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별이가 뇌수막염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는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아주 조금씩 줄여가면서 발작 횟수를 조절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로 인해 나빠지는 다른 장기들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주기적인 피검사를 진행했다. 길게는 2주에 한번. 짧게는 1주에 한번 동물병원을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새벽에 기습적으로 찾아오는 한별이의 발작에 귀 기울이고 발작을 멈출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나의 중요한 일과였다.
그렇게 긴 노력 끝에 한별이는 아프기 전과 비슷한 컨디션을 회복하고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전혀 아프지 않은 건강한 강아지처럼 보였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심리상담을 받던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고 쉬어가는 기간을 갖기로 했다. 한별이의 건강도 좋아지고 남편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면서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가슴 한편에 품고 있는 듯한 불안함이 마음에 깔려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쉽게 지금 나의 상황에 대해 내색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나에게 물어왔다.
“여보, 나 동해 여행 좀 다녀와도 돼?”
“그래. 다녀와!”
평소 여행을 좋아하고 나와 연애하기 전부터 무전여행, 자전거 국토종주등 가리지 않고 활동적으로 다니던 남편이 오랜만에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어 했다. 남편에게 여행이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힐링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런 남편이 우울증으로 무기력해진 뒤 다시 여행 갈 생각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좋은 징후라고 생각했기에 남편의 혼자 여행소식은 나에게 있어 서운함보다 기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여행계획을 꾸리던 남편은 전기자전거 한 대를 가지고 경주로 향했다. 그동안 나는 혼자 출근을 하고 밥을 먹고 운동을 하며 한별이를 산책시키고 약을 챙기며 멀리서 남편의 회복을 응원했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꼼꼼히 체크하는 대신 귀여운 한별이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고 남편은 좋은 경치를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마치 서로 좋은 것만 보여주기 경쟁이라도 하듯이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강릉의 한 애견펜션에서 재회했다. 그동안 여행이 어땠는지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고 오랜만에 바다를 보고 좋아하는 한별이의 모습에 행복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쓰다듬었다.
부부라면 둘이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자의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부부는 같이 집에 있어도 각자의 취미나 시간을 자주 갖는 편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야 같이 보내는 시간도 더 유용하게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항상 서로의 시간을 응원해 준다. 부부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속속들이 서로를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의 기준을 갖고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을 갖음으로써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함께하는 즐거움도 알게 된다. 우리가 7년 차 부부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연인이든 신혼이든 혼자만의 시간을 잘 활용해야 부부로 같이 보내는 시간을 더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모든 것을 알고 하나하나 다 간섭하려고 든다면 그것이 진정한 분리불안이 아닐까. 한별이가 우리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는 것은 분리불안과 다를 바가 없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자기 자신과의 시간을 잘 보내고 잘 지내는 것처럼 안녕한 것이 있을까.
그렇게 우리 셋은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안녕을 빌었고 겉으로 보기엔 안녕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게 안녕하지 않은 채 5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