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의 몸과 마음을 이용하여 지구의 삶을 체험하고 있다. 하지만 이의 사용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회적 집단의 구속적인 틀에 갇힌 에너지에 끌려 그것이 전부라 여기며 그렇게 진짜 나를 의식하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마음과 생각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난발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마음의 제대로 된 사용법을 알고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려 한다. 끌어당김을 단순히 인간적인 좁은 시야에서 원하는 한계의 상상의 틀 안에 넣지 않고 그곳을 벗어나 근원의 삶의 길을 가기 위한 한 방법으로 지향하고자 한다. 이 글을 통해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듯 그렇게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희망한다.
느낌이 이 삶의 전부이다.
끌어당김을 하는 이유
우리가 끌어당김을 하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내 현실에 펼쳐지게 하기 위함이다. 즉, 내가 원하는 현실을 갖기 위함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성공이든 돈이든 사랑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는 곧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곧 행복한 현실로 나를 데려가기 위해 혹은 내가 원하는 무엇을 얻게 된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삶을 통째로 끌어당김을 이용하여 옮기는 단순한 방법을 설명하려 한다. 내가 정한 한정된 그림 한 장이 아니라 내 인생의 전체적인 그림들의 연속적인 이미지들을 모두 행복한 길 위에 올려두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끌어당김의 기본 전제인 시각화의 그림을 그저 감정을 일으키는 수단으로 보려 한다. 이로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인지 아닌 지도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은 행복을 위해 성공을 위해 수많은 돈을 끌어당기는 시각화를 하는 것이 대부분일 거라 예상해 본다. 하지만 돈은 그저 삶에서의 체험을 위한 필요한 재료일 뿐 풍요와 행복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면 돈에 대한 중요도는 낮아지고 돈이 가지는 숫자의 크고 작음은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끌어당김이란
내가 품은 느낌이 내 삶을 끌어당긴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많은 평행현실들 중에서 내가 그리로 옮겨 가는 것이다. 무한한 평행현실이 존재하며 우리들은 순간순간 내 안의 에너지에 맞춰진 주파수대의 현실로 이동한다. 그러하기에 나의 에너지에 따라 그에 맞는 현실들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품은 에너지가 나의 현실을 끌어당긴다. 이것이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끌어당김이다.
고로 끌어당김의 심상화(시각화)는 느낌을 일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해보고자 한다. 그 느낌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나를 높은 주파수의 채널로 맞추는 것. 끌어당김이라는 말은 아마 살면서 성공을 위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일 것이다. 이를 믿거나 말도 안 된다며 없이 여기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우리들이 간절히 원했던 일들이 펼쳐졌던 수많은 날들을. 그러지 못했던 것들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닌 욕심이었거나 두려움이 섞여 펼쳐내지 못한 일들이었을 것이다. 곧 그것과 맞춰진 감정상태(진동상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끌어당김을 하는 방법
끌어당김의 기본 방법은 시각화 혹은 심상화이다. 내가 얻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상황,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 등을 상상으로 마음속에서 그리는 것이다. 마치 지금 완전히 이룬 것처럼 말이다. 현재완료형으로!!! 내가 집을 산 장면, 로또 1등에 당첨된 장면, 내가 승진한 장면, 내가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가수가 되어 무대 위에서 팬들과 마주한 장면 등 내가 되고 싶은 모습 속에 들어가 실제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오감을 이용하여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여기까지는 맞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모습을 상상하였을 때의 나의 기분은 어떠한가? 아주 날아갈 듯 좋은 가? 입가엔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몸이 한없이 가벼워지며 몸안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깊은 희열감의 사랑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가? 열정이 느껴지는 가? 바로 이것이다. 바로 이 느낌!! 우리는 이에 주목해야 한다. 로또 1등이 된 상황이 아니라 내가 무척이나 원하는 모습이 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그 감정!! 그 느낌!! 그것에 집중해야 되는 것이다. 이 느낌이 바로 내 삶을 성공의 길로 내가 원하는 길로 이끌어주는 아주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순수하고 간절한 열망의 시각화는 기분을 좋게 하고 풍만한 사랑의 에너지를 발산시킨다. 가슴에 와닿는 진심의 희열감! 그 느낌은 우리를 높은 주파수로 (라디오 주파수를 그 이뤄진 시각화된 현실의 주파수로 맞추듯) 맞추게 하여 풍요로 이끈다.
