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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Aug 07. 2024

끝이 보이지 않는 자존감의 추락, 회복이 우선이다.

이 글은 무엇보다 진솔한 고백의 수기여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혼 후 겪었던 감정의 변화 과정에 대해 숨김없이 기록해 보고자 한다.      


앞서 이혼 직후, 호기롭게 당당한 싱글맘을 선언했었던 당시, 이런 생각으로 교만에 빠져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를 거야. 누구보다 잘 해낼 자신이 있어.
문제가 있는 채로 부정적인 분위기의 가정 환경에서 함께 키우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한 부모 가정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잖아?
 더구나, 나는 교육 전문가잖아!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데, 여기서 무너질 순 없지!'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쉽게 풀리는 가벼운 게임이 아니었다. 스스로 애써 괜찮은 척하려 해도, 상황이 이렇게 되버린 것에 대해 원망이나 자기 연민이 점점 강해졌고, 남들의 시선도 신경쓰였다. 실은 괜찮지 않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자존감이 아닌 자존심을 앞세우며 버텨온 시간이 오래 지속되어갔던 것이다.  

    

아마도 실패를 겪어보지 않은 모범생들이, 어른이 되어 오히려 큰 실패를 겪고 잘 안풀리는 경우는 이런 이유에서이지 않을까. 한 마디로 고난에 대한 맷집이 부족했던 것이다. 아마 어려서부터 사고도 많이 치고, 성격이 털털한 친구들은 작은 실패를 무수히 겪어왔기에, 오히려 회복탄력성이 클 것이다. 아이들도 첫 걸음마를 배울 때 수만 번 넘어지고 걷기 시작한다던데, 그 수많은 '넘어짐'이 인생을 일으키고 버티게 할 힘이 되게 한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었었던 것 같다.     


또한 객관적으로 보면, 일과 가정은 별개이고, ‘이혼’이라는 개인적 사건과 나의 ‘직업적 자아’는 별개이지만, 이혼 직후에는 직장에 복귀하는 것도 겁이 났었다.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높은 기대가 요구되는 직업을 갖고 있던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      


‘가정도 못 지킨 내가 무슨 자격으로 아이들 앞에 서지? 학부모님들이나 동료 선생님들께는 지금 내 사정을 이야기해야 하나?’     


무엇보다 아직 내 안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덧나 있는 채로, 씩씩하게 직장일을 해낼 자신이 없었다. 더구나 이혼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았었기에, 다친 내 마음의 상처를 회복시키는 일이 급선무였다.      


사람들은 이혼을 커밍아웃하면 누구나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왜 이혼하셨어요?" “많이 힘드시죠?”     


아마 속으로는 ‘어딘가 문제가 있었겠지..일방적인 잘못이 어디있겠어.’라고
생각하며 비난하고 편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로 이혼을 원치 않는 ‘무책 배우자’들은 수도 없이 많다. 이혼 사유가 나로 인해 비롯된 것이 아님에도 이혼 후 온갖 후유증은 똑같이 겪어야 한다는 점도 어찌보면 매우 억울한 상황이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가 어긋나게 되기까지 조금의 잘못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 사이에 약간의 갈등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오히려 갈등을 원만하게 조정해가며 상대방을 이해하고 맞춰가며 살아야 하는 것이 좋은 부부일 것이다. 만약 약간의 갈등이 있다고 해서 '부인이 저러니까 바람을 폈지~' 혹은 '저렇게 행동하니까 맞고 살지~' 뭐 이런 식의 억측은 말도 안 되는 논리라는 데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왜 그리 상처를 받았냐고 묻는다면 간략히 이혼 과정을 설명하면 수월할 것이다.

내 경우에, 성격 차이는 기본, 폭력과 폭언, 신뢰의 붕괴, 각자의 집안 싸움으로 번지며, 서로를 헐뜯고 배려하지 않는 온갖 진흙탕을 겪었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의 폭력적 태도 때문이었지만, 그 과정을 다시 재현하고 싶지는 않다. 수년이 흐른 지금도 역시 폭력적인 상황을 보면 가슴이 철렁하고, 피하고 싶고 하니까. 상담 선생님은 내 안의 깊은 무의식 속에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고 하셨다. 그걸 극복한다는 건 인생의 새로운 과제가 되어버렸다.     


...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한다는 건 매우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배우자를 잃고, 큰 상처를 얻은 뒤로 나의 자존감을 회복하기까지의 과정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것이 이혼 후 겪는 가장 큰 후유증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 부분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렇다.

이혼 직후의 당신은 바로 ‘결혼의 끝이라는 종착역’에서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된다.

하지만 이 출발은 산뜻한 시작이라기보다, 결혼의 실패로 인해 얻은 많은 상처와 후유증을 치료해야만 의미가 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비슷한 처지의 싱글맘들이 있다면 꼭 이 얘기를 해드리고 싶다.


결혼의 실패는 당신들의 탓이 절대 아니라고.
그러니 스스로를 원망하거나 자책하지 말고,
부디 어두운 상처의 동굴에서 하루 빨리 나오시라고.
 
우리들 모두는 어떤 이유로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아도 될,
사랑받아 마땅할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이혼 직후, 그리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진 자존감의 추락을 회복하기 위해 필자는 ‘자존감’의 회복과 ‘회복 탄력성’, ‘마음 챙김’, ‘자기 돌봄’ 등의 심리학적 치료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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