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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림 May 01. 2020

주인공이 소외되는 무대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

저자는 두 아이를 모두 재태기간 37주 미만으로 낳았다.

이 책은 그중 둘째를 32주 만에 1.8kg으로 출산하는 과정에서 병원과 의료진에 의해 출산에서 어떻게 '제외'된 사람이 되었는지를 굉장히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물론 모든 산모들이 조산을 겪는 것은 아니기에 이 경험을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저자와 마찬가지로 두 아이를 모두 조산으로 낳은 나는 굉장히 공감하며 읽었다. 그 경험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바로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나 괴롭다. 그 이전에 어떤 임신 과정을 겪었는지, 어떤 유산 과정을 겪었는지도 언젠가는 적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쌍둥이를 임신기간 32주의 (37-41주를 만삭의 범위로 봄) '이른둥이'로, 그리고 제왕절개로 낳았다. 아이들은 1.74kg, 1.97kg이었다.

양수가 갑자기 터져 응급실로 들어간 후 다음날 출산한 저자와는 달리 나는 출산 전 8주를 입원해 있다가 수술을 했다. 그중 3주는 병원의 지하 1층 분만실 내에 자리한 고위험 산모방 (창문 없음)에 있었다. 그 3주는 내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 무섭고 아프고 두려운 기간이었다.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면회는 정해진 시간에만 잠시 허용되었고 창문도 없는 방에서 걷기조차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이를 지켜내야 하는" 엄마의 고귀한 의무감에 사로잡혀 나 자신의 정신건강 따위는 돌보지도 못한 채 그곳에서 설명 없이 행해지는 모든 의료 행위(자궁이 열린 상태였기 때문에 정말 자주 내진을 했다. 정상 분만이라면 아이 낳기 직전에나 할 내진을. 어제와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장갑을 끼기 시작하면 덜컥 겁이 났다.)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감사히 견뎌내야만 했다. 그저 하루를 더 버텨내는 것이 내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였고, 의사들은 나를 눈앞에 두고도 나의 상태에 대해 자기들끼리 이야기했다. 이 책에도 정확히 같은 경험이 나온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내 곁을 지나갔지만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난 침대처럼 침대 위에 누워 있다. 인턴 한 명이 다가와 묻는다. "전가일 씨 맞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간호사와 함께 침대를 수술장으로 밀어 넣는다. 또 다른 인턴들이 수술장 안으로 들어온다. 인턴들이 서로 인사를 나눈다. "수술장 어떻게 잡았어?" "내가 그냥 밀고 들어왔지!" "잘했네. 아까 그 사람 결국 수술했지? 피 봐서 좋았겠네." "응. 내가 또 수술장에 들어가면 피를 봐야 되니까." 이야기를 주고받던 인턴들이 웃는다. 그들은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잊었던가? 그들은 마치 내가 여기 없는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사이 난 수술장 침대로 옮겨 눕는다. 반신 마취를 위해 마취약을 꽂을 척추에 소독을 한다. 절개할 부위도 소독한다. 그때 수술 부위를 절개하기 위해 소독을 하던 (아마도) 인턴이 말한다. "이 산모 몇 주라고 했지? 그래도 30주 넘었다고 안 했나? 그런데 배가 왜 이렇게 작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저 여기 있거든요. 다 듣고 있거든요'라고 외치고 싶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나의 말이 혹 그들의 맘을 상하게 해서 혹시라도 배 속의 아기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까 봐 잔뜩 긴장한 나는 다만 숨죽여 기다린다. 남자 인턴 하나가 다시 말한다. "와~ 배가 왜 이렇게 작지?"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인턴이 "흠흠" 거린다. 그제야 그는 내가 깨어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는 듯 "아!"한다. 인턴들의 대화가 그치고 그제야 수술실이 조용해진다.




내 얘기를 해볼까. 나는 아래는 헐벗고 있고 위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로 수술실 침대에 누워있다. 마취과 의사와 레지던트, 담당 의사, 간호사 등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팀'에 둘러싸여 그들이 어제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사람이 실없는 소리를 해서 웃었는지를 고스란히 듣고 있다.

내 뱃속의 아이는 폐가 만들어지지도 않은 채로 태어나야 하는 두려운 상황에서, 인큐베이터에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스스로 숨은 쉴 수 있을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나를 가운데 두고 수다를 떤다. 그들의 저녁 메뉴를, 동료가 얼마나 실없는 말을 해서 그를 어처구니없게 만들었는지 따위의 말을 나는 절대 들을 기분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웃으며 말을 한다. 나는 정신이 말짱한 상태에서 춥고 두렵고 절망적인 상태에서 그들의 잡담을 견뎌낸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 아니, 그들이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 전신마취를 해주지 않은 의사를 원망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NICU (신생아 집중치료실) 규모는 해마다 줄었는데, 2005년도에는 143개 병원, 1730여 개 병상이었던 것이 2012년도에는 89개 병원, 1250여 개 병상으로 급감했다. 분만실과 신생아 중환자 치료실은 모두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1킬로그램 미만의 미숙아들은 적어도 석 달 내지 넉 달을 입원하고 가요. 그러면 그 아이들이 한번 입원을 하면 퇴원 안 하니까 추가 환자 못 받죠. 중환자 입원 수가는 적죠. 병상 회진은 안 되죠. 그리고 간호사들은 24시간 투입되고 그러니까 그로 인해서 수익이 나는 게 아니라 적자가 심화되는 구조예요."

ㅇㅇ 종합병원 NICU 의사 J ,KBS <추적 60분> 중




조산을 하는 산모에게 병원은 거대한 갑이다.
인큐베이터가 확보되지 않으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어야 하고, 출산 전에 옮겨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산모와 아이의 삶은 보장받을 수 없다.
나의 경험을 토대로 저자의 글과 비교하며 하나하나 다 적다가는 밤도 새울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만큼 나의 경험은 저자만큼 혹은 그 이상 강렬하고 처절하게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왜 나는 다니던 여성 병원에서 쫓기듯 옮겨져야 했으며, 의사로부터 아기를 지금 '꺼내면' 고기 한 근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으며, 그러니 (실제로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잘 버티라는 말을 들어야 했는가.

담당의가 만취해 병원 1층의 편의점에서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고도 병원을 옮길 수 없었던 나는, 인큐베이터와 산소호흡기가 보장된 병원을 절대 떠날 수 없었던 철저한 을이었다.
나는 출산으로부터 소외되었고 내 뱃속의 아이가 고기 한 근이라는 말을 한 의사에게 대들지도 못했다. 내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 봐.

저자는 첫째를 출산한 여성전문병원에서는 좋은, 따뜻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배려받은 기억. 그래서 그 기억을 토대로 여성이 행복한 출산을 꿈꾸며 이 책을 썼다. 그러니 당연히 출산 의료화 시스템 전체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다시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내게는 출산의 현장에서 가장 배려받아야 했던 내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 되어 철저하게 소외당한 기억만이 끔찍하게 남아버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출산이 그렇게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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