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독립선언

by 꿈꾸는나비

대한민국 엄마들은 언제나 자식들에게 김치의 안부는 묻는다.

"김치는?"


이때부터 대답을 잘해야 하는데 사실 이건 모두가 아는 답정너다.


"네, 아직 있어요."

"뭐?, 김치 준 게 언젠데 아직까지 그걸 먹고 있어."


"네, 다 먹었어요."

"뭐?, 근데 왜 김치 다 먹었다는 얘길 안 하니?"


우리 어머니도 예외가 아닌데 최근에 일주일에 몇 번씩 김치의 안부를 물으셨다. 아직 있다고 얘기해도

"있니? 얼마나 있니?"

김치에 대한 집착과 집념이 느껴질 정도다. 두어 달 전 깍두기와 열무김치를 한 아름 안겨주고 가셨기에 지금쯤 김치가 떨어졌으리라는 어머니의 계산 때문이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사시는 어머니는 우리 집 김치 걱정에 수시로 전화를 걸고 가정방문을 하셨다.(그렇다고 냉장고를 뒤지지는 않으심.)


어머니가 잊으신 게 하나 있는데 나는 사실 김치독립을 선언한 지 꽤 되었다. 무가 맛있으면 깍두기도 담그고 배추하나를 사서 겉절이를 하기도 하고 짜파게티를 먹기 위해 파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나의 김치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이제 김치 제가 담가 먹을게요."

"네가 무슨 김치를 담가, 엄마가 담가주는데. 필요하면 엄마한테 말해."

나는 엄마에게 단 한 번도 김치를 담가달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래도 엄마는 매번 김치를 담가주신다. 어쩌면 나 혼자만의 김치 독립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김치 독립을 하고자 마음을 먹었던 건 50이 가까워지는데 김치 하나 못 담그는 무능력자가 되기 싫었고, 우리 집 김치까지 담가야 하는 엄마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고, 먼 훗날 엄마의 김치를 먹지 못하는 날이 왔을 때 내가 자연스레 담가 먹을 수 있길 바랐다. 그런데 독립 선언은 했지만 아직도 흉내만 내는 김치를 담그고 있고 엄마는 여전히 우리 집 김치를 담그고 계신다.


주말에 장을 봐서 배추김치와 동치미를 담갔다. 그런데 엄마는 전화로 또 김치의 안부를 물으셨다. 순간 김치의 안부를 자주 물으시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나의 눈치로는 엄마는 얼른 딤채를 비우고 싶으신 거 같았다. 왜냐하면 이제 김장철이기 때문이다.

"네, 한통 주세요."

"그래, 마지막 한통 남은 거 갖다 줄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머니는 김치 한통을 현관 앞에 두고 가셨다. 엄마는 이제 새 김치를 담글 준비를 하시겠지. 완전한 독립은 좀 힘들겠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이번 김장에는 엄마의 레시피를 적어달라고 해야겠다. 훗날 그 레시피로 김장을 담그며 엄마의 김치를 그리워할 날이 오겠지... 그날이 최대한 늦게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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