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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레이첼 Oct 27. 2024

엄마는 겨울이 싫다

촉각에 예민한 아이를 키우며

# 애 키우기 힘든 계절은 겨울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계절은 겨울보단 여름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집 앞 마트에 가거나 단지 산책을 가고 분리수거장에 같이 쓰레기를 버리러 킥보드를 타고 나간다고 치자. 여름이면 그냥 입고 있던 실내복 그대로 나가기도 하고 여자 아이니까 얇은 원피스 하나만 입어도 외출 준비 끝.


그렇지만 겨울은 얘기가 다르다.

최소 긴팔, 긴바지, 양말은 필수에다가 두꺼운 점퍼 그리고 한파가 오는 시즌에는 모자, 장갑, 부츠까지 낑낑거리며 챙겨 입히고 신겨야 하는데. 나오는 준비 하는 과정에서부터 모든 에너지가 탈탈탈 털리기 쉽다.


게다가 둘째 낳고 난 이후 생긴 한랭두드러기 때문에 추운 날씨를 극도로 더 싫어하게 됐고 찬물 찬바람을 잘못 쐬면 두드러기처럼 올라와서 간지럽게 된 피부를 벅벅 긁어가며 애들에게 빨리 따뜻하게 입으라고 채근하게 된다.


그냥 대충 입혀 나갔다간 코감기와 목감기 콜라보에 걸려서 약 먹이고 기침패치, 해열제까지 대령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 내가 좋아하는 옷이 없어


우리 집에는 나 말고 겨울을 싫어하는 사람이 또 있는데 바로 우리 6살 막내다. 셋째는 거저 키운다는 말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무던해도 또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가장 괴롭고 참기 힘들어하는 점을 톡톡 건드리는 녀석이 우리 셋째다. 너무 예쁘지만 너무 힘들기도 한 애증의 관계랄까.


첫째와 둘째도 5~7세쯤 유치원 다닐 무렵 양말과 옷을 가지고 좀 까다롭게 굴긴 했다. 양말 신는 발목 부분이 까칠하네 마네, 옷 뒤에 택이 거슬리네 마네, 바지를 올리네 마네 하면서 매일 험난한 등원 준비로 싸워댔다.


어엿한 초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전보다 많이 나아졌고 어느 정도는 엄마가 골라준 옷을 그대로 입거나 본인이 찾아서 별일 없이 챙겨 입고 등교하는 수준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신발은 본인이 직접 신어보고 발이 편한 운동화만 신기에 온라인 구매는 꿈꿀 수 없다.


다시 막내의 얘기로 돌아가서.

날씨가 추워지고 본격적인 늦가을처럼 추워지기 시작하자 아침마다 막내와 나의 옷 싸움이 시작됐다.


전날 밤 미리 옷을 고르라고 하고 챙겨둬도 아침엔 마음이 바뀌었는지 안 입겠다고 한 적도 많다. 이 옷 저 옷 옷장과 서랍장을 뒤집어서 입었다가 벗었다가 난리부르스 패션쇼를 펼치고 겨우 찾아내서 입고 나가던지 엄마한테 혼나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등원한다.


그래서 여름철보다 등원준비가 매일 1시간씩 늦어지고 등원버스를 못 탄 지도 몇 주가 됐다.




# 나도 진짜 입고 싶은데 입을 수가 없어


처음엔 뭐 이런 별난 녀석이 있나 이해도 안 됐고 아침 준비가 늦어져서 짜증만 났다. 매번 선생님께 늦게 등원한다고 알림톡을 남기는 것도 민망했고 제때 가지 못하는 아이 때문에 내 오전 스케줄이 다 뒤틀려버리니 더 성질이 난 것도 같다.


어느 날도 입고 벗은 옷을 옆에 수북이 쌓아두고 자기가 좋아하는 옷이 없다고 난리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막내가 울면서 말했다.


"아니 나도 진짜 입고 싶은데 입으면 너무 불편하다고!!!"


하아.. 숨을 고르고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 너도 애쓰고 있구나. 그냥 공주님 놀이를 하듯 패션쇼를 하는 게 아니라 몸에 편한 옷을 찾아 헤매고 있구나.


어린이집 다닐 적에 원에서 촉감놀이 활동으로 미역을 물에 불려서 만져보기도 하고 모래놀이도 했는데 아이는 대부분 찡그린 얼굴을 한 사진이 많았다.


여름에 바다에 놀러 가서도 생각보다 모래에서 많이 놀지 않았다. 손과 발에 느껴지는 모래의 촉감이 싫다고 했다. 자꾸 수영복 사이에 들어가는 모래가 많아져서 찡찡댔다.


촉감이 예민하니까 아이도 그만큼 노력해도 안되어서 괴로웠겠다고 생각하니 안쓰럽단 마음이 들었다.

아이를 토닥이고는 본인이 원하는 긴치마원피스에 속에는 잠옷 반바지를 입히고 그나마 긴 양말을 최대한 추켜 올려 신겨서 보냈다.


찬바람에 감기 걸릴게 뻔해서 위아래 맨투맨 상하복 같은 든든한 활동복을 입고 신나게 놀았으면 싶은 건 그냥 엄마 개인적인 욕심인가 보다 싶다.


아이를 유치원에 들여보내고 와서 거실에 널브러진 옷더미를 정리하며 코웃음이 났다. 아휴.




# 불편한 것도 참고 입을 줄 알아야 돼


요즘엔 최대한 아이가 원하는 걸 입기로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징징대고 불편하다고 옷을 안 입겠다고 짜증을 내면 그때는 나도 단호하게 말한다.


"맨날 네가 편한 것만 입을 수 없어. 때로는 불편한 것도 참고 입어야 할 때도 있는 거야. 이건 까칠한 레이스도 아니고 딱 붙는 레깅스도 아니잖아. 며칠 전에도 모두 잘 입었던 옷이야.

팔이 좀 길면 접어서 걷어올리면 돼. 네가 말하는 여름 원피스는 못 입는 계절이야. 계절에 맞게 옷 입는 법도 배워야지. 자기가 입고 싶은 편한 옷은 유치원 다녀와서 집에서 마음껏 입고 지금은 바깥이 추운 날씨에 너도 콧물이 나는 상태니까 오늘은 이 옷으로 입어."


그러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옷을 입는다. 옷을 입히면서도 이게 이렇게까지 울면서 입힐일인가 싶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옷을 입혀 나간다.


십중팔구는 어느새 그랬나 싶게 킥보드로 바람을 시원하게 가르며 유치원으로 향한다. 정말로 옷이 불편할 때는 유치원에 보낸 다른 여벌옷으로 갈아입거나 양말을 벗고 생활했다는 선생님 연락을 받을 때도 있다.


아이의 불편한 부분은 정말 촉감에 예민한 뭔가가 거슬려서 말할 때도 있고 우리가 출근하기 싫듯이 유치원에 가야 하는 예민한 상황에서 더 까칠하게 느껴져 표출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아이 셋을 키워도 매번 새로운 문제가 주어지니 방심할 틈이 없다. 이게 정답이다 아니다 따지기보단 그냥 매일 아이와 더 많이 웃고 더 자주 안아줘야지 싶다.


그냥 빨리 여름이 와서 시원한 민소매 원피스 하나 입히고 가볍게 웃으며 외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25년의 무더운 여름이 벌써부터 간절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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