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라는 시기가 무색하게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줄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이고, 비 온 뒤 맑게 개인 날씨가 청량하기 그지없었다.
주말 아침부터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정오가 지나서까지 도통 일어날 생각 없는 나를 남편이 어르다시피 달래 나온 가족 나들이.
세 식구가 호수공원 잔디밭에 연노란 체크피크닉매트 위 자리잡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어린 딸아이는 자신이 우산을 타고 날아갈거라며 바람을 타고 놀았고, 난 밖에 나와서도 남편의 무릎을 베고 누워 하릴없이 청량한 하늘과 높다란 미루나무가 바람결을 따라 휘날리며 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락 사라락 사락
녹음이 우거진 미루나무의 나뭇잎들이 바람을 타며 내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좋다. 사락사락거리는 그런 소리."
어느새 근방을 날아갈 듯 돌아다니던 아이가 내 옆에 다가와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엄마, 이 소리 좋아해요? 잠깐만 핸드폰 좀 주세요."
아이는 내 핸드폰을 쥐어 들곤 무언가를 하는 듯했다. 아이는 이내 유튜브로 들어가 음성 찾기를 누르고 말했다.
"나무가 사락사락거리는 소리 들려줘."
하지만 원하는 나무소리가 나오지 않자, 아이는 유튜브에 다시 주문했다.
"잠잘 때 듣기 좋은 노래 틀어줘."
드디어 조용하고 마음이 편안해질 만한 노래가 나오자 아이는 내 옆에 새우잠을 자듯 누워 말했다.
"엄마, 이제 더 좋아요? 난 좋아요."
"응. 엄마는 너랑 아빠가 옆에 있어서 너무 행복해.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네가 얼마 전에 옷갈아입고 한 말 있잖아. 갑자기 그런 말은 어쩌다 떠올랐어?"
얼마 전 아침 아이가 등원하려고 옷을 갈아입는데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에게 말했던 일을 꺼냈다.
"엄마, 오늘은 어떤 좋은 일이 생길까요?"라고 한 그 말.
그 말은 며칠 내내 내 마음을 쿵하는 울림을 주었다. 늘 마음 속으로 안일하게 '오늘은 무사히 지나가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던 나를 꾸짖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말을 저리 예쁘게 할 수 있을까?확실히 얘가 나보다 낫구나. 하며.
아이는 무슨 말인지 잠시 생각하다가..
"아.. 그 말?그냥요. 아침부터 옆에 엄마가 있어서 너무 좋았거든요. 도체 무슨 좋은 일이 생기려나 했어요." 한다.
딸아이는 도대체를 도체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딸아이의 소소한 행복을 말하는 말이 나의 가슴에 닿아 배가되는 것 같은 떨림을 느꼈다. 감사함을 담아 딸아이의 볼록한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다시 하늘을 보았다.
여전히 큰 키에 가녀린 미루나무가 내 앞에서 나뭇잎을 나부끼며 사락사락 소리를 내고 있었다. 벅찬 감동을 느낄수록 나뭇잎의 움직임이 빨라져 사락사락거리던 소리는 사라락사라락 더 바삐 소리를 내는 듯 했다. 해는 어느새 늬엿늬엿 움직여 미루나무가지 사이에 걸터 앉은채 따사로운 햇살을 뻗쳐댔다. 마치 지브리 만화의 한 장면 같은 그런 아름다운 풍경의 초여름이었다. 따스한 햇살에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며 센치해지려는 이 감성을 온전히 느끼고자 눈을 감는데 딸아이가 내 볼에 뽀뽀하며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