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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펼치며

첫 장에 적힌 이야기 (완)

by 인용구

내일 (2/24)이면 개강입니다. 수업도 안 듣는 대학원생이 무슨 개강을 따지냐마는, 내일은 KAIST에서 맞이하는 나의 마지막 학기가 시작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방금의 문장을 쓰면서 그것을 실감하는 중입니다;; 와... 어라, 혹시 제가 이야기 안 했나요? 저 8월에 졸업합니다. 작년 12월 3일에 박사학위 논문 프로포절을 했고요. (계엄 터진 그날 맞습니다.) 교수님과도 이야기가 되어서 아마 6월 중에 디펜스 심사받고 졸업을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은 제가 4월 말까지 학위 논문을 완성할 때의 이야기지만요. <- 사실 이것 때문에 몹시, 몹시 바빠야 합니다만- 용구 특) 발등 개 두꺼움. 불 떨어진 줄 모름.


그런 이유로 최근 글이 좀 뜸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연말에도, 연초에도 근황을 전해드려야겠다 생각했는데 개인적으로 정신이 없기도 했고, 나라 꼴도 말이 아니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네요. 다 변명이지만요. 결국 졸업 준비로 밤을 새우는 오늘에야 브런치 구독자분들께 소식을 전합니다. 컴퓨터 한쪽에서는 실험이 계속 돌아가는 중이고요. 잠을 내몰면서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기 위해 또 글을 몇 자 씁니다.


아직 학위 취득이 끝난 것도 아니고, 그 후로도 전문연 문제로 대전에 좀 더 머무를 예정이어서요. 대학교, 대학원 생활을 아우르는 소회의 글은 훗날 작성하는 걸로 하고. 이 글에서는 오늘 새벽 난데없이 올린 글들에 대한 감상을 몇 자 적어보겠습니다.


아직 안 읽으신 분들을 위해.


1. 사나이가 되고 싶다.

2. 나는 다이아몬드가 되고 싶지 않다.

3. 카이스트에 온 것은 실수였다.


제목 어그로 지리죠..? 무튼, 위의 글들은 제가 대학교 입학한 2016년 말 ~ 2017년 중순 무렵에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던 글들입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인용구"를 기억하시는 분들 있으신가요..? 900명 가까이 구독자 모았었는데ㅠ) 마지막 글에서 앞의 두 글을 인용하고 있는데, 제가 브런치에는 위의 글들을 아카이빙 안 해놨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글 세 개 다 올려버리기로 함. 어릴 때, 그냥 편하게 고민을 늘어놓던 글들이라 브런치에서 보통 올리는 글들이랑은 문체가 좀 다른데, 최소한의 수정만 거치고 그대로 올리기로 했어요. (맞춤법 엄청 틀렸더라고요!) 이 글도 비슷하게 그냥 가볍게 막 쓰는 중.


무튼, 갑자기 왜 이런 글들을 발굴했냐면요. 며칠 전부터 문학의 뜨락에 들어올 25학번 친구들을 보는 게 너무 기대되는 것 아니겠어요? 아니, 학부 16학번이 지금 25학번 보겠다고 하는 거냐, 양심이 있냐, 하시면 곤란합니다. 저는 양심 따위 버린 지 오래거든요. 저 지금 라스트 댄스 중이니까 구경할 거 아니면 조용히 지나가세요. ("화락" 글 참고)


또다시 3월이 되어서 정든 동아리에 맑은 물이 흘러들어온다니, 반갑고 또 설렙니다. 이건 작년에 들어왔던 친구들이 좋았던 까닭도 있지만요, 돌이켜보면 23년에 들어온 친구들도, 22년에 들어온 친구들도. 문뜨를 찾아오는 친구들 중에는 참 멋지고 좋은 녀석들이 많습니다. 그냥 매년 기대되는 듯.


