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온다
길을 잃고 한낮의 얼굴 더듬을 때
창밖으로 벚꽃이 일었다
쟁여두었던 예정된 질서가 툭, 툭, 터지고 있다
햇볕 무리 죄 불러내 몸 비비며 환하게 끓는 흰죽
보드랍게, 뭉근히 잦아드는 벚꽃 아래 서서
빙긋이 웃던 모습 흔적 없고
처음인 듯 어김없이 와 머물다 흩어지는 사월
오늘 이토록 벚꽃
눈부신 이별로 끓는다
말간 죽 앞에 놓고 고개 저으며
수저를 내려놓던 밤
흰죽의 호흡은 높고 가팔랐다
벚꽃 잃은 상한 마음 기대며
거리를 나선다
지상의 모든 봄 데리고 간
희미하게 떠오르는 얼굴 하나
봄날로 와 있다
김정희 [벚꽃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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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고 있습니다.
뿌옇게 흐린 이월을 딛고 저기, 저쪽에서 봄은 오고 있나 봅니다.
일시적인 한파가 예보된 날 오후, 마을 뒷산을 오르다가
보랏빛 자잘한 봄까치꽃을 만난 이월입니다.
봄은 제가 가진 색깔을 터뜨리기 위해 얼마나 깊고 차가운 숨을 고르고 있을까요.
여기저기서 툭, 툭, 터질 봄 색깔들을 만날 시간이 머지않았습니다.
곧 벚꽃이 피어나겠지요.
구름으로 몰려오는 벚꽃에 먹먹한 가슴을 누르며 보낸 세 번의 봄을 저는 가졌습니다.
벚꽃에 갇혀버렸습니다.
벚꽃을 견디고 나면,
지상의 모든 벚꽃이 피고 질 무렵이면,
그제야 단단해진 이별과 악수를 할 수나 있을런지요.
벚꽃이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