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청소년문학/웹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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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얼마후 찾은 초체의 카페는 닫혀있었다. 커다란 초록색 문이 낯설었다. 손을 가져다 대자 차디찬 한기가 손목까지 끼쳐왔다. 문을 닫는 일이야 잦았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초체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무언가를 찾고있다고 늘 생각했다. 넋이나간 사람처럼, 초췌한 그녀의 눈을 마주칠때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 밑바닥까지 훑어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를 대신 발견해 주기도 하고 알아주기도 했지만, 그게 초체의 목적은 아니었을 테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다가 의외의 물건을 몇 개 발견했을 뿐이다. 나는 초체가 나를 지나서 그 무언가를 찾아 떠났음을 눈치챘다. 내리쬐는 겨울이 지나고 차가운 봄이 오고 있었다. 쌓인 눈이 회색으로 뭉개졌다. 나는 문앞에서 그대로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먹지않고 자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어쩌다 눈이 내리고, 어쩌다 비가 내려도 나는 이불 밖을 나오지 않았고 다시 한 번 번데기 라던가 누에고치로 변해버린 것만 같았다. 몸은 자꾸 말라갔다. 가만히 천장 모서리를 응시했다. 이 작은방의 소실점이 내가 닿을 수 있는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조금씩 무게를 줄이며 사라지는 것이다. 너무 하찮고 무의미해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너무 지쳤다
더 살아갈 기운이 없다
이건 자연사다
몸에서 버섯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버섯은 어깨, 가슴, 배, 다리, 손까지 모든 곳에 번식한다. 뇌도 눈도 손도 움직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몸은 여기 있지만, 진짜 나는 이 방의 어딘가에 부유하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오른쪽 눈에서 싹이 터 올랐다. 잎이 자라고 떨어지더니 붉은 꽃을 피운다. 나는 서둘러 눈을 감았다. 베게 옆에 잘린 꽃 하나가 나뒹굴었다. 그런 꿈을 꾸었다.
냉장고를 뒤졌다. 언제 샀는지 모를 눅눅하고 푸르죽죽한 채소들 사이로 통조림 하나가 손에 잡혔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가락으로 통조림을 까고 보니 역한 비린내에 숨을 쉴 수 없었다. 왜 내 주변은 온통 눅눅하고 푸르죽죽하고 비릿한 것으로 가득 차있나? 내가 잃어버린, 내가 원하고 사랑했던 모든 것은 이제 어디로 다 증발 했을까? 오랜만에 창문을 열자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눈이 부셨다. 문득 삼촌의 정원이 떠올랐다.
다음날 아침 동서울 터미널에서 춘천행 버스를 탔다. ‘당신이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사람들, 압박하고 밀치고 당신 뜻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멈추게 할게요.’ 앨리엇 스미스의 가사. 이어폰을 뺐다.
춘천에서 화천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1시간을 더 움직였다. 어지러움에 한동안 대합실에서 떠날 수 없었다. 삼촌의 집은 시내버스로 20분을 더 들어가야 했다. 할아버지가 남긴 집은 할머니의 손을 거쳐 삼촌에게 떨어졌다. 아버지는 항상 말했다. 할아버지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쓸모없는 한량에게 재산을 태우지 않았을거라고, 결국 지켜내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받은 것은 뭐랄까, 짐스러웠다.
사방거리를 지나 매실나무 과수원에 닿았다. 이제 막 터오기 시작한 매화에서 진한 향기가 났다. 벚꽃과 닮았지만, 좀 더 고결하고 맑은 느낌의 꽃이었다. 이곳만 지나면 곧 삼촌의 집이다.
커다란 초록색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차마 초인종을 누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나는 뒷산과 이어진 담장아래 개구멍을 기억해냈다. 어릴 적 정원과 뒷산을 이어주는 비밀통로였다. 그리 높지도 않은 산이 건만 한발짝 디딜때마다 숨이 차올랐다. 개구멍은 여전히 거기 있었고 나는 머리부터 몸, 다리까지 천천히 몸을 집어넣었다. 어린아이나 들어갈 수 있을법한 크기에도 여유롭게 통과할 수 있었다.
못보던 장독대가 눈에 띄었다. 더이상 삼촌의 정원은 없었다. 나무는 단 한그루도 눈에 띄지 않았다. 새 주인이 정원을 정리한 모양이었다. 눈에 익은 바위 몇개만 아직 그자리에 있어서 달 표면같은 황량한 풍경이다. 나는 쓸쓸한 마음을 다잡고 발길을 옮겼다. 삼촌의 연못가 있던 자리역시 메워져 있었다. 텃밭으로 쓸 모양인지 흙이 골라져있다. 한때 나에게 우주같았던 정원이 고작 10평짜리 텃밭이 되다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천천히 텃밭 한가운데로 몸을 옮기곤 대자로 누웠다. 내리쬐는 빛, 쿰쿰한 흙냄새에 정신이 아찔하다.
이곳엔 마땅히 작약이 있어야 했다. 양귀비가 아니라. 차라리 텃밭이 나았다. 그토록 공들여 만들어놓은 세계 한 가운데 그런게 있어서는 안됐다. 나는 이 아래 몸을 숨긴 삼촌이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다. 그런 건 자연사가 아니다. 자연사일 수 없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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