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4부작제 마지막화
#4
어느 순간 뒤에서 다인이를 욕하는 내용이 들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다인이가 헤픈 애고, 걸레라고 표현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다인이를 감쌌지만, 감싸는 나에게 '너도 같이 있으면 같은 애로 보이니까, 빨리 다인이를 떠나'라고 했다. 정현오빠는 대놓고 똥물에 있는 내게도 똥내가 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들어도 다인이를 감싸고 싶었다. 어리다지만, 그녀를 욕하는 애들도 뒤에서는 다 성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인이의 성생활을 걸레라고 하는 건 못마땅한 표현이다. 그런 취급을 하는 애들이 이중적이고 더 역겹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다인이를 처음처럼 싸고돌진 못했다. 친한 친구들이 같이 휴가를 떠나자고 했을 때, 다인이도 같이 가자고 말했지만 모두가 싫어했다. 결국, 다인이를 두고 나만 휴가 길에 합류했다. 미안했지만, 다인이 때문에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가 나빠질 수는 없었다.
휴가를 다녀오면서 본격적인 한여름이 시작됐다. 전보다 집에 들락거리는 남자애들은 많아졌다. 대부분 가장 리더 역할을 하는 남자가 다인이와 밤을 보냈다. 잠자리를 하러 온 거면 혼자 오지, 왜 일행을 끼고들 오는지 못마땅했다. 내가 그 일행들을 케어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게 무례하게 덤비는 남자애들은 없었다. 그런 분위기가 예상되면 희망이를 불렀다. 희망이는 발이 넓었고, 이상하게도 남자들의 못난 발정 앞에서 안전했다.
희망이는 제 집에 자신이 좋아하는 오빠를 초대했다. 물론, 다른 오빠들도 같이 왔다. 서찬영이라는 오빠는 수원에서 얼짱으로 유명했다. 나도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실제로 보니 정말 잘생겨서 깜짝 놀랐다. 잘생긴 만큼 어렵게 느껴지기도 해서 말도 걸지 않았다.
알람이 울렸다. 빨래가 다된 모양이다. 빨래를 널러 집에 가려는데, 혼자 가기가 싫었다. 서찬영이라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동행할 것을 제안했지만, 모두 싫다고 거절했다. 마지막으로 거절당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서찬영에게 집에 같이 가달라고 했는데, 같이 가겠다고 일어났다. 같이 희망이네 집을 나서니까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집에 갔더니 아무도 없었고, 나는 빨래를 널었다. 서찬영은 다인이 방에서 누워있었다. 나는 빨래를 다 널었다고 말하고, 내 방에 들어가 누웠다. 잠을 못 잔 새벽이라서 피곤했다. 그런데 서찬영이 들어와 앉았다. 내가 희망이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니 좀 더 있다가 가자고 했다. 아까보다 더 세게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서찬영과 누워서 의미 없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서찬영이 나를 기습해왔다. 그리고 손의 터치는 점점 위에서 밑으로 내려갔다. 나는 안 된다고 그를 거절했다. 서찬영은 돌진하는 기세와 다르게 바로 멈추고 미안하다고 했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가 마음에 든다고 덧붙였다. 내 심장은 터질 거 같았다. 그러나 희망이가 좋아하는 오빠이기 때문에 연정을 품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 속삭였다.
며칠 뒤 서찬영은 아는 동생과 우리 집에 나를 보러 왔다.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는 달콤하게 내게 속삭였다. 목소리가 작고 희미해서 내게 가까이 대고 말했다. 모든 의미 없는 말이 다 좋았다. 그런데 다인이와 생쥐같이 생긴 남자 친구가 재회한 모양인지 같이 집에 들어왔다. 그 남자 친구는 우리 보러 나가라고 했고, 선택권이 없던 나는 그들을 보내야 했다.
