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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 Sep 27. 2021

맨드라미, 견디는 꽃이더라

 


맨드라미는 모든 꽃이 다 지고 난 후에도 늦도록까지 볼 수 있는 꽃이다. 빨갛다는 표현을 넘어 붉다. 붉디붉은 그것이 폭풍처럼 쏟아지는 여름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낸 듯 처연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맨드라미는 거기 늘 세상 많은 엄마처럼 들녘 끝, 밭 언저리, 후미진 골목 어디쯤, 또는 사람은 사나 싶어 살짝 고개를 숙이게 하는 어느 허름한 집 대문 옆에도 서 있다. 그러니까 아무 곳에서나 피고, 어디에든 있고, 무심하게 보는 꽃 중의 하나가 맨드라미다.


 거친 삶을 앞서서 받아치는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을 전투적으로 살아낸 어머니들의 삶을 간혹 맨드라미를 보면서 느낀다. 


 알록달록 저마다 예쁜 꽃들이 지고 없는 지상에서 ‘처음부터 나는 여기 있었다’는 듯 맨드라미는 그제야 붉은 낯을 하고 그 묵직한 고개를 흔들곤 한다. 


 붉은 맨드라미를 보면 친근하게 다가가 쓰다듬곤 한다. 왠지 말을 붙이면 그저 다 받아줄 것 같은 큰언니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니가 없는 나는 선뜻 언니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오래 만난 사이 아니면 더욱더 그렇다. 맨드라미를 보면 언니 같다. 맨드라미 같은 언니라면 가끔 찾아가 하고 싶은 얘기를 실컷 쏟아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맨드라미는 묵직하다. 그러나 절대 무겁지 않다. 생을 슬기롭게 건너고 견뎌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오히려 격려하고 쓰다듬어주고 싶게 하는 고단한 빛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사람처럼 내게 맨드라미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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