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4부작 제 2화
#2
다인이네서 지내다 보니 일주일이 훌쩍 넘었다. 크게 불편함도 없고 오히려 친구들을 만나기에 가까운 곳이라 더 지내고 싶을 만큼 지내기로 했다. 다인이와 나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학교를 무단결석한다는 거였다.
나는 담임에게 3주간 쉬고 오겠다고 통보하고 그 뒤로 수시로 학교를 빠졌다. 다인이는 학교생활 자체에 적응을 못하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다 보니 툭하면 결석하거나 지각했다. 나는 학교를 안 갔지만, 며칠은 그녀를 억지로 깨워 교복을 입히고 학교를 보냈다. 그녀를 돌봐주는 부모님이나 보호자가 없어서 그녀는 어쩔 수 없는 방황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돌봐주고 싶은 마음으로 아침에 깨워주거나, 빨래를 해주거나, 밥을 하거나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집안일 분담이 이뤄졌다. 나는 주로 빨래를 했다. 여름이라 매일 같이 빨래를 해야 했다. 어느 날은 그녀가 입을 팬티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로 얼룩진 팬티들을 보여줬다. 나는 그것을 모두 손으로 빨래했다. 그녀는 왜 생리대도 없이 생리기간을 보냈는지, 왜 그것을 빨래하지 않았는지 그런 건 묻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돌볼 만큼의 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팬티를 빨면서 그녀가 너무 안 됐고, 슬퍼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인이는 단순한 존재인 거처럼 늘 가볍게 굴었다. 내가 자신을 측은해한다고 느끼면 별 대수롭지 않은 상황에 따뜻한 친절을 베풀어주는 존재를 만난 거처럼 고마워했다. 어쩌면 그런 어린아이 같은 모습 때문인지 그녀 곁에 머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십 대 소녀 둘이서 사는 이 집은 금세 아이들의 아지트가 됐다. 누구든 놀러 왔고, 누가 오든 내치지 않았다. 여자 친구들은 보통 화장을 하고 가거나 잠시 있다 가곤 했다. 반대로 남자애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오랜 시간 앉아 있었다.
보통 밤에는 다인이의 생쥐 같은 남자 친구와 그의 친구가 와있었다. 보통 같이 밥을 먹거나, 술을 마셨다. 그때는 돈도 별로 없어서 저렴한 소주를 사마셨다. 맥주는 더 비쌌기에 사치였다. 글라스 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서 맥주를 마시듯 꿀꺽꿀꺽 삼켜 마셨다. 그러다 술에 취하면 시원한 바닥에 누워 잠들었다.
다인이와 그 남자 친구는 자주 싸웠는데, 툭하면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했다. 재회와 이별이 일상이었다. 나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다인이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거나 싸우면 다른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주로 남자애들로 오빠들이었다. 그러면 게임을 하면서 놀거나 지루하게 담배나 피워댔다. 그래도 우리 집에 온 아이들은 대부분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데도 불구하고 부모와 따로 살고 있는 우리를 부러워하며 그 공간마저 동경했다.
다인이는 작고 날씬하고 예쁘장하게 생겼다. 그래서 남자애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나는 주로 여자 친구들이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남자애들은 내가 남자인 거처럼 편하게 대했다. 그래서 나는 거의 남자애들을 집에 들이지 않았다. 찾아오는 애들을 내쫓지는 못했지만, 일부러 데려오지도 않았다. 남자애들을 집에 들이면서 나를 쉬운 여자로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문란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다인이와만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친구가 많았고, 학교가 다르더라도 그 동네에 유독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인근에 사는 희망이네 집에도 자주 오갔다. 그 친구는 한부모 가정이었고, 엄마는 새벽 늦게야 집에 돌아오시곤 했다. 희망이도 다인이처럼 돌봐주는 사람이 거의 부재했고, 외로워했다. 나는 그런 희망이 와도 친하게 지냈는데, 내심 다인이가 그 사이를 질투하기도 했다. 자신과 더 시간을 보내달라고 유치하게 조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다인이와 희망이 둘이 친하게 지내면서 셋이서 노는 것을 원했다. 둘은 대립적이어서 함께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희망이가 좋아서 다인이를 두고 희망이네 집을 자주 놀러 갔다. 주로 희망이는 컴퓨터를 하고 나는 옆에 앉아서 같이 보며 웃고 떠들곤 했다. 어느 날은 희망이가 즉석 만남인 벙개를 하자고 했다. 나는 꺼림칙했지만, 희망이가 별거 아니라고 하니 거절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다인이와 같이 놀면 벙개를 하겠다고 제안했다. 희망이도, 다인이도 썩 내켜하지 않았지만 평소에 안 그러던 내가 졸라대니 어쩔 수 없이 승낙하는 것 같았다.
남자 세 명이 갤로퍼 구형을 타고 왔다. 너무나도 낡은 자동차 모습에 우리는 인상을 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겨우 여섯 명이 차에 끼어 타고 역전으로 향했다. 우리는 갤로퍼 구형만 창피한 게 아니었다. 그 남자들도 못생기고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차에서 내려 로데오거리를 걷게 되었을 때 도망가자고 모의했다. 재빨리 우리는 다른 길로 도망쳤고, 그 남자들은 굳이 우리를 쫓아오진 않은 거 같았다.