풍만한 충족된 느낌을 가지고 삶을 대할 때, 그 기분 좋은 느낌이 기분 좋은 상황(현실)으로 안내한다. 그렇기에 기분 좋은 상황을 상상을 하여 기분 좋은 느낌으로 나를 채우고 그 느낌으로 삶을 살아가면 그에 맞춰진 높은 주파수로 내가 의도한 기분 좋은 상황이 내 현실로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그 주파수는 내가 원하는 현실로 나를 이동시켜 주며 내가 설정한 대로의 설정한 결과가 반드시 되어야 된다는 한계적인 생각을 내려두었을 때 (모든 장벽들은 사라지고)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상상할 수도 없는 그 이상의 결과를 나에게 가져다줄 것이다.
보통은 그러한 장면들을 상상하고 또 상상하고 또 상상하라고 하였을 것이다. 씨앗에 물을 주듯 그렇게 싹을 틔여 나무가 될 때까지 지속하라고 말이다. 그러면 더 빨리 현실로 나타난다고 말이다. 하여 포커스가 느낌이 아닌 반복과 반복, 즉 열심히 이를 해야 된다는 것으로 갔고, 처음 느꼈던 느낌은 어느새 사라졌다. 그저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꼭 이를 해야만 그 상황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이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완성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의 집착이 왔다.
그렇게 하여 오히려 멀어져 가는 현실창조를 이젠 느낌에 맞춰야 한다. 의무적으로 반복해야 된다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용에 집중된 끌어당김의 시각화는 한 번으로도 족하다. 왜냐하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맞다면 나도 모르게 그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을 것이고 노력해서 떠올려야 하는 것이라면 그 일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학습된 개념의 열심히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우주는 나를 위해 최선으로 나를 그리로 이끌고 있으니 우주가 헷갈리지 않게 나를 행복의 주파수에 맞추면 된다.
그 상상의 그림이 이미 나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셀 수 없는 나의 평행현실이 무수히 이미 존재하여 있고 나는 그중에서 원하는 현실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실을 알 때 이미 상상한 그림이 내 것이라는 것을 믿음이 아닌 당연하게 앎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 순간 느꼈던 풍요의 기분 상태로 순간순간의 지금에 살며 삶을 대하여야 한다. 내가 그 그림 속에 인물이 이미 되었기에 과거에 나는 잊고 그 인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라. 지금 내가 품고 있는 마음상태가 가장 중요하다. 이가 곧 나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끌어당김을 할 때
우리는 언제나 매 순간 끌어당김을 하고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주로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마음의 자동프로그램에 따라 무자비로 끌어당김을 하고 있었다. 바로 생각과 마음으로 말이다. 걱정되는 일들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상상하는 나쁜 상황들, 그리고 이를 몸서리치게 느껴버리고 마치 지금 일어난 일처럼 무서워한다. 그 두려운 에너지들을 발산함으로써 결국 그에 맞는 끌어당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몸서리치게 그리고 온몸으로 느껴 우주로 보내버렸다. 그렇기에 의식적으로 내 안의 생각과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주도권을 가져와야 한다.
이게 바로 알아차림이다. 마음의 생각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생각들을 내가 정하고 내가 주도하는 것이다. 마음은 끊임없이 나와 상관없이 생각들을 뿜어내므로 이를 흘려보내고 지켜보라. 그리고 내가 끌어당기고자 하는 생각과 에너지들로 내 안을 채워라.
끌어당김을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결과)에 대해 집착과 의심이 들 수 있다. 이는 결국 두려움이다.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불안함. 이는 인간이기에 당연하게 드는 생각들이다. 그렇기에 심상화를 하면서 걱정과 의심의 생각이 올라온다면 그저 수용하라.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해'라고 인정하라. 그 두려운 생각과 감정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두려운 감정들은 사라진다.
