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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Sep 17. 2022

천고마비

가을, 시 원하다.

천고마비

                            인용구

하늘이 높아지면

그 사이 공간을 채우는 건 허무려나

말들이 살찐다면

그 무거운 말들은 내 맘을 허물려나


단풍과 낙엽은 찰나여서

가을이 오는 것을 보지 못했어

가을은 흔적의 시간

내게도 여름이 있었다는 증거


오늘은 서점에 갔다가

우리의 흔적을 발견하곤

조금 쓸쓸해졌네

네가 즐겨 읽던 시집의 제목

늦었지만 그 의미를 알아보려 해


이것 봐, '내가 당신을'이라 쓰고

나와 당신을 쓸어내니 가을이 남잖아

가을, 우리가 없는 시간

가을, 시 원하다




    가을은 이별처럼 순식간에 찾아온다. 뜨거움이 한풀 꺾였다고 생각할 때 즈음, 방심하고 있던 찰나에 가로수는 푸르름과 이파리에게 작별을 고한다. 어느덧 쌀쌀해진 밤공기에 빠르게 걸음을 옮기다가 발길에 채이는 검은 낙엽에 잠시 쓸쓸해졌다. 전화를 걸고 싶은 이름들이 몇 개 생각났지만 굳이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왠지 없던 용건이라도 지어내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

    그래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인 듯싶다.  내가 아무  않더라도 책장을 펼치면 작가가 말을 걸어주니까. 누군가가  내려간 고독의 흔적을 눈길로 쓰다듬다가, 의미를   없는 글귀 앞에서 한참을 머물러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무 페이지나 붙잡고 엉엉 울고 싶은 , 올려다본 하늘은 아득히 멀기만 했다.




   내게 겨울은, 겨우 우울(겨울) 글을 올렸을 때, 한 구독자 분이 계절 詩리즈를 만들면 재밌겠다는 댓글을 달아주신 적이 있다. 내가 쓴 모든 글 중에서 딱 4개를 꼽으라면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 계절의 이름을 활용한 말장난이 들어간 시를 모아보니 봄은 나는 꽃인가, 봄(춘곤증), 가을은 이 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여름 글이 없는데, 기왕이면 그 4개를 모아볼 때 여름 시는 그냥 노골적인 사랑 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일단 연애부터 해야겠지. 시 쓰는 건 정말로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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