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대에 내려오는 것도, 식판을 갖다 놓는 것도, 소변주머니에 있는 소변을 부어서 소변량을 체크하는 것도 제법 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남편과나의 상황은 뒤바뀌었다. 중환자실에서 눈을 뜨자마자 컨디션이 좋았던 남편은 준중환자실로 옮기면서 무척 힘들어했다.
남편은 불면증에 시달렸고, 잠을 자지 못하니 컨디션은 떨어졌으며, 목 옆에 주렁주렁 매달린 링거줄과 소변줄 때문에 괴로워했다. 나는 남편에게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조금만 고생하면 나아질 거라고 조금만 참자며 다독였다. 하지만 긍정왕이었던 남편에게 '우울'이 찾아왔다. 그동안 '우울'이라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던 남편은 준중환자실에 옮겨진 직후부터 힘듦을 호소했다.
"여보, 나 더 이상 못 참겠어. 의사 선생님께 면담 신청해서 소변줄 빼달라고 하려고~"
"뭐라고? 수술한 지 얼마나 됐다고 소변줄을 빼달라고 해? 힘들어도 참아야지..."
평소에도 결단력이 빨랐던 남편은 나의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사 선생님과 면담 요청을 했다.
남편이 의사 선생님께 요구했던 사항은 첫째, 밤에 잠을 잘 수 없으니 수면제를 처방해 달라는 것! 둘째, 본인이 소변양을 잘 체크할 테니 소변줄을 떼 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남편의 바람대로 의사 선생님과 면담이 이루어졌다.
나는 남편과 신체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남편이 소변 줄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알 수는 없었다. 나는남편에게 어렵게 준 신장이 혹여나 이로 인해 나빠지진 않을까 걱정되면서도 이 순간을 참지 못하는 남편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남편은 처음으로 마주한 우울감과 답답함에 링거줄과 소변줄을 다 뽑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남편은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해서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그리고의사 선생님은 지금 이 시기에 소변줄을 빼면 안 되는 다섯 가지 이유를 그림을 그려가며 남편에게 설명해주셨다고 한다. 그제야 남편은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힘들어도 참겠노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소변줄로 인해 불편한 곳을 다소 완화시켜 주는 스프레이도처방해 주었다.
그날 이후, 남편의 목소리가 조금씩 달라졌다.
잠을 자지 못해 최악의 컨디션이었던 남편은 조금이나마 잠을 잘 수 있게 되면서 목소리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또 힘들었던소변줄은 스프레이의 도움을 받아 이전보단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병원침대에만누워있던 남편은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남편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여보~! 나 이제 잘 걸을 수 있으니까 당신 입원해 있는 병동으로 올라갈게."
"응~ 그런 0층 휴게실에서 만나."
"여보! 우리 얼마 만에 보는 거야? 이렇게 만나니까 정말 감격스럽네. 그런데 입원복은 왜 민소매 옷을 입었어? 다들 긴 팔 입고 있던데?"
엘리베이터 앞까지 마중 나온 남편의 모습은 마치 장신구로 한껏 멋을 낸 아저씨같았다.
목 옆에 달린 색색의 링거 장식은 귀걸이처럼 보였고, 민소매 입원복을 입고 링거대를 밀고 서 있는 모습이 왜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보였는지...
남편과 나는 휴게실에 가서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여보! 우리가 수술하고 휴게실에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 진짜 고생했어. 당신도 나도!
시간도 참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아~그런데 여보! 우리 수술 들어가기 전에 우연히 만났잖아. 그때 진짜 떨렸어?
"응~수술실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엄청 긴장되더라고."
"나는 당신 그런 모습 처음 봤어. 그래도 당신 만나니까 반갑더라고~"
"나도 당신 보니까 마음이 좀 편안해졌지."
"진짜? 그랬던 거야? 우리무사히 수술 마치고 만나니까 정말 감사하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병원 휴게실에서 만나 수다도 떨고, 아이들과 영상통화도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 데이트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