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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Oct 17. 2021

프롤로그 :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30대 후반이었고, 여느 사람들과 같은 밥벌이의 지겨움을 느끼는 직장인임과 동시에 4살짜리 딸을 키우는 워킹맘이 되어있었다. 거기에 왕복 5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로지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추가해야 하겠다. 이것은 실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요리를 못해서 싫어하고 안 해서 못하는 사람이기도 했다는 것. 그리고 남이 해주는 밥을 최고로 사랑하던 사람이라는 것도.


이런 엄마 밑에서 어린 딸은 시판 이유식과 유아식에 길들여져 이른 나이에 '편식'을 알게 되었으며,

이런 아내 옆에서 지내온 남편은 조금씩 체중이 늘어갔다.


  냉장고는 형편없었다. 가끔 들렀던 친정엄마는 올때마다 집이 가까우면 반찬을 해다 줄텐데, 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씩 하다 보면 실력이 늘거라고 응원해주는 엄마의 목소리를 뒤로 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갖가지 음식을 배달하며 꼬박꼬박 외식을 하곤 했다.  


  2년 넘게 김과 계란에만 의지하며 딸아이 밥을 먹이면서도, 어린이집을 보낼 수 없는 상황을 다 코로나 때문이라고 탓을 하면서, 애 키우는 집은 다들 이렇게 산다고, 워킹맘이 요리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다 이렇게 해치우듯, 먹고, 자고, 일하며 산다고 위로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또래 아이를 키우던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는 점심 시간이 제일 좋다고 수다 떨며,하루하루 버티던 어느 날.


아주 갑작스럽게 변화가 찾아왔다.


갑자기,

그토록 좋아한,

남이 해준 밥마저, 맛이 없어진 것이다.

유일하게 쉬는 점심시간마저

왠지 모르게 사양하고 싶어지고 말았다.



.

.


그리고 그 중심엔 '도시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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