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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Oct 19. 2021

도시락 속엔 엄마가 있다.

세계를 건너 서로에게 보내는


 퇴근하고 나면 몸이 천근만근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직장에서부터 가져온 짐들을 하나씩 벗어던진다. 거실 매트 위엔 딸내미의 내복이, 작은 방엔 드라이하며 떨어진 내 머리카락이, 뒹구는 위에 양말과 옷 따위를 내려놓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할 것은 바로 설거지. 싱크대로 가면 그곳엔 아침에 먹다 남은 반찬과 얼룩진 그릇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 위에 조심스럽게 오늘의 도시락통을 넣는다. 회사에서 맛있게 먹은 것과 별개로 설거지 거리로 만난 도시락통은 언제나 불청객 취급을 받는다.


 도시락을 싸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거추장스러운 도시락통을 들고 다니는 것도, 홀로 밥을 먹는 것도 아니다. 바로 퇴근하고 와서 빈 도시락통을 설거지통에 넣는 순간이다. 아침에 쓴 그릇 위에 그릇을 더하는 심정은 썩 유쾌하지 않다. 가끔 음식을 남겨오기라도 하면 잔반을 버리는 마음은 더욱 좋지 않다. 앞치마를 두르고 수세미에 거품을 가득 묻혀 설거지를 시작할 때면 나는 꼭 우리 엄마가 떠오른다. 40년 평생을 앞치마 한 번 풀지 못하고 주방 앞에 서성이던 우리 엄마가.



 

  30여 년 전, 엄마는 하루에 두 개씩 꼬박꼬박 도시락을 쌌다. 그러다 언니가 고등학생이 되자 언니는 두 개, 중학생인 나는 한 개, 합쳐서 세 개의 도시락을 싸야만 했다. 몇 년 후 아빠가 우여곡절 끝에 얻은 직장의 식당이 변변치 않자, 엄마는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 아빠의 도시락까지 싸기 시작했다. 물론 그땐 언니와 내가 이미 성인이 된 후였지만, 인생의 절반은 도시락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유난히 편식도 심하고 까탈스러우며 예민했던 나는 엄마의 도시락이 늘 마땅치 않았다. 입에 대기도 싫은 김치는 한 입도 먹지 않았고, 계란말이나 소시지 부침이 아니면 모두 남겼다. 콩밥은 콩을 전부 빼먹었고, 엄마가 만들어준 엄마표 돈가스나 la갈비는 모두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정성스럽게 쌌을 엄마의 도시락은 내겐 너무 지루한 맛이어서 어떻게 하면 핑계를 대고 매점에서 라면을 사 먹을까 궁리만 했었다. 제대로 먹지 않아 묵직한 도시락통을 엄마에게 건네면 엄마는 말없이 설거지통에 넣었는데, 그때 엄마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어떤 마음이었을까,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랬던 내가 최근에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닌다고 했을 때 엄마는 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딱 한 마디, 직장이 멀어서 힘든데, 뿐이었다. 유난스럽게 뭘 또 싸 먹냐, 그냥 사 먹어라,라든가 네가 무슨 요리니? 라든가 따위의 말 대신 들려온 '힘든데'의 의미를 진짜 알게 된 것은 본격적으로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신나서 호기롭게 시작한 일이지만 현실적인 불편함은 당연히 있었다. 앞서 말한 설거지는 기본이고, 메뉴 구성도 생각보다 어려웠다. 많은 것들을 참고하긴 했지만, 일주일 단위로 메뉴를 구성해 먹기엔 내 깜냥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매일 같은 것을 먹자니 지루해져 그때 그때 하루살이처럼 메뉴를 찾아보고 만들어 먹었는데, 가끔, 아주 가끔 딸이나 남편이 반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사실 투정도 아닌 의견 수준) 그게 그렇게 속상했다. 열심히 한 내 공은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하고 속상했던 것. 하지만 엄마는 한 번을 서운해하지 않았다. 세상에 둘도 없을 편식쟁이를 키우면서도 너 때문에 반찬을 두 개 만들어야 한다며 화를 내지 않고, 하다 못해 계란말이라도 하나 더 부쳐주었다. 오롯이 나를 위해서.


