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시 원하다.
인용구
하늘이 높아지면
그 사이 공간을 채우는 건 허무려나
말들이 살찐다면
그 무거운 말들은 내 맘을 허물려나
단풍과 낙엽은 찰나여서
가을이 오는 것을 보지 못했어
가을은 흔적의 시간
내게도 여름이 있었다는 증거
오늘은 서점에 갔다가
우리의 흔적을 발견하곤
조금 쓸쓸해졌네
네가 즐겨 읽던 시집의 제목
늦었지만 그 의미를 알아보려 해
이것 봐, '내가 당신을'이라 쓰고
나와 당신을 쓸어내니 가을이 남잖아
가을, 우리가 없는 시간
가을, 시 원하다
가을은 이별처럼 순식간에 찾아온다. 뜨거움이 한풀 꺾였다고 생각할 때 즈음, 방심하고 있던 찰나에 가로수는 푸르름과 이파리에게 작별을 고한다. 어느덧 쌀쌀해진 밤공기에 빠르게 걸음을 옮기다가 발길에 채이는 검은 낙엽에 잠시 쓸쓸해졌다. 전화를 걸고 싶은 이름들이 몇 개 생각났지만 굳이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왠지 없던 용건이라도 지어내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
그래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인 듯싶다. 꼭 내가 아무 말 않더라도 책장을 펼치면 작가가 말을 걸어주니까. 누군가가 써 내려간 고독의 흔적을 눈길로 쓰다듬다가, 의미를 알 수 없는 글귀 앞에서 한참을 머물러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무 페이지나 붙잡고 엉엉 울고 싶은 날, 올려다본 하늘은 아득히 멀기만 했다.
내게 겨울은, 겨우 우울(겨울) 글을 올렸을 때, 한 구독자 분이 계절 詩리즈를 만들면 재밌겠다는 댓글을 달아주신 적이 있다. 내가 쓴 모든 글 중에서 딱 4개를 꼽으라면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 계절의 이름을 활용한 말장난이 들어간 시를 모아보니 봄은 나는 꽃인가, 봄(춘곤증), 가을은 이 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여름 글이 없는데, 기왕이면 그 4개를 모아볼 때 여름 시는 그냥 노골적인 사랑 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일단 연애부터 해야겠지. 시 쓰는 건 정말로 어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