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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 Mar 22. 2021

산 것은 또 그렇게 살아간다


 호수공원 한쪽에 연꽃이 피었던 자리가 있다. 우아한 연꽃의 자태와 향을 맡으러 연꽃을 향해 발걸음을 모았던 지난 여름날을 뒤로하고 지금은 다소 삭막한 모습으로 잎을 내고 꽃 피울 날 기다리며 묵묵히 서 있는 줄기의 풍경을 본다.


 바람에 꺾인 긴 줄기가 갖가지 정교한 도형을 만들며 하나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나 안개로 덮인 이른 아침에 보는 풍경은 몽환적인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하다.


 발레리나를 연상케 하는 줄기, 먼바다를 항해하는 외로운 돛단배의 모습, 쭈글쭈글한 축구공의 모습도 있고, 간혹 어느 줄기는 트라이앵글이나 음표 모양으로 어우러져 있기도 한데, 섬의 모습을 한 줄기는 그대로 어디 외딴 무인도다. 그 옆을 조용히 떠 있는 물닭 한 마리가 심오한 철학자인 양 조용한 산책을 하는데, 미끄러지듯 잔잔한 물결의 파문 또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아름다운 풍경이다.    


 추모하듯 허리를 깊게 꺾은 줄기 하나가 물속에 잠겨 있다. 그 옆을 유유히 헤엄쳐 나아가고 있는 물닭 한 마리.


 물닭은 알까? 


 강추위가 몰아치던 지난 1월 12일 아침에 두세 마리의 물닭이 발을 쳐들고 죽어있던 모습.


 죽은 동료 물닭 옆에서 수십 마리의 물닭들이 누군가 쏟아놓은 먹이를 먹기 위해 호수 가장자리로 모여들었다. 사람들도 가던 길 멈추고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군가 말했다.


  “산 것은 살아야지!”

  “그나저나 시에 연락해서 죽은 것 처리하라고 해야겠구먼! 쪼매 거시기 헌께!”


 발길을 돌려 오는 동안 문득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은 게 있었는데, 수십 마리의 물닭들이 모여든 것은 아마도......

 그냥 그렇게 산 것은 또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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