그런 와중에 올해의 25학번은 아무래도 조금 더 의미가 깊은 것이, 저와 20대를 공유할 수 있는 마지막 친구들이기 때문입니다. 제 나이 벌써 스물 아홉. 갓 스무 살이 된 친구들은 제게도 그들과 같았던 시간이 있었음을 알까요? 물론 똑똑한 놈들일 테니 모르진 않겠죠. 그러나 자명한 사실이지만,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에게도 그 시절의 용구는 과거가 되어버린 것 같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면 초심을 찾기 위해 불멍하러 가는 글이 있습니다. (오, 연번이 제 나이랑 같은 29네요. 와.)

2016년 문학의 뜨락에 처음 들고 왔던 글. 그 후로 많은 일이 있었지만 여전히 그 글에 담긴 고민은 제 안에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타고 싶다> 글도 제 안에 오래 간직되는 것일지도요. 말하자면 어떤 비망록 같은 글입니다. 다가오는 25년 문뜨의 첫 정모에 들고 갈 글을 하나 쓰다가, 저의 진짜 처음, 16년 첫 정모에서 나눴던 표현 하나를 빌려오고 싶어서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첫 글. 새로운 사람들에게 처음 선보이는 글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다른 후배들도 고심해서 글을 고르고 다듬는 것 같던데, 진짜 재밌겠네요.


그렇게 "타고 싶다" 글을 읽다가, 그때 고민했던 나의 사명, 꿈과 포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글이 위의 세 글이라 모처럼 읽으며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스무 살의 용구는 정말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고민이 많았나 봅니다. 20대를 마무리하는 지금, 저는 그때의 막연하고 막 연했던 저보단 좀 더 분명하고 단단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스스로가 조금은 기특하고 그렇습니다.


앗, 아직 제 20대 안 끝났습니다! 주말이 끝나면 제 마지막 학기의 첫날이 시작됩니다. 약간 제 생일 (12월 1일) 같네요. 끝의 시작. 빼곡한 마지막 장이 될 것 같습니다. 20년이 넘는 학교 생활을 통틀어도 이렇게까지 개강을 기대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또 괜히 혼자 설레서 마음이 앞서다가 실수하면 안 되겠지요. 유종의 미를 잘 거둘 수 있도록, 어른스럽게 잘해보겠습니다.


계속 실험 결과 보며 코드도 수정하느라 그런가, 이 글 하나 쓰는데 벌써 아침이 시대처럼 밝아옵니다. 학위 논문 제출 기한이 제가 염두했던 것보다 한 달은 이르게 잡혀서 진짜로 집중해야 하거든요. 이렇게 공개적으로 8월 졸업을 알렸으니,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한 번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졸업 축하합니다, 이런 댓글은 당장은 사양하겠습니다. 우선 빡센 응원 부탁드립니다!ㅠㅠ 모두 제 몫까지 안녕하시기를!!




P.S. 끝으로.. 그래도 축하할 일 하나가 있어서 공유합니다. 고등학교 은사님이 연결해 주셔서 제가 좀 오랫동안 지켜보고 응원하던 친구가 있는데, 이번에 서울대학교 25학번이 되었습니다. 많이 보태준 건 없지만요. 이 친구한테도 감사 문자를 받고, 어머님께도 마음 담긴 메일을 받아서 바쁜 와중에 모처럼 힘이 났답니다. "카이스트를 온 것은 실수였다" 글에서 "내 앞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꿈을 이야기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가 그 꿈에 닿을 수 있게 조금의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래도 카이스트생 형으로서 보냈던 응원이 좋은 결실로 이어지니, 이 친구의 성취가 저에게도 큰 승리로 와닿습니다. 너무 고맙고 축하해.


P.S.2. 서울대 25학번 친구랑도 호형호제하며 잘 지내는데... 25학번이랑 잘 지내는 거 거뜬하잖아?!요?? 제발요?


동선이.jpg ㄷㅅ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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