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매주 목요일, ‘수녀원’ 모임이 있는 날이다. 3년 전부터 꾸준히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 천주교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수행)에 참여하고 있다.
참여대상은 만 33세 미만의 순결한 미혼여성.
모임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자매들은 ‘수녀’를 꿈꾸거나 수녀원에 ‘입회’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나’를 제외하고.
처음 모임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성당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나를 배려한 본당 수녀님의 권면 때문이었다. 그렇게 성경을 읽는 모임이 있다기에 별생각 없이 무작정 찾아온 수녀원에서 지금 독서를 담당하시는 수녀님을 만났다.
’김대건신부님’의 이름을 따 ‘대건’이라 불리는 그녀.그녀는 수녀원에서는 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해바라기’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 ‘해’를 바라보는 여인이라 하여 이해인 수녀님께서 직접 지어주신 명칭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독서모임이 시작되는 첫 주부터 방앗간에서 뗀 오동통한 떡볶이와 순대로 한상을 차리고 선물 받은 귀한 커피를 직접 내리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는 주방 수녀가 되고 싶어 수도회에 입회를 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수도회의 결정에 따라 중간에 잠시 로마로 가서, 전례와 오르간을 배웠다고. 그래서 수녀원에서는 전례음악과 수녀 입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곤 “라틴어가 너무너무 어려워서 눈물 쏙 빠지게 울고 싶은 날이 있었지만, Tassa d’oro Caffee타짜 도르 커피가 너무 맛있었다.”며 로마인처럼 농담 반 진담 반 로마 이야기를 해주시다가. “그런데 사실 공부하는 것보다 요리하는 게 더 재미있다”라고 귀띔했다. 그래서 군부대 주방 수녀로 일 할 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그리고 못다 한 주방 수녀의 꿈은 독서시간마다 우리를 위해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다고 하셨다.
매주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힘들 법도 한데,
잘 먹는 사람들을 보면 힘이 난다며
그녀는 매주 다양한 장르의 음식을 준비했다.
천연재료를 듬뿍 넣어 맛깔나게 버무린 비빔국수, 수제비와 석박이, 납작 만두, 단호박 수프, 짜장면, 해파리냉채, 파스타, 피자빵 등.
빠질 수 없는 유혹은 먹방에 있었다.
식탁을 비우고 나면, 목적 도치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모임 시간 90분 중 60분은 먹고, 30분 성경관 찰나 누기를 하는데, 너무 배가 불러서 성경을 읽다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수녀님은 ‘밥’ 먹는 것도 ‘공부’라며, 식탁 나누기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곤 한다. 그렇게 독서가 끝나면, 주방에 남은 음식들을 싸주시거나 손수 만든 선물을 매주 하나씩 주신다. 그렇게 우리는 수녀님의 사랑을 듬뿍 먹으면서 통통한 뱃살을 얻었다.
그렇게 3년, 아무 대가 없는 사랑을 받으면서 고민이 생겼다. 함께 모임에 참여하던 사람들이 한 둘, 수녀로 수도회에 입회를 하면서 마음이 불편해졌다.
‘수녀의 길’이 나의 길은 아닌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배움’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남다른 내 기질적인 면 때문에 규율적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거라는 판단이었지만. 수도생활에 대한 암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이를 정직하게 나누자 수녀님은 내 의견을 존중하셨다. 하지만, 모임에서 받는 음식들과 선물들로 모임에 나오는 일이 불편할 필요는 없다 했다.
“사랑이 원래 그런 거잖아.
대가 없이 주고, 대가 없이 받는 거”
말하며 들꽃처럼 웃는 그녀.
가끔 ‘수도생활’을 세상의 ‘도피처’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하지만 수도생활은 절대 세상의 ‘도피처’가 될 수 없다. 실제 수도자들의 생활은 규율 안에 굉장히 엄격하다. 수도자들은 결혼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떤 재산도 물건도 소유할 수 없다. 또한 엄청난 노동을 감내한다. 그럼에도 해바라기에서 ‘수도생활’을 선택하는 새내기 수녀들을 만날 때마다, “왜, 수도생활을 선택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한다. 그때마다 그들이 공동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더 큰 사랑의 실현을 위해서 기꺼이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부인하여 자유로워지는 삶을 택한 것이었다. 또한 사랑을 회피하고, 세상으로부터 도피한 것이 아니라 더 큰 사랑의 실현을 위해 수녀의 삶을 선택한 것이었다. 어쩌면 삶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에게 신이 선택할 수 있도록 준 선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는 자유로운 제도와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우리의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 수녀, 그녀들의 삶처럼. 얼마 전, 수녀님께서 불러주신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수 녀
이해인 시
김정식 곡
누구의 아내도 아니면서,
누구의 엄마도 아니면서,
사랑하는 일에 목숨을 건 여인아.
그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부끄러운 조바심을.
평생의 혹처럼 안고 사는 여인아. 여인아.
때로는 고독의 소금 광주리 머리 에이고.
맨발로 흰모래 밭을 뛰어가는 여인아.
표백된 빨래를 널다.
앞치마에 가득 하늘을 안고.
혼자서 들꽃처럼 웃어보는 여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