희망이네 집으로 가자, 희망이는 서찬영과 연락 중이라며 그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와 또다시 만났다. 그날부터 며칠 동안 희망이네서 머물렀다. 다인이는 남자 친구와 있을 것이 뻔했다. 가고 싶지 않았다. 서찬영은 외출하듯이 나갔다가 계속 희망이네로 돌아오곤 했다.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었다. 그만큼 그에 대한 내 마음도 커졌다.
그러다 다인이가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며 울면서 전화가 왔다.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위로해주고, 술을 먹이고 재웠다. 그리고 나는 지갑과 옷가지들을 챙겨 할머니 댁으로 갔다. 하루를 뜬 눈으로 세우고, 짐을 도로 들고 다인이 집으로 갔다. 다인이를 떠난 본 거였다. 그런데 떠나고 싶지 않아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집에는 재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와는 아는 사이지만, 친하지 않았다. 또다시 남자와 하루를 보내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희망이네로 갔다. 다시 며칠을 희망이네서 묵었다. 무슨 일인지 서찬영은 오지 않았다. 왜 오지 않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나는 낮에는 친구들을 만나 번화가에서 놀고, 밤에는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
저녁께 다인이에게 전화가 왔다. 안 받았더니 문자가 남겨져 있었다.
- 제발 와줘.
문자를 보고 나는 다인이를 뿌리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집에 갔더니 재민이라는 사람이 혼자 있었다. 나보러 배가 고프다며 밥을 먹자고 집을 나섰다. 다인이가 어디 있냐고 묻자, 알려줄 테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해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밥을 먹으면서 재민 오빠는 다인이랑 왜 같이 지내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다인이와는 다른 아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더 물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는 불쾌하고 기가 차서 상관하지 말라고 했다.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진정해. 다인이가 지금 어딨는지 알아?"
"다인이 어딨는 데 자꾸 그래요?"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야. 너는 다인이랑 얼마나 지낼 수 있을 거 같아?"
알 수 없는 얘기만 해대는 통에 나는 얼른 집에 가야겠다고 일어났다. 그는 연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만지더니 택시를 잡고 어딘가로 갔다.
다인이와 연락이 안 됐다. 걱정되진 않았지만, 재민 오빠의 수상한 행동 때문에 신경 쓰였다. 답답한 마음에 재민 오빠에게도 연락했다. 그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하루를 홀로 보내고, 다인이가 재민 오빠와 같이 집에 왔다. 다인이는 기운 없어 보였고, 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이불을 펴주었다. 재민 오빠는 알 수 없는 웃음을 짓더니 나에게 잘 있으라고 하고 갔다.
다인이는 자고 일어나서 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재민이와 있었던 일을 말해주겠다고 했다. 재민 오빠가 잠시 쉽게 돈을 벌자고 제안했고, 원조교제를 알선해줬다고 했다. 원래는 원조교제를 하러 온 남자와 모텔 방에 같이 들어갔다가, 남자가 샤워하는 사이에 지갑에 있는 돈을 훔쳐서 나오는 게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승낙하고 일명 낚시 원조교제를 하러 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손님으로 온 남자가 눈치가 빨라 돈을 훔치려는데 붙잡혔고, 강제로 강간당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인이는 울었다. 나는 계속 담뱃재에 불을 붙였다. 식어 가면 또 붙이고 연기를 빨아 당겼다.
다인이는 계속 얘기했다. 그렇게 당하고 그 남자는 돈을 주고 갔다고 한다. 그 돈을 재민 오빠가 가로챘고, 재민 오빠가 위로해주면서 같이 밤을 보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돌아온 것이라고.
그녀를 안았다. 그리고 나도 눈물이 흘렀다. 슬퍼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 재민이라는 인간이 왜 그런 음흉한 표정을 지었는지, 그딴 말들을 내뱉었는지 알게 되니 역겹고 분했다.
"우리 다시 예전처럼 지내자."
다인이는 내 말을 듣고 끄덕끄덕 거렸다. 다시는 그런 꼬임에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도 덧붙였다.