또한 그 결과는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찾아와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결과를 선사한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 어떻게 돼야 된다는 집착의 틀을 놓아버려라. 그리고 어찌 되었든 나는 이를 상상함으로써 즐거우니 그저 놀이를 하듯 상상놀이를 즐겨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놀이를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 끝에서도 결과의 집착을 내려놓기 힘들다면 억지로 심상화를 하지 마라. 꼭 이 느낌을 가지기 위해 반드시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일을 찾아 하는 것 이는 곧 나를 찾는 것, 그리고 텅 빈 마음을 갖는 것,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것, 사실은 이들이 정말 제대로 된 끌어당김의 방법. 즉 성공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그러하였지만 절박한 마음에 끌어당김을 찾는 많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끌어당김을 하려 하는 사람들은 먼저 삶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나를 믿는 마음, 곧 나의 근본 나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개념부터 들어가 내가 혼자가 아니었음을, 이 세상이 진짜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나를 언제나 이끌어주는 우주가 있음을, 신이 있음을 마음으로 느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모두 알게 된다면 끌어당김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삶이 완전하게 흐른다는 것을 알기에 열정으로 하게 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할지언정 그것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강압의 마음은 사라진 채 행복한 현실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가 곧 끌어당김을 대하는 방식이며 방식이 되어야 한다. 끌어당김은 심상화를 함으로써 느껴지는 그 고양된 느낌에 주목해야 한다 말했다. 그 느낌은 충만한 풍요로움의 평화적인 느낌이다. 조건 없는 사랑의 느낌이다. 이는 우주에게 지속적으로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같다.
끌어당김으로 향해가는 길 위에서
끌어당김을 다시 말하자면, 우주에게 '나는 이래 이래 해, 나는 이것을 가졌어, 나는 행복해, 나는 불행해, 나는 어떠한 직업을 가졌고, 어느 분야에서 올해의 대상을 받았어, ' 등의 메시지를 오감과 마음의 느낌으로 보내면 우주는 그저 우리에게 그것들을 가져다준다.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다. 마치 쇼핑을 하듯. 그러니 의식적으로 생각과 마음을 내가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반드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똑같은 결과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떠한 결과이든 지금 당장은 말도 안 되는 것이더라고 이는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아는 것이다. 예시로 한 남자가 미국에 가장 유명한 건축업계의 회사에 입사하기를 엄청나게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그곳에 들어가지 못했고 당시엔 잠시의 좌절을 맛보았지만 약 3개월 후 그에게 더 큰일이 주어지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추모를 위한 건축공고에 당선되었고 훌륭한 건축가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원하던 회사에 입사하였다면 그 공고에 지원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멋있는 추모공원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날리며 건축가로 명확해 지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었다. 인간의 시야에서 볼 수 없는 것을 삶은 내려다보기에 이렇게 완벽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결국 내가 그린 시각화에 대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인간의 좁은 시야에서의 한계적인 상상이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가 느낌으로 최고의 높은 주파수를 맞추어 삶을 살아간다면 삶은 우리에게 최고의 좋은 것을 선사해 준 다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그러니 크게 꿈을 가지고 이미 그 현실이 존재함을 알고 내가 그 현실을 선택했음을 기억하라.
끌어당김의 시각화는 한 번으로도 족하다
매일 밤 끊임없이 심상화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면 그만 놓아주어도 괜찮다. 심상화는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그 느낌을 제대로 알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신에게= 우주에게 =나의 삶에게 맡기면 되는 것이다. 두려움의 의심의 생각이 든다면 이도 당연한 것이니 이러한 생각을 인정해 주고 흘려보낸 후 되고자 하는 나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의도적인 행동을 하라(지금 이 순간 가장 흥미로운 일을 해 나의 열정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일들). 끊임없이 드는 모든 생각들을 그저 흐르도록 지켜보면 내 안의 우주로 사라지고 그 안은 텅 빈 상태로만 존재하니 그 상태는 근원의 상태, 즉 사랑의 상태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높은 주파수로 맞춰져 이에 맞춰진 평행현실로 이동한다.
그러므로 반복적인 심상화를 즐겁게 한다면 괜찮지만 이를 할 때 힘들고 두려운 마음에 하는 것이라면 이 방법은 지양해야 한다. 전자는 열정+열정에 기분 좋은 느낌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지만 후자는 두려움+억지노력, 즉 낮은 주파수를 맞추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처음 내가 그린 심상화가 우주에 닿았으니 결과는 삶에 맡긴 채 기분 좋은 에너지를 계속 느낄 수 있도록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가슴 뛰는 일들을 지금 하며 된다. 그뿐이다. 흥미로운 일이 가장 하찭은 일이라 여겨지더라도 괜찮다. 내가 흥미롭고 재밌고 열정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나를 위한 최고의 길이기 때문이다.
