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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림 Oct 24. 2019

아무도 고통받지 않는 식탁

조너선 사프란 포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2017년 5월부터 채식을 했으니 만 2년을 넘어 3년 차에 들어선 셈이다. 이전에 고기를 즐겨 먹는 삶을 살았기에 어찌 흐를지 나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한 달 즈음하고 포기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고기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찾아오지 않았다. 여름에 물냉면을 한 번도 먹지 못한 건 좀 슬펐지만 견딜만한 슬픔이었고, 그나마도 이듬해는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해장국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두어 번쯤 했으나 다른 식구들이 포장해온 해장국을 먹는 동안 홀로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으면서도 울적하지는 않았다. 초반에는 순대는 가끔 생각났는데 그 역시 1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맛에 대한 기억을 잃으니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동물원과 수족관에 가지 않으며, 우유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후 유치원과 학교에서 주는 급식을 포함해 우유를 먹이지 않았고, 식재료는 대부분 협동조합 시스템 아래 유통되는 것만 구매하며, 케이지에 갇힌 달걀을 먹지 않기 위해 방사하여 키우는 개인 목장에서 다소 비싼 달걀을 매달 받아먹은 생활이 수년에 이르니, 그렇다. 채식을 시도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2년 차에 들어서며 조금 더 엄격한 채식을 시작했고 지금은 비건적인 사람으로 살고 있다. 비건으로 살아가지만 '비건적인' 사람이라 말하는 이유는 예배 후  교회에서 식사 시 먹을 수 있는 반찬이 하나도 없을 때 먹는 김치에 젓갈이 들어갔을 거라 추정하기 때문이다. 반가운 사람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시킬 수 있는 메뉴가 단하나도 없을 때면 해산물과 함께 볶아낸 음식에서  면만 건져먹기도 하기 때문이다(고기육수에 담긴 것은 제외). 나 자신에게 더욱 엄격할 때는 즐겁지 않았는데, 집에서는 비건으로, 외출 시 여의치 않을 때는 비건적인 사람으로 산다 생각하니  조금 편안해졌다. 어쨌거나 닭고기를 포함한 모든 육류를 씹지 않은지 만 2년이, 유제품과 달걀까지 끊은지는 1년이 넘은 셈이다. 힘들지는 않았지만, 비건적인 사람으로 살면서 느낀 점은 우리나라 외식 메뉴에서 고기 육수와 해산물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선택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채식이 어려운 게 아니라 외식이 어렵다. 



집에서 자주 해 먹는 음식들은 이런 것들이다. 각족 채소를 올리브유, 로즈마리, 소금에 굽거나 콩과 토마토를 푹푹 끓이거나, 껍질 벗긴 파프리카 절임을 빵이나 크래커에 올려 먹는 것.


육수 대신 채수를 끓이고, 그래놀라와 과일에 요거트 대신 두유나 귀리유를 부어 먹는 것도 이제 익숙한 일.


조너선 사프란 포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한 번이라도 채식을 시도했거나, 시도해 보고 싶거나, 이미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고 있거나, 그도 아니라면 대체 왜 채식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불편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까지 모두에게 즐겁게 읽힐 책이다. 이미 예전에 읽고 두 번째 읽었음에도 매우 재미있다. 탄탄한 자료들을 근거로 자신의 경험을 적은 이 책은 환경운동가나 채식 전도자가 적은 것이 아닌, 그 유명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쓴 책이다. 어쩌면 가장 많은 동물들이 고문당하고 죽임 당하는 미국에서 젊고 촉망받는 소설가가 진지하게, 그러나 유머를 잃지 않고 쓴 책이란 점에서 채식에 반대하거나 관심이 없다 해도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 생각한다. 



김한민 <아무튼, 비건>

이 책은 온 가족이 함께 읽고 토론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내가 지난 시간 동안 해온 채식 생활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었고, 누군가를 만날 때 받게 되는 질문들에 말주변이 부족해 머릿속에만 맴돌던, 그래서 늘 안타까웠던 내 마음을 정리해놓은 글들 같았다.

이제 누군가 "그런데 왜 채식을 하게 된 거야? 이제 달걀도 안 먹는다고?"라고 물어오면 대답 대신 이 책을 손에 쥐여주며 이 책이 나의 대답을 모두 대신하고 있으니 부디 꼬옥 읽어보라고 부탁하려 한다.


경험상 이런 반응들에는 논리적으로 답변해 봤자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정말 비건들처럼 개와 소, 돼지, 닭을 평등하게 보기 때문에 저럴까? 그들이 낙태 이슈나 동성애자 결혼 합법화에도 개인 선택 존중을 위해 저렇게 분연히 일어설까? 그들이 보신탕 업자들을 진심으로 염려해서 저럴까?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심증이지만, 이들은 동물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성소수자, 난민 이슈 등에 공통적으로 분노나 혐오를 곁들인 보수적 견해를 피력하는 층이라 예상한다.
p39


이렇게 간접적인 제품까지 포함하면 경계는 점점 확대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팜유는 어떨까? 팜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밀림이 파괴되면서 오랑우탄을 비롯하여 수많은 동물들이 서식지를 잃고 죽는다. 그렇다면 비건이 팜유를 먹는 것이 본래 취지에 맞을까? 이렇게 확장하다 보면 끝도 없어진다. 그래서 비건에게만 모든 부담을 지우고 완벽함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진정한 변화를 이뤄낼 수 없다. 한 비건 활동가이자 연구가는 주장한다. 완벽한 비건을 몇 명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다수의 사람들은 더 '비건적'으로 만드는 것이 사회 전체로 봤을 때 훨씬 효과적이라고. 동물을 살리는 데도, 환경을 보호하는 데도, 공중 건강을 위해서도 말이다. 일단 비건-친화적인 사회가 되기만 하면, 실천하기가 점점 쉬워지면서 비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건은 내게 정체성이나 명사이기 이전에 형용사이다. '비건적'인 작은 노력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비건은 소수자 운동을 넘어서서 정말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p54



비건들 중에는 주변에 미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행여나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을 겪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지구와 동물들, 그리고 그들의 몸에 좋은 일을 하고 있음을 상기하면서 미안한 감정을 극복해야 한다. 나 혼자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니까. 나도 주위에 미안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고통받는 동물들을 떠올린다. 때로는 노예해방 운동을 떠올리기도 한다. 비건도 하나의 해방 운동이니까. 
p84


늘 말하지만, 모르고 먹는 것과 알고 먹는 것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집에는 다양한 환경, 생태, 채식 관련 책들이 있지만, 대부분 매우 두껍고 무서운(?) 표지를 하고 있어서인지 책과 친하지 않은 그의 관심 밖에 있었는데, 이 책은 건네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다 읽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읽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가 채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장지에 가서도 무엇을 먹었는지 사진을 보내오며 자신의 변화가 신기하다 말한다. 책에서는 실전에 돌입하는 이들을 위해 '일단 한 달만 해보라'라고 권유하는데, 그도 한 달을 향해가고 있다. 이 작고 귀여운 책이 건넨 놀라운 변화이다. (올해 초에 적은 것. 요즘 그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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