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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Oct 19. 2024

다코야키와 사우나

(이 글은 2023.6.4 쓴 글을 각색하였습니다.)


싱글맘으로 살다보면 '싱글'보다는 '맘'에 더 방점을 찍게 된다. 싱글의 여유로움도 있지만, 엄마로서의 분주함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같았던 주중의 일상이 지나가고, 아이가 아빠와 면접교섭을 하는 주말이 되면 나는 다시 '싱글'이 된다. 주말 부부도 아니고, 주말 싱글! 아, 이 얼마나 자유로운 시간인가!

가끔은 정말 독박 육아에서 해방된 그 시간들이 나를 살리기도 했고, 다양한 취미생활과 여가. 하다못해 마음 놓고 낮잠이라도 잘 수 있게 하는 귀중한 탈출구였다.


그러나 사실 돌이켜보면, 24시간 내 곁에서 뛰놀던 아이가 사라진 허전함은 혼자 있을 때의 자유로움을 온전히 만끽하지 못하게 했다. 비로소 홀로 있게 되는 순간, '둥지 증후군'처럼 알 수 없는 공허함이 파도처럼 물밀듯 밀려왔다. 아이가 있을 때는 내색하지 못하던 답답함, 막막함 같은 것들도 함께 떠밀려왔다. 


그 빈자리를 사람으로 채울 수도 있겠으나, 나는 구태여 번거롭게 에너지를 쏟아가며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하고 싶지 않았다. 불안하거나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주로 나의 한가로운 '싱글의 시간'들은 내면의 에너지를 채우고, 외면의 에너지를 보강하는 데 쓰였다. 


마음이 답답해서 콱 막힌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어떻게든 마음에 쉼을 주고, 숨통을 트이게 하고싶을 때

나는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을 만나 상담하는 대신에 도서관을 거닐다가 나를 치료해 줄 책 한 권을 골랐다. 


< 만두와 사우나만 있으면 살 만합니다. >라는 책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학력이나 재력, 현재의 상황이나 나이 등을 초월해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절대적인 것들은 의외로 소박한 것에 있다는 이야기.     


생각해보면, 40여년의 삶을 살아내는 동안, 힘 들 때마다 나를 위로해준 건 의외로 소박한 것들이었다.

나의 경우에 만두보다는 다코야키나 떡볶이, 칼국수 같은 음식들이 그러했다.     


일상이 힘들고 버거울 때, 집 근처 허름한 분식집에 터덜터덜 찾아가서

아무렇지 않은 것마냥 떡볶이를 흡입했었다. 그래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라는 책도 나온 게 아닐까? 아마 저자도 삶을 달래는 매콤하고 달달한 그 음식 덕분에 많은 상념들을 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20대 시절에는 서울에서 유학 살이를 하면서 '남대문 시장 구석에 있는 칼국수 집'을 그렇게 자주 갔더랬다. 뭐랄까. 건강하지도 고급지지도 않은 음식들이지만, 그냥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는 목적 달성으로는 이만한 음식들이 없었다.     


아이를 전남편에게 보낸 어느 면접 교섭일에는 사우나를 갔다가, 사우나 건물 1층에 파는 작은 다코야키 집에 들렀던 날이 있다. 50대 후반쯤 되어보이는 유쾌한 아저씨가 홀로 운영하는 아주 저렴한 다코야키 가게.

요즘 세상에도 천원으로 살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것에 한번 놀라고, 의외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맛의 다양성에 두번 놀라고, 마치 엄마가 전부쳐 주듯이, 가정적인 다코야키의 제작 방법에 세 번 놀라며, 어느새 나는 한 접시에 천원인 다코야키를 네 접시나 먹고 있었다. 좀 자제했어야하나? ^-^;


기억이 어렴풋했던 어느 시절에, 우울증에 정신과를 드나든 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우울증이 흔한 감기처럼 여겨지지만, 정신과를 드나든다고 하면 마치 치유불가능한 병에 걸린 문둥병 환자보듯 하던 시절도 있었기에 가족들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서 우울한 자아와 싸워내던 시절이었다.  


정상적인 생각도, 이성적인 판단도, 건강한 호흡도, 충분한 수면도, 적절한 식사도 할 수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떡볶이랑 냉면, 칼국수, 다코야끼 같은 음식들은 먹고 싶더라.     


아마도 뇌가 본능적으로 스스로 행복했던 순간을 저장해 놓고, 제 주인이 정신을 못 차릴 때, 발걸음을 움직여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도록 이끄는 것 같다. 이런 것이 바로 초자아의 엄청난 힘이라고 할 수밖에..    

 

<만두와 사우나만 있으면 살 만합니다>의 저자가 말했듯, 삶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울 수 있고, 위기는 언제든 또다시 찾아온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위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이겨낼 절대적인 행복의 기준을 만들고, 철저히 대비해두는 것이다.   


다시 또 불행해지거나 위태로워지면 다코야키를 먹고, 사우나를 가면 된다.     

위기를 극복하고 행복해지는 비법은 의외로 소박하고 간단하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행복의 순간들이 쌓이고 다양해질 때,

행복은 당연한 듯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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