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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Dec 27. 2021

아프니까 중년이다.

중년이 되니 자꾸 아프다.


성탄절이다. 성탄절이면 교회를 가던 소년의 마음처럼 설렌다. 특별한 약속이 없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로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아이들과 함께 한다. 치킨과 피자를 주문하고 함께 나누어 먹었다. 왁자지껄하게 떠들다 보면 성탄절 전야는 그렇게 흘러간다.  


성탄절 새벽,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왜 아프지?' 싶었다. 가족들은 멀쩡한데 나만 아팠다. 화장실 드나들기를 수 차례... 복통이 심해 견딜 수 없었다. 네이버를 열어 성탄절에 연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장염'이라 한다. 링거와 진통제를 맞았다. 성탄절 새벽부터 시작된 통증은 다음 날 오전이 되어서야 멈추었다.  2021년 성탄절을 극심한 복통과 함께 보냈다.


아이고! 아퍼라~~


아프면 두렵다. 


청년시절에는 아픈 것이 두렵지 않았다. 그냥 자신이 있었다. 

50이 다가오면서 아프면 두렵다. 나의 경우 아프면 좀 호들갑을 떨기는 한다. 아내는 '건강염려증(健康念慮症)'이라고 핀잔주기 일쑤다. 


아픔을 두려워하는 것에는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나야 뭐 일찍 하늘나라로 가도 좋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후회없는 시간을 살아냈다고 자위한다. 


하지만 '내가 잘못되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크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나이 50에 쓰러지셨다. 아버지는 식물인간으로 그렇게 10년을 가족들과 함께 했다. 남은 가족들이 아버지의 투병과 갑작스러운 부재를 처절하게 견디어내야 했다. 삶의 바닥에서 버티고 버텨내야 했다.

그래서인지 아프면 두렵다.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과 슬픔을 알기에 더욱 두렵다.   



고통도... 슬픔도... 고난도... 끝이 있다.


누워서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했다. 애벌레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서 '이 고통이 어서 지나가기를...' 간절하게 바랬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렇게 24시간을 견디어 냈다. 글을 쓰는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회복되었다.  


생각해보면 지난 삶 속에서 못 견딜 것 같았던 어려움은 항상 있었다. 다행히도 끝이 있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날의 아픔도 기억이 희미하다. 힘든 일은 또 있을 것이다. 그때는 어쩔 수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면서 버티는 수밖에...



가족들이 있다.


혼자 아픈 것이 아니었다. 가족들이 있었다. 함께 아파했다. 아내는 병원을 같이 가 링거 맞는 내내 함께 있어 주었다. 딸아이는 중간중간 아빠가 괜찮은지 물어보아 주었다. 몸은 아파도 마음이 따뜻했다. 가족이 없다면 아플 때 서러울 것 같다.




올해 성탄절을 아픔 속에서 보냈다. 

건강을 회복해서 이 글을 쓸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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