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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을 아시나요

by 풍경

제주의 봄은 늘 화사하다. 봄이 오니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니 봄이 오는 것이라 하던 법정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집 근처에 있는 수목원으로 향했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숲도 조금씩 기지개를 켜니 가지마다 대롱대롱 매달린 꽃눈들도 오동통 살이 올라 터뜨릴 날만을 기다리는 듯하다. 멀찍이 들려오던 새소리의 주인들도 하나둘 제집을 찾아들듯 나뭇가지 위에서 라이브 공연하는 모습도 보인다. 머지않아 다가올 봄 축제의 예고편처럼 제주의 겨울을 대표하는 붉은 동백은 이미 숲 여기저기를 붉게 물들이고 지고지순한 매화꽃도 곱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매화가 지면 그 뒤를 이어 목련이 꽃을 피울 것이다. 피천득은 그의 수필 ‘인연’에서 여대생이 된 아사코를 청순하고 세련된 목련에 비유했다. 사실 젊었을 때는 꽃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중년을 넘기면서부터 하얀 목련이 그리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아니 아름답기보다 아련하다고 할까. 목련을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려왔다. 그 아련함이 싫지 않았다. 유독 꽃 피는 시기가 짧아 가슴앓이를 오래 하지 않은 것은 서둘러지는 목련의 마지막 배려였을까. 그런데도 푸르른 청춘이 못내 그리운 것처럼 봄만 되면 한동안 목련꽃 앓이를 하고는 했다.

나의 봄은 목련으로 시작해서 목련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짙은 봄 앓이에서 나를 일으킨 것은 유채꽃이었다. 제주의 상징인 노란 유채꽃은 지천으로 널려 있어 특별하지도 않고 화사하지도 않은 그저 밋밋한 꽃이다. 꽃이라 하기엔 꽃잎의 크기나 모양이 자그마하다. 메밀꽃에 노란 물을 들인 느낌이랄까. 너무 흔해 눈에 띄지도 않던 유채꽃이 왜 나의 가슴을 흔들었을까.


몇 해 전, 나의 큰 산이었던 아버지를 여의고 상실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무렵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사춘기 큰딸이 질풍노도의 막바지 고비를 넘기려 바둥거렸고 그로 인해 가족들과 잦은 마찰이 생기면서 서로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자책감이 몰려오면서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위로가 절실했다. 하지만 꽁꽁 닫힌 마음으로는 누구의 말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때 우연처럼 인연이 닿았다. 어떻게 그런 만남이 성사되었나 생각해보면 지금도 의아할 정도다. 그녀는 흔히 말하는 무속인이었다. 그녀에게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녀의 신에게 나는 그간의 깊은 슬픔을 흔쾌히 내주었다. 그때 그녀가 내게 한 말을 잊지 못한다.

너는 유채꽃을 닮은 아이야. 지천으로 널려 있어서 흔하지만 너무 맑고 순수해.
그래서 힘든 거야.
너무 힘들어하지 마라. 다 괜찮다.

그날 이후 가슴에 걸려있던 큰 돌덩이 하나가 내려앉았다. 모든 것을 나의 책임으로 전가했던 것들에 대해서 조금씩 놓여났다. 큰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멀어졌던 관계가 조금씩 좁혀지고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로 한발 나아갔다. 그간 내가 딸에게 보낸 무수한 메시지들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나의 욕심과 집착이었다. 딸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온전히 들여다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그 이후 나의 삶을 이끄는 큰 변화들이 찾아들었다. 겨울왕국 같았던 나의 마음에도 서서히 봄이 찾아와 드디어 여리디 여린 유채꽃이 눈부시게 피어난 것이다.

이제 나의 봄은 아련한 목련이 아니라 생생한 유채꽃이다. 우연처럼 누군가 건넨 말 한마디가 나의 봄 빛깔을 맑고 밝게 바꾸었다.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삶에 한 줄기 빛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그 누군들 어떻겠는가. 누구나 삶의 길에서 매서운 겨울바람 속을 헤맬 때가 있다. 스스로 겨울바람을 뚫고 헤쳐나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삶은 그리 너그럽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서로 기대어 서 있는 게 사람(人)이듯이 힘겨운 시절에 누군가 건넨 따뜻한 한 마디는 마른땅에 내리는 한 줄기 단비와 같다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숲은 온통 봄맞이로 분주하다. 봄소식을 실어 나르는 바람도 매섭지 않고 온화하다. 햇살도 따사로워 대지는 더욱더 부드러워지고 숲 여기저기 나무와 꽃들은 봄기운으로 들썩거리고 있다. 머지않아 한바탕 봄을 터뜨릴 기세다. 아직도 힘겹게 겨울 길을 홀로 걷는 이가 있다면 조금이나마 이 따뜻한 봄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의 언 가슴에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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