인터넷을 하러 피시방에 갔더니 메신저로 재민 오빠가 말을 걸어왔다. 다인이와 같이 있냐고 물었다. 같이 있었지만, 따로 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전화가 왔다. 받자마자 욕설이 들렸다. 그의 창자에서 욕이란 욕은 다 꺼내어 뱉는 거 같았다. 기분이 나빴지만, 같이 욕할 수는 없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재민 오빠는 다인이와 그날 잠자리를 했고, 그 뒤로 성기에 문제가 생겨서 병원에 갔더니 성병이라는 거였다. 그러면서 다인이에게 옮은 것이라고 그녀를 계속 욕했다. 찾아올 기세여서 겨우 진정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다인이에게 재민 오빠가 성병에 걸렸다고 말했다. 다인이는 슬퍼 보였지만, 대답만 할 뿐 별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밤새 간지럽다며 잠을 설쳤다. 그래서 아침이 밝아 그녀를 데리고 병원을 갔다. 진료실에 같이 들어갔고, 의사는 성병인 거 같다며 정확한 진단은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고 바르는 약과 몇 가지 약을 지어줬다.
재민 오빠에게는 계속 연락이 왔다. 나에게 분풀이를 하는 모양이었다. 계속 찾아오겠다는 으름장을 부리지만, 찾아오지는 않았다. 내가 계속 만류하고 사과했다. 그렇게 진정시키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인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의 방어를 하고 있는 거였다.
며칠이 지나자 재민 오빠의 연락은 잠잠해졌다. 나는 희망이네서 술을 마시고, 자정쯤 집으로 걸어갔다. 혼자 있을 그녀에게 가는 길이었다. 현관 앞 미닫이문을 열자 남자 신발이 보였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서찬영의 신발이 틀림없었다.
다인이 방문은 닫혀 있었다. 그 문을 열 수 없었다. 내 방에 들어와 앉았다.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뱃재에 불을 붙이고 붙일수록, 그녀를 겪고 겪을수록 그녀에게 중독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 없는 그녀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녀에게 중독된 내가 죄인 같았다.
엄마는 요양지에서 돌아왔고, 나도 집에 들어왔다. 삼주 정도 됐을까. 마치 삼 개월, 아니 삼 년이 흐른 거처럼 뜨거웠던 여름날의 기억이 멀어진다. 나는 중독을 끊었다.
여보세요?
/ 네. 석현오빠.
집에 돌아갔다며? 오빠는 네가 보고 싶다.
/ 저 이제 안 가요. 전화번호도 바꿀 거예요. 오빠 번호도 삭제할 거예요.
오빠가 귀찮게 안 할 테니, 그러지 마라.
/ 미안해요. 모든 걸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래. 오빠가 네 마음을 돌릴 순 없겠지?
/ 잘 지내세요.
석현오빠는 꾸준히 내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그리고 나는 수원을 떠나서 수원의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차에 석현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으니, 더 잘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미련일까, 계속 연락 오는 그녀를 뿌리치지 못하고 그녀의 집에 찾아갔다. 냄새가 낯설었다. 항상 좋은 냄새가 나던 집에서 탁한 냄새가 났다. 내가 들어오자 그녀는 자리에 나를 앉히고 세 군데나 원형 탈모된 머리를 보여줬다. 내가 간 뒤로 김택연 무리와 어울려 지냈는데, 걔네들이 가스를 흡입하곤 했다고. 그래서 자기도 같이 하게 됐는데, 그래서 머리에 탈모가 생긴 거 같다고 말했다.
"배고프지 않니?"
다른 말은 할 수 없었다. 이미 표정으로 모든 것을 말해버린 것 같았다. 그저 그녀에게 배고프냐고 물었다. 그녀는 배고픈데 귀찮으니 안 먹겠다고 했다. 지갑에 있던 2만 원을 주고 배고플 때 밥을 사 먹으라고 하고 집을 나왔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불붙일수록 강렬하게 중독됐다. 그녀는 담배였고, 강렬했고, 때로는 아팠다. 남들은 모두 담배를 끊으라고 조언하고 욕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담배에 중독됐었다.
- 마지막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