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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un 16. 2021

큐플릭스 - 다다(DADA) Part.5 나무와콘크리트

(연재소설/로맨스/웹소설)

처음부터 보기 1편 링크

https://brunch.co.kr/@qrrating/221 



  방학을 앞두고 다다의 아틀리에를 찾은 날 미술과 건물에 거미줄처럼 걸렸던 ‘요즘 내 기분’이 흔들리고 있었다. 장마가 지나가면서 크레파스로 그린 작품들이 번져 보였다. 유화도 물감 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몇 개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어쩐지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다다의 이젤은 건물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주인을 기다리는 대형견 같기도 했다. 살펴보니 평소와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갈색 갱지에 싸인 직사각형의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옆에는 다다의 더블백이 놓여있다. 나는 이젤에 아이스크림 봉지를 걸어두고 조심스럽게 그림의 포장을 뜯었다.


  그것은 그동안 봐온 다다의 그림과 달랐다. 짙은 갈색 배경에 살색과 검은색이 거칠게 섞여 보였다. 군데군데 붉은색과 녹색이 실선으로 강세를 주고 있다. 나는 다다의 크로키에서 그 인물을 본 적이 있다. 두 여자는 몸을 겹치고 서로를 애무하고 있다. 두 사람의 표정은 반이 명암에 가려있었지만, 그 초록색 명암으로 말미암아 더 선명해 보였다. 다다의 자화상이 담지 못한 표정이었다. 나를 닮은 여자는 등허리에 단검을 감추고 있다. 갱지 안에는 그림 말고도 한 장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나는 더블백을 매고 그림을 안은 채 다다의 아틀리에를 빠져나왔다. 


  선배는 나를 위로한 답치고 노래방이며 클럽이며 여기저기 끌고 다녔다. 그때마다 나는 술만 연거푸 들이킬 뿐이었다. 다다의 얼굴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죄책감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내가 소주 한 병을 더 시키자 선배는 그만 마시라며 손사래를 쳤다. 믹스너트를 씹는데 눈물이 났다. 선배는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너 비파괴검사로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무너지는 건물이 있는 거 아냐?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거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 


   “취했다, 일어나자” 

  나는 선배의 부축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혼자 갈 수 있겠냐고 묻는 선배의 말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 집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자취 방 앞, 가로등 불이 붉었다. 밤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몽땅해진 담배를 비벼 껐다.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두 번째 담배를 꺼내 물고 그녀가 건넨 편지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담배를 땅에 꽂고 비비 밟자 여린 불꽃이 파지직 일었다. 나는 힘없이 쭈그려 앉아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딱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다다의 더블백에는 붉은색 일기장 하나와 스케치북 20권, 화구통에 담긴 그간의 작품들이 있었다. ‘너에게 너와 만나기 전의, 나를 선물할게’ 일기장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일기장에는 그림에 대한 치열한 고민들이 빽빽한 글씨로 들어차 있었다. 스케치북은 지난 4년간 다다가 그린 그림들로 가득했다. 화구통 안의 작품은 사진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리얼했다. 비로소 다다가 품고 있었던 균열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아틀리에에 크레파스를 칠하던 날 다다의 일기였다. 공대건물 기둥 하나를 코끼리 다리로 만들던 날도 비슷한 내용의 일기가 쓰여 있었다. 한계에 직면한 사람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요즘 내 기분’을 설치하던 날 다다는 비로소 아이가 될 수 있었다고 쓰고 있다. 이 후의 기록은 대부분 나에 대한 것이었다. 나에 대한 애정부터 작품에 받는 영감, 그리고 죄책감까지 솔직하게 쓰여 있었다. 


  담배를 끊었다. 대칭에 집착하는 버릇도 버렸다. 더 이상 균열에 주파수를 방사하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선배는 교수님께 나를 추천해 다달이 연구비를 받고 조교처럼 활동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건축공학 계열로 초음파탐상. 자분탐상. 탄성파 시험. 방사능 시험 등등 적용할만한 기술이 많았다.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 대도서관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그렇다고 감정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러닝머신 위에서도 뜬금없이 눈물이 나곤 했다. 처음에는 다다를 따라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다. 영 재능이 없었기에 그만두었지만, 스스로 무언가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다다를 본 건 반년 후 인천공항 라운지에서다. 다다는 호주의 예술가 커뮤니티에 들어가 작업을하기로 했다고 연락해왔다. 오랜만에 본 다다는 더 마르고 어두워보였다. 오랫동안 감추어진 균열이 드러나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니가 가지 말라면, 가지 않을게.”

  다다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잠시 아래를 바라보다 대답했다. 


  “너 왜 건축할 때 나무랑 콘크리트랑 안 섞는 줄 아니?”

  다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도는 문제가 아니야, 팽창계수가 달라서,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부피가 다르거든? 잘 서 있다 싶다가도 얼마 못 가서 갈라지고 무너져 내려 그런건, 그게 나무 잘못이니? 콘크리트 잘못이니?”


  다다는 잠시 생각하다 웃어보였다. 나는 게이트를 향하는 다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날 밤 뒤 늦게 폭설이 내렸다. 





마지막화 예고편 : part.6 우린 아방가르드야


대학원에 진학한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미친나무다. 나는 학교 뒷산에 올라 교정을 내려다본다.


다음화 링크




https://open.kakao.com/o/s5iB5T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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