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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Oct 26. 2024

유랑과 정착 사이, 그 어디쯤.

사람이 살면서 받는 스트레스 중 '이혼'이 2번째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이혼이라는 건 삶에 거대한 파도와 같이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고, 적응하기 어렵게 만든다. 대부분 자녀가 있는 채로 이혼을 한다면 자녀의 안정적인 삶이 그대로 유지되는 게 최우선이라 여기기 때문에, 이혼 후에도 결혼 전의 라이프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 경우, 아직 너무 어린 아이를 데리고 이혼했기 때문에, 어디서 정착해서 어떻게 살아갈지는 온전히 내가 결정해야만 했다. 


애초에 방랑벽이 있었던 걸까. 

직업상의 이유에서였을까. 


하나의 도시에서 5년을 못 버티고 이사에 이사를 거듭하면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디에서 정착해서 살아야할지 마음을 못 붙이고 있다. 


요즘은 뜬금없이, 한적한 바닷가 시골 살이를 하면서 책방이나 차리면 어떨까 망상에 빠져있다. 

모지스 할머니의 풍경화에 나오는 목가적인 작은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과 티타임을 나누며, 찾아오는 꼬맹이들한테 동화 낭송회나 해주면서, 동네 문화센터처럼 마을 사랑방을 만들어서, 가끔은 벼룩시장도 하고, 문화 강연회도 열고, 독서 모임도 종종 열면서. 출퇴근은 자전거로 나들이 하듯 하고, 하루에 꼭 2번씩은 산책하며. 한 끼는 꼭 텃밭에서 기른 재료들로 자급자족해가면서. 밤에는 별을 보고, 새벽에는 일출을 볼 수 있는 그런 아름답고 소박한 곳에서 아이와 살면 어떨까. 그렇게 살면 어떨까. 꿈을 꾸게 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이의 학군이나 학원가와 편리한 신도시 라이프는 포기해야만 한다. 


그도 아니라면, 홀연히 외국으로 2년쯤 동반 유학을 떠나면 어떨까? '이왕이면 한국인은 없는 곳에 가서, 낯설고 이국적인 환경에 맨몸으로 적응해가며, 생활력을 길러야겠다.' 이런 허무맹랑한 생각도 하고 있다. 그런 곳에 가면 인종 차별을 받을 수도 있겠고, 영어가 안 돼, 이런 저런 피해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이곳에서도 말은 많이 없었으니, 그저 미소와 진심으로 소통해 가며, 한국 음식의 맛을 널리 알리면서, 소박하게 김밥집이나 차려볼까? 이런 망상도 해 보면서.... 



철이 없는 걸까? 보통의 삶의 궤적에서 이탈하여,
상황 판단 능력이 부족해진 걸까?

왠지 모르게 이혼을 하고 나니까, 뭘 하든 용서받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어떻게 살든, 어디서 살든, 이제부터 그건 나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이라는 소설 속 주인공 이야기에 빗대어 보자. 

책 속 주인공은 40대 후반의 출판편집자이다.

성향이 다른 이성적인 금융전문가 아내와 이혼하고, 고급 아파트에서 한적한 농가로 이사를 감행한다.

집값이니 투자가치니 매도 계획이니 이런 걸 신경쓰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그저 숲 옆에서 생각할 여유가 있는 고독한 독거살이를 시작한다. 부서질 것 같은 오래된 집을 기어이 비싼 돈을 들여 힘겹게 수선해가며, 자기만의 취향이 한껏 반영된 단 하나뿐인 집을 만들어간다. 

    

결혼과 이혼이라는 사건은 인생에서 결정적인 만남이자 중대한 변곡점이다.

어떤 성향의 상대를 만나느냐에 따라 주거지는 물론 생활방식, 삶의 가치관도 달라진다.     


아마 이혼을 경험해본 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어차피 신경쓸 상대도 없는데, 한 번뿐인 남은 인생, 
이제는 내 맘대로, 진정 내가 바라는 대로 살아봐도 되는 것 아닌가?

   

아무래도 화려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안정과 정착은 어울리지 않는 함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이사를 밥 먹듯 할 수도 없겠지만, 책 속 주인공처럼


진정으로 나다운 것을 위해/ 가졌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새 둥지에서 삶을 시작하는 용기도 때로는 필요하지 않을까.  


문득, 고요한 숲이 있는 길 옆에, 자그마한 오두막집 한 채 짓고싶어진다.


할 수 있다. 꿈꿀 수 있어 행복하다. 


유랑을 꿈꿀 자유. 아이가 독립하고 나면 못할 것도 없다.

나의 십년 후가 정말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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