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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Sep 05. 2023

37. 참아야 하느니

무재칠시, 참아야 살 수 있는 사바세계

#20230905 #무재칠시 #사바세계 


 며칠 전 출근길에 다른 과 선생님을 마주쳤는데, 나와는 일이 겹치지 않아 특별히 만날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되게 반갑고 환하게 인사해주셔서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저렇게 환한, 좋은 분위기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게 화안열색시(和顏悅色施)구나!’ 이후 무재칠시(無財七施)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이후 운전하다가 뭐같이 운전하는 사람을 째려보는 나를 발견했다. 그 순간에 째려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으니까 째려보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지 않나 싶다. 더 나아가서 따뜻한 눈으로 봐준다면 안시(眼施)가 되겠지. 하다못해 째려보고 싶다는 마음을 뒤집는 것만으로도 내 미래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어쨌거나 제멋대로 흘러가는 내 마음을 붙들고 나쁜 쪽으로 흘러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한 거니까! 운전하면서 할 수 있는 무재칠시로 길을 비켜주는 상좌시(4. 오래된 차를 몬다는 건)가 있었다. 다른 보시로는 ‘많이 바쁘구나’,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해주는 심시(心施), 화나는 순간에 욕하지 않고 양보의 말을 하는 언사시(言辭施) 등이 있을 수 있겠다. 


 근데 참 그러기가 쉽지 않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차를 운전할 때면, ‘사람보다 차가 먼저 지나가야지!’, 걷고 있을 때면 ‘어딜 차가! 사람이 먼저지.’ 국도 1차선에서 정속으로 주행하는 차를 보면 ‘거 유도리 있게 좀 빠져주지?’ 내가 느긋하게 가고 싶은데 뒤에서 상향등 켜고 난리 치면 ‘어쭈? 아주 괘씸하네’ 다른 차선으로 끼어들 때면, ‘아, 좀 끼워줘라!’, 다른 차가 내 앞으로 들어오려고 하면 ‘어딜 끼어들어?’ 들어와서 미안하다고 비상등도 안 켜면 ‘운전 매너 하고는, 미안하다고도 안 해?’, 비상등을 켜도 ‘비상등 켜면 다야?’ 반대편에서 상향등을 켜고 달려와서 눈이 부시면, 나도 질 수 없다며 마찬가지로 상향등을 켜고...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하셨다. ‘참아야 살 수 있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각자의 인식 수준이 다 다르기에 나와 안 맞다고,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일일이 화내고 짜증 내고 부딪히면 상대와의 인연(因緣)을 좋게 만들기는커녕, 계속 안 좋게 이어가게 된다. 부딪히고 일어나는 것 모두 내 아상(我相)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참으면, 조금이라도 좋게 인(因)이 남을까? 수준이 높다면 이런 기대도 하지 않고 무심(無心)으로 하겠지만, 나는 아직 그 정도는 되지 않으니. 그래도 노력하는 게 어디야. 일어나는 마음과는 다르게 조금이라도 참아보련다. 



* 법정 스님, 사바세계, 참고 견디는 세계. https://www.youtube.com/shorts/Cyp2vUwcteg

-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 인토(忍土)에 대한 각주로 ‘감인토(堪忍土) 또는 인계(忍界)라고도 한다.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번역으로, 중생이 사는 세계를 말한다.’라고 되어 있음. 

https://kabc.dongguk.edu/content/view?dataId=ABC_IT_K1071_T_001&gisaNum=0003R&solrQ=query%24%EC%82%AC%EB%B0%94%EC%84%B8%EA%B3%84%3Bsolr_sortField%24%3Bsolr_sortOrder%24%3Bsolr_secId%24ABC_IT_GR%3Bsolr_toalCount%241241%3Bsolr_curPos%2440%3Bsolr_solrId%24ABC_IT_K1071_R_001_0003


-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序), 삭하세계(索訶世界)에 대한 자체 각주로 ‘구역(舊譯)에서는 사바세계(娑婆世界)라고 하며, 또는 사하세계(娑訶世界)라고 하는데 모두 잘못된 것이다.’라고 되어 있음. 각주로 ‘범어 sahā의 음역으로 ()ㆍ감인(堪忍)ㆍ능인(能忍)이라 번역한다. 석존이 나신 이 세상, 곧 이 땅의 중생은 여러 가지 번뇌를 참고 나가야 하고 또 성자들은 여기서 피곤함을 참고 교화를 해야 하므로 이 세상을 감인(堪忍)’이라 한다. 처음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염부제(閻浮提)의 뜻으로 썼지만 뒤에는 석가불의 교화가 삼천대천세계에 미친다고 생각하여 백억의 수미산세계를 총칭해서 사바라 하며, 따라서 석존은 사바의 본사(本師)라 한다.’라고 되어 있음. 

https://kabc.dongguk.edu/content/view?dataId=ABC_IT_K1065_T_001&gisaNum=0025R&solrQ=query%24%EC%82%AC%EB%B0%94%EC%84%B8%EA%B3%84%3Bsolr_sortField%24%3Bsolr_sortOrder%24%3Bsolr_secId%24ABC_IT_GR%3Bsolr_toalCount%241241%3Bsolr_curPos%2445%3Bsolr_solrId%24ABC_IT_K1065_R_001_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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