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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Oct 06. 2024

넘치는 사랑에 휘청거리다.

( 이 글은 23.1.24에 작성된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



저의 아들은 올해 또다시 여덟 살이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 8년의 인생은 인생 전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양적으로 많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해서, 적게 산 이보다 마음이 더 깨끗하고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고작 만 8년, 약 3000일에 불과하지만,

그 녀석이 없었던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감히 상상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 작은 녀석은 단어를 배우고 문장력이 늘어날 때마다

감동할 만큼 제게 과분한 사랑 고백을 해 줍니다.

가령, 이런 식입니다.


"엄마, 지구와 해님과 달님과 별의 개수와 구름의 개수만큼 사랑해요~"
"00아, 엄마도 백배 천배 사랑해~"
"엄마, 나는 백배 천배 만배 백만 배 천만 배 억 배 경배의 두 배만큼, 세상의 모든 것보다  더 많이 사랑해요~"

"(감동한 침묵)"



세상 어느 남자가 이런 셀 수 없을 만큼 큰 숫자만큼 사랑한다 고백해 줄까요?

이렇게 온전히 저의 모든 것을 본질적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내리사랑만 받아봤지만, 자녀로부터 받는 사랑은 감히 말하건대,

부모님께서 주시는 내리사랑보다 더 감동스럽습니다.



게다가 이런 고백은 아침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끊임없이 지속됩니다.

저의 표정을 하루 종일 세심하게 바라보다가 조금 울적해 보인다 싶으면 다가와서 사랑 고백해 주는

다정하고 애정이 넘치는 아들 녀석입니다.



한부모 가정이 된 이후로 걱정이 참 많았습니다.

아빠가 없어서, 빈자리가 커서, 남들의 시선 때문에.

집안을 지켜줄 든든한 남자가 없어서. 무거운 짐을 들 때마다.

볕 좋은 날 소풍 가서 우리만 둘이라는 이유로.

식당에 가서 앉으려 하면 '두 분이세요?'

단 둘이 여행 가면 '아빠는 바쁘신가 봐요.'

학교 상담을 가서, 양 부모가 모두 참석한 학부모들을 바라볼 때마다,

...

기타 등등 오만가지 잡다한 이유로.

너무나 의기소침하고 걱정이 많았었습니다.


그. 러. 나.


이토록 과분한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이런 넘치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원래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것 아니었나요?

신은 자신을 대신해서 어머니를 세상에 내린 것이 아니라,
그 어머니들을 위해 자식을 보내준 건 아닐는지..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의 이유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았습니다.

어미만 바라보는, 순진무구한 존재를 두고서, 어른인 우리들은 더욱 마음이 넓고 강인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위험 천만한 순간에도 제 새끼를 보듬어야 합니다.




청소년 소설 중에 '기억 속의 들꽃'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한국 전쟁 시절의 이야기인데, 주인공인 9살가량의 여자아이의 어머니가 죽는 순간이 이렇게 묘사됩니다.

"어느 날 명선이는 부모가 죽던 순간을 나에게 이야기했다. 피난길에서 공습을 만나 가까운 곳에 폭탄이 떨어졌는데 한참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어머니의 커다란 몸뚱이가 숨도 못 쉴 정도로 전신을 무겁게 덮어 누르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위 소설에서 아이를 살린 것은 어머니의 희생 덕분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행기의 공습을 제 몸으로 대신 맞아가며 아이를 살려냈습니다. 아이는 아마 어릴 때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버려두고 대신 죽은 어머니의 마음을.


하지만 이 아이가 '목숨을 바칠 만큼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해하게 될 때가 오면, 아마도 그 역시 누군가를 위해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비틀거리는 일상에서 무릎이 휘청거릴 만큼,
과분한 사랑 고백을 퍼주는 녀석 덕분에
오늘 하루도 감동입니다.
이런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도 많을 텐데,
제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단 한 사람, 아이 덕분에,
싱글맘의 하루하루는 완벽하지 않아도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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