**심상화를 매일 밤 하고 싶다면 기분 좋게 하는 방법,,,
잠자리에 누워 그 상황을 상상하되 매일 다른 상세함에 포커스를 맞추어 상상하길 추천한다. 매번 같은 말은 지루해지기 쉬우니 만약 집을 사길 원한다면 오늘은 새로운 나의 집의 소파에 누워 손에 감촉에서부터 온몸에 감촉, 발끝에 닿는 바닥의 느낌을 느껴본다던가 다음 날엔 그 소파에 앉아 좋아하는 차를 마시며 코끝에 올라오는 향기, 촉촉한 수증기가 피부에 닿는 느낌, 입술에 찻잔이 닿는 감촉, 입안에 맴도는 따뜻한 차의 온도까지 완전하게 느끼는 것이다. 한 가지씩 포커스를 옮겨가며 오감을 이용하여 감정을 더욱더 풍부하게 넓혀주는 것이다. 또한 상상 속에서 가족이나 친구, 지인 등 누군가에게 그 상황을 말하는 방식으로 할 때도 효과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이를 어떻게 하여 성공을 하게 되었는지 등의 과정은 시각화하지 말라. 이는 내가 짓는 한계적인 설정일 뿐이다. 완료된 장면만을 상상하라.)
분명한 것은 무엇을 상상하듯 그 완전한 행복감의 느낌을 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느낌이 우리가 본래의 가지고 있는 근원적 상태이다. 하지만 억압된 감정들의 자아들이 이를 뒤덮고 있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을 현실에서 펼쳐지게 하고 싶거든 기분 좋은 상상을 하라.
그리고 그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상상은 한계적이기에 우리의 삶(영혼, 상위자아)은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더 큰 방법으로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선사하기에 당장 예상치 못한 결과가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는 단지 하나의 더 큰 일을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과정이 꼭 필요했기에(그것을 통해 얻게 되는 배움과 지혜가 반드시 필요했기에) 기쁜 마음으로 삶에서 오는 무슨 일이든 반가워하며 감사하라.
모든 것에는 옳고 그름, 나쁘고 좋은 것은 없다. 무슨 일이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일뿐이며 겉으론 부정적인 일일지라도 나를 위한 유익한 숨은 보물이 숨어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삶을 행복으로 이끌고 싶다면 세상에 기분 좋은 느낌을 보내라.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되돌려 받을 것이다. 내가 행복하면 주변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현실이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원리). 낮은 주파수(부정적인 느낌)로 머문다고 하여 삶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다. 하지만 그로 머물 때 나는 영혼과의 연결이 끊겨 참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내 안이 비추는 부정적인 현실을 되돌려 받을 수뿐이 없게 된다. 그러니 나로 머물라, 우주로써 머물라,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은 이미 완벽하다.
+더 깊은 통찰을 위한 메시지
행복을 위해, 성공을 위해
=> 원하는 것이 완료된 장면을 상상
=> 이로 느낀 느낌을 품고(사랑의 풍요상태)
=> 이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의도적으로 행함.
(그 그림 속에 인물이 되어 생각하고 행동하기)
결국엔,
끌어당김은
사랑의 마음상태로(두려움은 흘려보내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
더 나아가서 우리가 쫓고 있는 행복은 나의 근원적 상태로
나를 둘러싼 부정적인 한계의 믿음체계들로 생겨난
생각의 생명체들이 (부정하고 억압으로 에너지가 투여된)
나인 척 나의 행세를 하며 참된 모습을 감춰버린 것.
이 모든 내가 붙들고 있는 생각과 감정들을 흘려보낼 때(인정하고 수용해 줄 때)
비로소 나는 텅 빈 나로 돌아가(참나가 되어) 행복의 상태로 머문다.
곧 나는 나를 찾고 나로서 머물면 그뿐이다.
아무것도 행한 필요가 없어진다.
행복이 곧 나이므로, 사랑이 곧 나이므로.
그러하여 나는 삶이라는 바다 위에서 흐름에 따라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