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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다가 전하는 말

by 풍경

제주의 겨울은 겉으로는 야박해 보여도 속정이 깊다. 사람들에게 제주의 인상 깊은 특성을 하나 꼽아 보라고 하면 바람을 많이 얘기한다. 사납고 모진 사람을 만난 것처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픈 상처만 남을 정도로 제주 바람은 고약한 데가 있다. <동백꽃>에서 소작농의 아들을 좋아하는 우악스러운 점순이나 <운수 좋은 날>에서 육두문자를 입에 달고 사는 허 생원이 그야말로 제격인 듯하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 뿐 그 누구보다도 상대에 대한 속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예로부터 바람, 돌, 여자가 많아서 제주를 삼다도(三多島)라 불렀는데 특히 제주 바람은 제주인의 삶뿐만 아니라 일상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쳤다. 그중에서 제주어는 유독 발음이 억세고 거칠어서 외지인들이 들으면 싸우는 줄 안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 나름의 사정이 있다. 사나운 바람 소리 때문에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려면 말을 짧게 하거나 크게 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의 초가나 돌담도 바람에 무너지거나 쓰러지지 않게 하려는 선조들의 지혜이다. 집채만 한 건물도 다 무너뜨리는 바람의 위력 앞에서 돌담은 비시시 웃으며 돌구멍 사이로 다 새어 나가게 한다. 이처럼 제주인들은 삶의 장애물인 바람을 피하거나 막으려고 궁리하기보다 바람을 받아들이고 삶의 지혜로 승화시키려 했다.

나는 이 모진 바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겨울 바다를 참 좋아한다. 맑은 날의 잔잔한 산홋빛 바다도 좋지만 흐린 날의 회색빛 바다가 더 좋다. 여기에다 거센 바람으로 미친 듯이 파도가 몰아치는 날은 몽유병 환자처럼 무턱대고 바다로 달려가는 몹쓸 버릇이 있다. 아쉽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월정리 바닷가는 몇 년 전부터 카페촌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관광지가 되어 예전의 고요함을 찾을 수 없다. 바다의 파도보다 사람의 파도가 더 극성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집 근처의 바다를 두고 굳이 멀리 월정리까지 가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제주에 살고 있으니 제주 바다는 안 가 본 곳이 없다. 마치 값나가는 땅만 보러 다니는 유한마담처럼 제주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유독 마음이 더 끌리는 바다가 있다. 월정리 바닷가는 그렇게 내게로 왔다. 길가에서 몇 발짝 안 가 곧바로 바다 가까이 갈 수 있고, 한눈에 넓은 바다를 담을 수 있으며, 사계절 바다색의 변화가 날씨나 기온에 따라 다채로웠다. 무엇보다 주위가 소란스럽지 않고 인적이 드물어 누군가의 방해를 받지 않는 것이 좋았다. 다만 예전과 비교하여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어느 때나 가도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나만의 정해진 때가 있다.


제주인들이 제주 바람에 순응하며 살았듯이 나 또한 인파로 북적이는 월정리 바닷가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다. 인파를 피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주말 이른 아침에 일어나 갓 내린 원두커피를 텀블러에 담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1시간을 달리면 나는 어느새 월정리 바닷가에 가 있었다. 지금의 월정리의 번잡함은 오히려 내게 이른 아침의 바닷가를 홀로 거니는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 홀로 앉아 무수히 오가는 파도를 바라본다. 어떤 날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덤벼들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자장가를 부르듯 흥얼거리며 밀려오다가 스스로 잠이 들어 밀려가기도 한다.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면 그때마다 바다는 내게 속삭인다.

‘삶의 무거운 짐을 이제는 내려놓고 비우라고, 손에 꽉 쥐고 있는 것들은 그저 왔다가는 파도처럼 지나가고 사라질 뿐이니 마음에 담아 괴로워하지 말라고… ’


살다 보면 늘 좋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인과 촌장이 부른 ‘가시나무 새’의 노랫말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쉴 곳이 없고 헛된 바람으로 편할 곳이 없었다. 바람만 불면 외롭고 괴로워 바다 앞에서 울기도 했다. 어떤 날은 격노한 파도에 나를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너무 아팠지만 그런 우여곡절의 시간 속에서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기 시작하자 온전한 나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조금씩 알아갔다.

특히 지지난해에는 내가 존경하는 스승님에게서 파도에 대한 진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스승님께서는 밀려오는 파도는 소리가 들리지만 밀려가는 파도는 소리가 없다고 하시면서 바다와 하나가 되어 모든 것을 바다 깊숙이에 던져놓고 수심결을 익히라고 하셨다. 또한 내 온 존재를 침묵에 실어 바다 한가운데 심연에 곱게 묻으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이후로 나는 온 존재를 담아 밀려가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아직은 그 심오한 뜻에 내 존재가 닿을 만큼의 깜냥이 되지 못하기에 삶을 좀 더 유연하고 자유롭게 내다볼 줄 아는 시숙(時熟)의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뿐이다.


반야심경을 읽다가 가슴에 탁 걸리면서 무수히 마음속으로 읊조린 구절이 떠오른다. -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느니라(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제아무리 파도가 높고 기세 등등해도 파도는 결국 바다로 간다. 삶의 파도가 무수히 오가며 우리를 끊임없이 위협하여도 삶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더 단단해지고 깊어지듯이 말이다. 바다는 욕심과 집착을 다 비우면 그 무엇에도 흔들릴 일이 없고 걸림이 없다는 것을 다 알고 있기에 늘 내게 비우고 내려놓으라 한다. 언제가 될 런지 기약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내 마음이 텅 빈 바다에 가닿을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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