갤로퍼 삼인방을 따돌리고 한숨을 돌리니 재미있고 쾌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문제점이 바로 나타났다. 셋 중 아무도 돈을 들고 오지 않아서 집에 돌아갈 택시비조차 없었다. 돈이 없다는 문제를 알게 되자 다인이는 굉장히 신경질을 내면서 같이 벙개를 한 것을 후회하고 책망했다. 그러더니 금세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다.
금세 다인이 안색이 밝아졌다. 아는 오빠와 연락이 됐는데, 동네 공원으로 오면 택시비를 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택시를 잡고 동네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도착하니 키가 훤칠하고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오빠가 나타나 택시비를 지불했다. 다인이는 웃음을 참으며 으스댔다.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오빠는 우리에게 아는 형들과 있었다며 같이 합류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쭈뼛쭈뼛하다가 그 오빠를 따라 공원 벤치에 앉았다. 그 오빠 일행은 운동하러 공원에 나왔다가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고 했다. 형들이 잠시 볼 일 보러 갔다며 곧 올 거라고 했다.
우리는 담배나 피우며 오빠 일행이 오길 기다렸다. 그러다 공원 저만치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딱히 할 게 없었기 때문에 그곳을 계속 주시했는데, 저만치에 있던 사람들이 가까워졌다.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양아치처럼 보이는 남자 네 명이서 우리에게 다가와 시비조로 말을 뱉어댔다. 정확히 기생오라비 같은 오빠에게 시비를 걸었다. 시비는 일파만파 급 전개되었고, 결국 그들은 그 오빠에게 온갖 욕을 해대는 게, 분에 안 풀렸는지 얼굴을 마구 때렸다. 그 오빠는 얼굴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자신의 일행들에게 연락했다.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오빠의 일행들은 금세 도착했는데, 양아치 같은 남자들은 거칠게 말을 해댔고, 그 일행들은 젊잖게 혹은 양아치들에게 졸아버린 약자인 거처럼 굴었다. 소위 양아치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뻔했다. 누구 형님을 모시고 있고, 누구의 친구이며, 누구의 선배이다, 라면서 족보 타령을 해댔다. 그렇게 족보를 끼워 맞추다 보니 기생오라비의 일행인 큰형이 가장 서열이 높은 것으로 결론이 났다. 내용을 들어보니 서로 아는 지인들과 양아치 나름의 조직에서 얽혀있는 관계인 거 같았다. 서열이 정리되니 기생오라비 오빠를 때린 작자는 무릎을 꿇고 빌었다.
상황이 해결되자 얻어맞은 오빠는 병원에 갔다. 코뼈가 부러진 거 같다고 했다. 큰형은 그 양아치들을 몇 대 때리더니 보내줬다. 우리는 그 큰형과 다른 일행인 작은형과 어색하게 벤치에 앉아 있었다. 병원에 간 오빠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무서워서 집에 가겠다고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 큰형은 이름이 석현이었고, 조직 생활을 하다가 현재는 유흥업소에서 일을 봐주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겁먹은 모습이 보였는지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그러면서 맥주를 마시다 보니 술맛이 더 당겨서 술을 사 왔다고 술을 꺼내 마셨다. 노상에서 술을 마시는 거라 제대로 된 안주도 없었다. 나는 석현이라는 사람이 너무 무서워서 소주와 맥주가 섞여있는 비닐봉지만 쳐다봤다.
석현이 오빠는 이미 술이 조금 된 상태였다. 깡소주를 마시는 자신이 머쓱했는지 우리에게 맥주를 권했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는 둥 마는 둥 캔을 따고서 입에 물고만 있었다. 석현이 오빠와 그 일행인 작은 오빠는 우리가 예쁘다며 굉장히 좋아했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계속 질문을 해댔다. 몇 살인지, 어느 학교인지, 남자 친구가 있는지, 어디 사는지 등등 호구조사를 했다. 이상한 분위기였지만, 나쁜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상냥하게 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겁먹어 홀딱 젖은 생쥐마냥 보이는 게 안쓰럽고 미안해하는 거 같았다.
시간이 흐르자 석현이 오빠는 많이 취했다. 그런데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였다. 특히 나에게 말을 많이 붙였다. 내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무섭고 그 자리에서 당장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다 만취한 석현이 오빠는 나를 벤치 반대편에 있는 나를 힘으로 끌어당겼다. 힘이 얼마나 센지 나는 벤치를 통과하면서 바닥 질질 끌려갔다. 무릎이 화끈거리고 갑자기 공포심이 휘감았다. 무릎에서 피를 흘리며 눈물까지 흘리는 나를 보고 석현 오빠는 자신이 취해서 실수를 한지 깨달았는지 연신 자세를 굽혀가며 빌어댔다.
희망이는 울고 있는 나를 자리에 앉히고 소주를 내 무릎에 부었다. 희망이는 다쳤으니 소독을 하는 거라고 했다.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나는 눈물을 그치고 기분을 풀려고 노력했다. 석현 오빠도 조용해져서는 우리는 조금 말을 텄고, 엄숙했던 분위기는 빠르게 환기됐다. 그리고 병원 응급실을 갔던 그 오빠가 돌아오면서 분위기는 빠르게 안정됐고,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휴대폰 번호를 눌러주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제 3화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