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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e Jun 18. 2019

100만 원짜리 유모차, 안사도 괜찮아

지극히 사적이고 주관적인 유모차 선택기

아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마도 유모차일 겁니다.


출산 전부터 유모차 끌 생각에 설레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사려고 보니 어찌나 종류가 많은지...임신 6개월 무렵, 유모차가 디럭스/절충형/휴대용으로 나뉘어진다는 것조차 모른채 베이비페어에 갔다가 난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OpenClipart-Vectors, 출처 Pixabay


출산 전, 인생 첫 유모차를 사기에 앞서 남편과 얘기했습니다.


우리 아기는 가장 좋은 유모차를 태워야 할까?

네덜란드 유모차 부**를 떠올렸습니다. 이 유모차, 예쁩니다. 캐노피를 깔별로 바꾸면서 만들어가는 재미도 있구요. 가격은 절충형일 경우 100만 원이 좀 넘죠. 100만 원이면 비싸지만 그렇다고 지불 못할 수준은 아닙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유모차에 100만 원을 써야 할까?

이러저러한 고민을 하던 와중에 마침 봐두던 유모차가 있어서 바로 샀습니다. 제가 선호하는 카시트 회사에서 나온 유모차였는데 맘카페에 '미개봉 유모차, 택배 가능'이란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 glenncarstenspeters, 출처 Unsplash


4~5년 전에 한국에서 유행했던 유모차였고 당시 40만 원 안팎으로 팔았었는데, 재고떨이를 하려 했는지(?) 작년에 핫딜로 7만~8만 원 정도의 가격에 판매됐었던 거죠. 핫딜 때 사둔 사람이 맘을 바꿨는지, 맘카페에서 중고 물품으로 내놓은 것이었습니다.


단돈 5만 원

어느 집이나 그랬겠지만 유모차를 조립하고 나서 거실 한귀퉁이에 세워진 유모차를 보고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비록 5만 원에 중고로  샀지만, 아직도 5만 원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뒤 첨에는 너무 어려서 유모차를 못태우고 100일 지나서야 집근처에 산책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아기가 9개월인 지금도, 아직까지 잘 쓰고 있습니다. 바퀴도 커서 안정적이고 장바구니도 크고 아이도 적응을 잘하고 면대면도 되고, 개인적으로 매우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 mohamed_hassan, 출처 Pixabay


하지만 자동차로 외출이 잦아지다보니 휴대용이나 절충형이 다시 필요해졌습니다. 일단은 동생에게 유모차를 물려 받아 썼지만 아무래도 구형 모델이다보니, 180도 젖히기가 안되어서, 아이 낮잠 시간에 외출하는 날에는, 아이가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조는 사태가...


그렇다고 디럭스를 끌고 자동차 외출을 하자니, 차에 싣는 게 무리였고 휴대용이든 절충형이든 사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번엔 휴대용으로 많이들 쓰시는 Y모 유모차. 핸들링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고, 접으면 기내 반입도 되어서 해외 여행의 필수품으로도 꼽히는 유모차였습니다. 가격은 50만 원대 안팎이었는데 역시나 가성비 측면에서는 선뜻 지갑을 열기가 어려웠습니다. 장점도 많지만 제게는 단점도 없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이를테면 등받이를 레버가 아닌 끈으로 조절해야 한다는 것들 등(물론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기에 단점입니다) 완벽한 유모차는 없겠지만 굳이 50만 원 넘는 가격을 지불하고도 단점을 감내하긴, 좀 그랬습니다.

그래서 나름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단점이 없는 유모차를 사자.

물론 이 단점은 순수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기에 단점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단점이 다른 분께는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또 그 반대일 수도 있고 이는 상대적입니다.

유모차를 사기 위해 제가 나름대로 세운 기준은 이렇습니다.


-아이가 탔을 때 덜컹 거리는 느낌이 덜 할 것(핸들링이 나쁘지 않을 것)
-장바구니 공간이 넉넉할 것(정리벽이 없는 저희 부부의 특성을 반영하여)
-아이가 180도로 누울 수 있어야 할 것(앉아서 조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캐노피가 많이는 내려올 수 있어야 할 것(아이가 누워서 잘 경우 외부 차단을 위해)
-등받이를 끈이 아닌 레버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할 것(저희 부부의 편의성을 위해)


나름의 기준을 100% 만족시키는 초명품 유모차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기준에 부합하면 그냥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유모차 탐색하는 도중에 아이 셋을 키우는 친구 이야기도 도움이 됐습니다


비싼거 필요없어. 아이랑 유럽 갔는데 유모차가 망가졌어. 현지에서 싼 유모차 샀는데 한국에 와서도 몇년째 잘 쓰고 있어. 그냥 20만 원대 웬만큼 많이 타는, 가성비 유모차로도 잘 타게 된다오.


