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청소년문학/웹소설)
처음부터 보기 1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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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초체의 카페에 들렀다. 청록색 외벽에 테이블 다섯 개, 일인용 테이블이 두 개, 장식은 거의 없다. 커피도 팔지만, 보이차나 계피차가 더 좋았다. 나는 구석에 놓인 일인 석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드물게 손님이 많은 날이면 설거지를 도왔다. 가게가 한산할 때는 초체와 수다를 떨기도 했다. 5월에 문예지 공모가 있으니 넣어보라는 초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중에는 9시부터 7시까지 물류센터에서 책상, 책장, 전신 거울 같은 가구를 날랐다. 일급으로 7만 원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고 일이 익자 셔틀버스에 곯아떨어진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에 지치고 찌든 얼굴들, 매달 10일이면 삼촌의 돈이 들어왔다. 삼촌은 학비를 대고 싶었던 게 아닐까? 매달 그 돈이 월세로 나가고, 생활비 때문에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모습은 상상도 못 하겠지? 쓴웃음이 났다.
“음악 제가 틀어도 돼요?”
초체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에 설거지를 돕다가 팔이 저려왔다. 어제 나른 4단 서랍이 문제였다. 초체는 잠시 나를 살피더니 작은방에서 파스를 몇 장 꺼내왔다. 초체의 손이 등에 닿았다. 파스의 촉감이 어깨로 부터 차갑게 퍼지다가 이내 화끈하다. 밀도 높은 열기였다. 매무새를 정리하고 다시 전용석에서 책을 펼쳤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초체도 시를 썼다고 했다.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내 시를 봐줄 때만큼은 언제나 진지했다. 첨삭대로 퇴고를 거치고 나면 처음 쓴 게 부끄러울 정도로 좋아졌다. 내리쬐는 겨울이었다. 코트를 의자에 걸쳐놓고 안으로 쏟아지는 해를 맞았다.
노곤함에 눈이 감겼다. 정원은 우거져서 발조차 들일 수 없었다. 이럴 리가 없다. 삼촌은 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주변과 어우러지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다른 곳에 옮겨심거나 아예 잘라내 버리곤 했다. 자라난 가지에 팔이 베였다. 짙은 방향에 정신이 혼미했다. 연못로 향할수록 방향은 점점 진해져 갔다. 생채기마다 송진 같은 피가 흘렀다. 한여름 자동차 안 같은 답답함에 숨이 막혔다. 한발짝 한발짝 뗄 때마다 나무뿌리라도 되는 것처럼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연못 주변은 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렸을 적 삼촌은 그 꽃을 내게 보여준 적이 있다. 붉고 아름다웠다. ‘삼촌 그 꽃 이름이 뭐에요?’ ‘작약이란다.’ 삼촌은 웃으며 말했다. 하얀 린넨 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삼촌은 소년 같았다. 하얀 두 발이 연못에 잠겨 일렁였다.
“삼촌 그런데 이 꽃, 작약 아니잖아요?”
나는 초체가 삼촌의 무덤에 놓아둔 하얀 작약을 떠올렸다.
“작약이란다.”
“거짓말”
삼촌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삼촌은 천천히 연못 속으로 천천히 녹아들어가는 모양이다. 지독한 냄새가 났다. 나는 신발을 벗고 연못에 뛰어들었다. 두 팔을 뻗고 삼촌을 안았을때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초체의 마른 손길이 느껴졌다. 온몸이 차갑고 습했다.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쳐놓고 초체를 바라보았다. 초체는 내 등을 다독이다 주방으로 향했다. 진한 계피차 향기에 꿈이 짙어진다. 생생하게 느껴졌던 삼촌의 정원, 삼촌의 숲, 삼촌의 연못, 삼촌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삼촌은 딱 한 번 그 꽃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 잊고 있었는데, 어째서 지금 꿈속에 나온것인지, 그리고 그 꽃의 이름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양귀비꽃이야.”
초체가 말했다.
“네?”
“약도 만들고.... 관상용으로도 기르고....”
초체는 가만히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감상적 쓰레기’니 ‘약쟁이’니 하는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말문이 막혀왔다. 한사코 부검을 거부하던 아버지의 모습, 내가 신춘문예 본심에 올랐을 때 아버지가 보인 반응, 더는 시를 쓸 수 없을것 같다던 삼촌의 모습도 떠올랐다. 심하게 손을 떠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너는 나보다 좋은 시인이 될 거야.’ 이제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예고편 : part.6 Close
초체와 연락이 끊긴 도이는 초체의 카페에 찾아가지만 문이 닫혀있다.
며칠이나 자취방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던 도이는 무언가 결심한듯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다음화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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