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 Feb 11. 2022

한 달 격리가 감사한 이유 4가지

무려 한 달간의 격리가 끝난다.


다음 주 월요일이면 중국 땅에 발을 딛는다. 한 달 내내 호텔방에만 있었다. 그동안 중국에 온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제 중국법인에 출근한다. 주말에는 마트도 갈 것이다. 중국 사람들과 섞이고 소통하게 될 것이다. 그제서야 중국에 온 것을 제대로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함께 주재원으로 발령이 난 유 부장도 호텔에서 격리 중이다. 4주의 격리 기간을 힘들어했다. 그에게는 고역이라고 한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름대로 감사한 격리 기간을 보냈다. 한 달 격리가 감사했다. 한 달 격리가 감사한 이유 5가지가 있다.



감사 하나, 격리 기간 쓰고 또 썼다.


소설 ‘레미제라블’과 ‘노트르담의 꼽추’를 쓴 19세기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 그는 유희에 빠져 오랜 시간 글을 쓰지 않다가 어느 날 결심을 한다. 하인을 글방으로 데려가 속옷까지 다 벗어준 뒤에 해가 질 때까지는 절대로 옷을 갖다 주지 말라고 지시한 것.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자기 자신을 통제한 것이다.

작가 이외수 씨도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아 생계가 막막해지자 고물상에서 감옥 철창을 구입해 집에 설치했다. 그리고 원고를 탈고할 때까지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말도록 아내에게 부탁했다.
이민규 아주대 교수 (DBR기고문 2014.1.9)
이외수 작가와 이외수 문학관에 만들어진 감옥문


호텔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노트북 하나가 있을 뿐이다. 감옥이 따로 없다. 노트북을 붙잡고 글을 썼다. 4주 동안 40여 편의 글을 썼다. 하루 종일 썼다. 생각나는 대로 의심의 흐름에 따라 썼다. 쓰고 싶은 대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누가 방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잘 못 썼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다. 온전히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잠들기 전까지 썼다. 다시 일어나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신기한 일이 있다. 글쓰기에 집중하니 글감이 미친 듯이 떠오른다. 목욕 중에도 글감이 생각난다. 대충 닦고 나와서 초고를 쓴다. 밥을 먹다가도 글감이 떠오른다. 노트북을 켜고 먹으면서 글을 쓴다. 자는 중에 글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밤새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글을 쓰기도 다. 글감이 쏟아져 나왔다.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한 이래 가장 뜨겁게 글을 쓴 것 같다. 글쓰기에 미친 한 달이었다.


글쓰기가 없었더라면 4주 격리기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싶다.


감사 둘, 몸이 건강하다.


한 달 동안 아프면 낭패다. 중국에서 격리 중에 병원에 가기도 쉽지 않으니 견뎌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격리를 마친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4주 동안 강제 금주를 했다. 직장인에게 회식은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22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무려 한 달 동안 금주한 것은 처음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상쾌하다. '간'이 건강해진 것 같다. 격리가 건강에 큰 도움이 되었다. 격리가 끝나는 날 바로 팀 회식이 잡혀있다. 오랜 금주로 탱글탱글해진 간에 '중국 백주'로 샤워하게 될 것 같다.

호텔 화장실 문틀에 철봉을 설치하여 매일 운동했다. 턱걸이 개수를 늘릴 수 있었다.


감사 셋, 내일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직장인은 항상 바쁘다. 온전히 자신을 생각하면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회사 일에 쫓긴다. 가족과 함께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친구, 선후배들도 만나서 인간관계를 유지해주어야 한다. 4주라는 격리 기간은 온전하게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김 부장은 한 회사에서 22년 직장생활을 했다. 앞으로 잘하면 10년 정도 더 직장생활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은퇴할 것이다. 은퇴 후로도 30여 년이 기다리고 있다. 내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인생 3모작의 컨셉을 잡았다. 어떤 목적이 내 인생을 이끌게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다.

[인생 3모작에 대한 글]   ☞ https://brunch.co.kr/@quarterb/433


노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노후를 위해 무엇이 부족한 지 알게 되었다. 연금에 대해 공부했다. 주재원 기간 중 필요한 재테크 계획을 세웠다. 내일을 준비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김 부장이 은퇴후 빈곤층이 된다고?] ☞  https://brunch.co.kr/@quarterb/415

[연금 공부하기에 늦지 않았다.]         ☞  https://brunch.co.kr/@quarterb/412



감사 넷, 역시 가족이다.


함께 있으면 얼마나 귀한 줄 모른다. 떨어져 봐야 소중한 줄 안다. 가장이 훌쩍 중국으로 떠나버려 힘들 텐데, 아내는 집안을 잘 지키고 있다. 여러 가지 문제들을 척척 해낸다. 아이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지내고 있다. 그래서 감사하다.


떨어져 있으니 가족이 그립다. 다시 만나게 되는 그날이 기다려진다. 소중한 아내의 남편이어서 감사하게 된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아빠인 것에 감사하다.


격리 중에는 평소에 잘 안 하던 전화도 몇 번 더하게 된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가운지... '격리 중에 듣는 유일한 목소리... 오랫동안 통화하고 싶어진다.' 아내는 자꾸 전화를 끊으려 한다. 격리된 자와 자유로운 자의 '온도 차이'이다.

(곧 아내도 중국으로 온다. 다음에는 아내가 격리할 차례다. 아내의 전화를 기다려보겠다.)




많은 것들을 얻었다.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다시 격리를 해야 한다면 기꺼이 하겠다.

다음에는 옷 짐을 줄이고, 책을 가득 싸들고 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격리 중에도 '소확행'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