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휴직한 지 5개월이 지나자 그 누구도 취업에 대한 압박을 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재취업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더 쉬어도 된다고 남편에게 충분히 말했지만 줄어드는 통장잔고에 스스로 느끼는 부담감까지 완전히 덜어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남편은 나 몰래 재취업을 하기 위해 이력서도 쓰고 면접 준비도 하면서 쉬지만 편하지 못한 상태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먹는데 남편이 이야기를 꺼내왔다.
“여보. 지난번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실장님이 오늘 연락 왔어”
“응? 왜? 안부인사인가?”
“아니. 그분이 퇴사하고 다른 회사에 들어가셨는데 나보고 같이 일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네”
“아 그래? 어떤 회사인데? 여보는 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응. 기존에 하던 일이랑 조금 다른데... 힐링하면서 일하게 해 주겠다고 하시고 워낙 좋은 분이니까 믿음이 가.”
“여보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 해보고 아니면 더 쉬어도 돼. 생각해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해”
하루종일 혼자 집안에 있는 것보다 나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일을 하는 것이 우울증에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아직 남편의 마음상태가 어떤지 모르기에 선뜻 일부터 하라고 제안하는 것보다는 남편의 의지로 일을 시작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좋은 기회였지만 놓치게 되더라도 남편의 마음이 우선이었기에 조급하지 않게 결정하기를 바랐다.
며칠 고민하던 남편은 끝내 출근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긍정적인 대답을 주었고 드디어 남편이 새로운 회사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남편의 새로운 시작이 반가움 마음 반 걱정스러운 마음 반이었다.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다시 심해질까 봐 걱정도 되고 활기를 찾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반가움도 들었다. 그렇게 남편이 다시 출근하기 시작한 지 두 달이 흘렀을 때 일주일 중국 출장이 결정되었다.
예전에 갔던 미국출장보다 거리도 가깝고 기간도 일주일로 짧았기에 편한 마음으로 남편의 출장준비를 도왔다. 6개월 전 남편이 국내여행을 떠났을 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남편을 기다리며 한별이를 보살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남편이 중국출장에서 돌아오기로 한 날 아침이 되었다. 2주에 한 번씩 하던 한별이의 발작이 내가 출근하기 한 시간 전 갑자기 시작되었다. 평소처럼 조금 지나면 멈추고 건강한 한별이의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안일한 나의 생각이 문제였을까. 예상과 달리 처음 발작이 끝나고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다음 발작이 시작되었다. 1년 전 처음 병이 발병했을 때 연이어 발작하던걸 제외하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놀란마음에 한별이를 끌어안고 눈을 가리고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발작이 멈추길 바라며 한별이의 이름을 불러대고 있었다.
문득 몇 주 전 병원에서 응급상황에 사용하라고 주셨던 주사기가 생각났다. 스테로이드를 최소한으로 줄였기에 언제든 연이은 발작이 생기게 되면 항문으로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주입하라고 하셨다. 한별이를 안고 달려가 냉장고에 있던 주사기를 항문에 넣었지만 그 후에도 발작이 멈추지 않고 간헐적으로 계속 진행 중이었다.
출근준비를 하던 나는 혼비백산이 된 모습으로 한별이를 안고 집 근처 병원으로 뛰었다. 직장상사에게 강아지가 아파서 출근이 조금 늦을 거 같다는 문자를 보내고 병원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직 오픈시간이 되지 않아 병원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남편도 곁에 없었고 혼자서 끝없이 발작하는 한별이를 품에 안고 나도 모르게 엉엉 울어버렸다. 이대로 한별이가 내 품 안에서 떠나버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무서운 생각이 커지고 커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왜 하필 남편이 내 곁에 없는 이 시점에 한별이가 연이은 발작을 하는 건지. 원망스럽고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