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이혼해도 나의 아이를 키우련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미처 짐작도 못 했다.
한 생명을 낳아 기르는 일이 이토록 위대한 일이며,
희생이 요구되는 엄중한 책임의 과정이라는 것을.
더불어, 나와 꼭 닮은 아이를 기른다는 일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황홀함을 준다는 것도...
양육이라는 것은 그만큼 고되고, 고된 만큼 귀하고 값진 선물과 같은 일이다.
다시 결혼을 하고, 또 이혼을 하게 되더라도
내 아이를 낳아 기르는 행운을 얻게 된다면
두 번 이혼을 한다 해도 그 결정에 후회는 없을 것 같다.
그 시절에는 '힘들고 슬퍼할 여유'도 없었던지라,
때로는 아이를 독박 육아 하는 것이 버겁다고도 느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기대했던 삶의 경로에서 이탈해서 이리저리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했던 철없던 엄마였던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정신 바짝 차리도록 도와준 것은 바로 나의 아가였다.
그토록 소중하고, 순수하고,
절대적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순결한 존재를 살면서 만나본 적이 없다.
나의 아이와 만나서 함께 살아가며, 그 아이가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그 모든 과정, 순간순간이 기적 같았다. 정말로, 그런 일은 기적이리라.
그러나. 그럼에도. 그토록 아이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김에도 불구하고,
자의식이 강하고,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아온 열혈 사회인 중 한 명으로서,
일과 양육을 오롯이 혼자 다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둘이 해도 힘들 육아를 홀로 담당하다 보니,
나를 찾을 시간은커녕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고 산 지 오래였다.
더구나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아이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던지라, 스스로에 대해 가혹하게도 몰아붙이며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을 미뤄뒀었다.
출산 후 다른 모든 것보다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 우선이 되기 시작하면서
자아정체성의 혼란부터 직업 세계에서의 도태, 스스로를 잃어버린 것 같은 우울감, 고립감이 생기게 되더라. 차라리 직업 세계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육아에만 전념한다면 엄마 노릇이라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엄마가 된 이후로 내 삶의 주인공은 아이가 되었다. 나는 이름 대신 ‘**엄마’라는 별칭으로 아이를 주인공으로 삼는 소설 속 부수적 인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평일 저녁의 시간을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오로지 '나를 위해' 쓸 수 있다는 것. '나만의 시간'을 갖고, 처녀 적 내 모습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가끔 호텔에 가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냥 멍 때리고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달리기에는 종착점이 있을 것인데, 어째서 엄마라는 달리기에는 목적지가 없는 것일까? 누가 정해주지도 않았고, 다들 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뛰고 있어서, 어떻게, 얼마나 빨리,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82년생 김지영’의 영화 속 주인공은 육아를 하면서 말을 잃어버리는 극단적 상황까지 가게 된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에서 그녀가 자신만의 언어를 찾았듯이, 일단은 다시 '나'를 찾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싱글맘의 육아도 별로 다르지는 않다. 다른 가정과는 조금 특별한 가정환경 속에서,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고 건강히 잘 자라주길 바랄 뿐이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기도 벅찬 세상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기를 선택한
수많은 용감한 싱글 맘, 싱글 대디들의 고된 하루를 응원한다.
우리들의 고생 끝에, 잘 자란 아이들의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다.
홀로 양육하느라 고생한 부모의 노력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더 바르게 자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아이는 결국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