종일 이 한 마리를 기다려 왔는데. 신이 나서 물고기 사진을 찍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켠다. 카메라를 통해 물고기가 보이는 순간 손에 또다시 진동이 울린다. 휴대폰 상단에 그녀의 이름이 나타났다. 눈동자가 커지는게 느껴지고 심장이 빠르게 뛴다. 기다림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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