이렇게 해서 무난무난한 국산 유모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유모차는 다른 수입 브랜드보다는 '브랜드 파워'가 약해서인지, 액세사리를 그냥 다 줬습니다. 방풍막부터 컵홀더, 쿨매트까지요. 액세서리를 별도로 살 수고를 들일 필요 없었고, 돈을 더 들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제가 세운 기준에 다 부합했고, 매년 리뉴얼 제품을 내놓는 곳이었는데 한국 소비자들이 까다로운 걸 알아서인지, 매년 무언가가 개선되는 점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를테면
-등받이를 끈 조절하는 방식이었는데 소비자들 불편하다고 하자 올해 제품은 레버 조절로 바꾸었다든지
-유모차 아래 장바구니가 밑으로 처진다는 평이 있자 올해는 이를 보완했다던지

등등. 빠르게 반응하는 것도 한국업체의 강점인 듯 합니다.

© niekverlaan, 출처 Pixabay


지금도 쇼핑몰에 가면 예전에 살까 말까 망설였던 수입 유모차들이 눈에 보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예전에 한국에 명품백이 유행했을 때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과시적 소비가 한창 유행했을 때죠. 지금 저는 명품백들은 다 옷장에 집어 넣었거나 일부 처분하기도 했습니다. 휴일엔 걍 에코백 들고 다닙니다. 회사에도 이름없는 곳('브랜드'라고 하기에도 뭣한, 그래서 '곳'이 맞습니다)에서 산, 큼지막 가방 들고 다니고요. 오히려 로고가 반딱반딱(?) 붙은 명품백이 부담스러울 때도 적지 않습니다.

저는 여건이 되더라도 우리 아기가 "조금의 결핍"을 느끼며 살 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아기가 어려서 본인이 어떤 유모차를 타든 상관은 하지 않을겁니다. 심지어 기억도 안날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속형 20만 원짜리 유모차를 산 것은 저와 남편에겐 일종의 "다짐"입니다. 육아템에 많은 돈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한 터이고, 물건보다는 본질에 집중하자는 다짐을 한 터입니다.


스웨덴 등 북유럽 사람들의 조금은 독특한 문화 '얀테의 법칙'(Janteslagen)을 떠올립니다.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You are not to think you are anything special)로 요약되는데요.  

구체적으론 더 많이 안다고, 더 중요하다고, 모든 것을 잘한다고, 남들보다 더 낫다고 확신하지 마라, 남들을 비웃지마라, 누구도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들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등의 내용이 포함되죠.

북유럽의 얀테의 법칙(출처: 위키피디아)


당당하되 과시하지 않는 것. 한끝 차이지만 사람의 태도를 가르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겸손이 미덕인 것. 특히 이런 태도는 경쟁이라는 구조에서 빛을 발할 듯합니다. 무한 경쟁의 시대라지만, 나만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남을 배려하고 함께 잘되길 바라는거죠.


스웨덴의 재벌 발렌베리 가문의 모토도 존재하지만 드러내지 않는다(라틴어 Esse non Vederi)라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겁니다.


바로 이런 생각에서 저는 유모차를 실속 구매한 데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본질’에 집중하기보다는 소비에 빠지는 걸 스스로도 경계하고 싶습니다. 육아템 소비, 장난감 소비, (더 나아가서 양육이 교육으로 전환될 때에는 ...) 학원 소비 등등이요.

물론 고가 유모차를 태우는 건 부모의 선택이지만, 굳이 고가 유모차를 안태워도 유모차 잘 굴러가고 아이도 편하게 적응한다는 본질에 충실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이번 글을 정리해봤습니다. 실속형 부모들이 많아지기를 바래보면서 이번 포스팅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상,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적인 유모차 선택기였습니다.



https://brunch.co.kr/@que/1

https://brunch.co.kr/@que/2


엄마. 여성주의자. 신문기자
유별나지 않게, 유난하지 않게,
아이를 기르고 싶습니다


매일 밤 뭐라도 씁니다

매일 밤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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