  또 이왕이면 보기에도 예쁜 도시락을 싸고 싶은 욕심도 생겨 힘들었다. 주로 혼자 밥을 먹지만 그래도 혹시나 합석(?)을 하게 될 경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구색을 맞춰 싸고 싶었던 것이다. 요리의 '요'자도 모르고, 데코레이션의 '데'자도 모르는 내가 '그래도 제대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건 바로 엄마의 도시락 덕분이기도 했다. 그 시절, 지금처럼 성능이 좋지도 디자인이 예쁘지도 않은 도시락을 싸면서도 엄마는 항상 반찬과 밥을 가지런히, 소복이 담아주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통을 열면 지금 막 만든 반찬처럼, 갓 지은 밥처럼 그렇게 예쁘게 한 상차린 도시락을 싸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 도시락은 늘 친구들에게 인기 만점이었기도 했고. 그런 엄마를 어깨너머로 보고 자란 탓에 눈은 높고 실력은 부족하니, 도시락 하나 싸는데도 참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락을 직접 싸고, 맛있게 먹은 후, 빈 그릇을 가지고 돌아올 때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오늘 내가 준비한, 나를 위한 내 몫의 일을 다 한 느낌. 내가 나에게 인정받은 느낌은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고, 힘들어도 다시 앞치마를 두르게, 불 앞에서 웍을 꺼내게 만든다. 아마 30년 전의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자식새끼 잘 먹이려고 얼마나 많은 품을 팔아 왔을까. 다른 애들 앞에서 반찬으로 기죽지 않게 하고 싶은 마음,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새벽녘에 눈을 떠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었겠지. 그래도 힘들지 않았던 것은 하교한 딸이 건네 준 가벼운 도시락통이 주는 '감동'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 뭉클함에 젖어 수십 년 간 엄마는 도시락을 싸 주지 않았을까.  


  꼬박 수십 년이 걸려서야 그 시절의 엄마가 온전히 느껴진다. 고작 넉 달 정도 해 놓고서 가끔 권태로움을 느끼는 내게 그 시절의 엄마는 매일이 경이롭게 느껴질 정도다. 어쩌면 끈기가 부족한 내가 도시락을 다섯 달째 도전할 수 있는 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도시락을 싸준 엄마의 끈기 덕분이 아닐까 싶다. 엄마는 그때도 나를 키우고, 지금도 나를 키우는구나.


  도시락을 싸면서 엄마를 알아간다. 그리고 나를 다시 돌아본다.  

  그 맛 좋은 도시락을 매일 먹으며 한 번도 하지 않은 말들을, 나와 별만 다를 것 없는, 무뚝뚝한 유전자만 고루 나눠 받은 아빠와 언니에게서도 한 번 듣지 못한 말을 내가 직접 도시락을 싸면서 엄마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엄마, 고마워, 정말 맛있어, 친구들이 엄마 반찬이 제일 맛있대.라고. 하지만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게 너무 멋쩍고 부끄러운 나는 내식대로 마음을 전달할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엄마에게 카톡을 보낸다.

  아무 말 없이 도시락 사진을 찍어 보내면, 우리 엄마는 내게 '헉', 이라며 딱 한 마디만 보낸다.


 '헉!'


  이 짧은 한 마디는 사실, 정말 할 하는구나, 이제는 걱정 없네, 그래 그렇게 하면 느는 거야, 잘하고 있어, 라는 것을 난 안다. 그리고 엄마도, 뜬금없이 보낸 내 도시락 사진이 사실, 엄마, 나 이제 잘하지? 곧 잘 흉내 내지? 나 이제는 웬만한 건 다 만들 수 있어, 엄마 덕분이야, 라는 말임을 안다.


  한 장의 사진 안엔 도시락이 있고, 내가 있고, 그리고 엄마가 있다.

  우리의 역사가 있다.


  도시락은 나를 살찌우고

  엄마의 마음을 살찌우며

  우리를 이어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시공을 초월한 우리의 펜팔은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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