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쉐프샤우엔 : 이왕이면 좋은 것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건 어떨까
파랗다. 이쪽도 저쪽도 시선이 닿는 곳마다 파란 물결에 휩쓸린다.
바다 같다고 표현하기에는 적절한 비린내나 파도 소리가 들려오지 않기에 스머프 마을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나 보다.
쉐프샤우엔에서는 호스트 파샬네 가족과 함께 머무르기로 했다. 키는 작지만 다부진 체격에다 말을 할 때마다 꿈벅거리는 큰 눈이 인상적인 파샬, 그리고 그의 아버지, 어머니, 일곱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여동생까지. 호스트 혼자 사는 집이 아니라 가족의 집에 초대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파샬의 어머니가 빌려주신 모로코 전통의상을 입고 파샬과 함께 골목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한참을 쏘다니다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가 차려주신 따뜻한 현지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본 가족의 품이 참 따듯해서 이 작은 도시를 떠나는 날을 자꾸만 미뤄왔는지도 모르겠다.
하루는 파샬이 근처의 악셔산에 오르자고 했다. 트레킹이라면 질리도록 했지만, 작은 도시에서 딱히 할 것도 없었기에 따라나섰다. 그래도 막상 산에 올라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나니 상쾌했다. 우리는 산 중턱에 앉아 미리 준비해 온 요구르트와 빵으로 요기를 채우기 시작했다.
파샬과는 유독 말이 잘 통했다. 그가 동네 친구였다면 매일 저녁마다 집 앞으로 불러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정도로. 그래서 슬그머니 털어놓았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돌아가야 하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불안에 대해.
“사는 게 너무 힘들었어. 학창 시절에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만 했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인정받기 위해 아등바등거리며 일만 해왔거든. 그래서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무서워.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시간들이 길 위에서 뿐일까 봐.”
파샬은 큰 눈을 한 번 깜박인다.
그리고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옆에 흩어져있던 돌과 나뭇가지를 가리키며 말을 시작했다.
“너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살아있다고 생각해봐. 조그만 돌, 나뭇가지, 풀 한 포기, 그리고 여기 있는 나까지. 이것들이 너를 해칠 것들이라고 생각해봐. 어때?”
“음……. 두렵고, 무섭고. 그럴 것 같아.”
“하지만 이것들이 너에게 도움을 주는 선한 존재라면?”
“그럼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하겠지?”
“거 봐. 어쩌면 너의 주위는 변한 것이 없을지도 몰라.
변한 것은 너의 마음뿐이지.”
변한 것은 내 마음뿐. 그가 한 말을 천천히 되뇌었다.
갑자기 온몸에 닭살이 돋는 듯하다.
지금까지 어떤 마음으로 내 주위를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나의 편협한 시선이 일상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산을 내려온 뒤에도 내 마음은 생각들로 가득 차 계속 소란스러웠다.
집에 도착해서 늦은 저녁을 먹은 후 또다시 시내로 나섰다.
골목을 걸으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한참 골목을 따라 걷다 모퉁이를 돌아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그림들이었다. 파란 도시 쉐프샤우엔을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수많은 그림들.
이렇게나 색깔이 뚜렷한 도시도 누가 바라보는지에 따라 제각기 다른 그림이 완성되는데.
하물며 내가 살아가는 곳은 어떠할까.
우리는 똑같은 하루를 보내더라도 누군가는 긍정적인 시선으로 좋은 것만 바라보고, 누군가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힘들었던 것만 떠올릴 것이다. 두 사람은 같은 하루를 보냈더라도 행복한 하루를 보낸 사람과 불행한 하루를 보낸 사람으로 달라지게 되겠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순전히 내게 달렸다.
이왕이면 좋은 것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건 어떨까.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날에도
나를 웃게 만드는 실낱같은 장면은 있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