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조정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
남자친구와 소위 말하는 장기 연애 중이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과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기가 조심스럽지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남자친구를 만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나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네가 웬일로? 꽤나 의외라는 반응.
만남을 이어간 경험 자체가 적고, 그마저도 반년 이상 관계가 지속된 적이 없었다. 연인은 서로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편이 되어주다가도, 헤어지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고 하던데. 나는 상대에게 그만큼 의지해보지를 않았으니, 이별이 슬프긴 해도 일상이 무너질 정도의 상실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헤어짐의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내가 가장 쉽게 가져다 썼던 말은 서로 맞지 않는다였다.
"내가 아무리 좋게 이야기해도 사람이 안 변하더라. 굳이 안 맞는 사람끼리 관계를 이어가면서 상처 줄 필요는 없잖아."
누군가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낀다면, 그렇게 되기까지 서로 간의 선을 정의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각자 수용할 수 있는 선을 파악하면서 때로는 요구하고 때로는 양보하고.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살아오면서 제법 경험치가 쌓였을 텐데.
유독 연인 간의 선을 정의하는 일은 뭐랄까, 깔끔하게 딱 맞아떨어지는 법이 없다.
비교해 보자면, 가족 간에는 그 선이 비교적 명확하다. 물론 시행착오를 겪을 때면 내 마음도 다치고 나 역시도 상처를 많이 입혔다. 그렇지만 나부터가 가족의 끈을 놓을 생각이 없었고 다른 구성원들 역시 그럴 거란 믿음이 있었기에, 오랜 세월에 걸쳐 좀 더 적극적으로 영역 다툼을 하며 선을 조율해 올 수 있었다.
친구 간의 선도 다른 의미로 뚜렷했다. 나와 전부 꼭 맞지는 않더라도, 저마다 맞는 부분이 다르게 존재한다. 잘 맞는 친구에게서 잘 맞는 부분을 충족하면 그뿐. 인간관계가 넓지 않은 나에게는 한 명 한 명이 대체불가능한 존재이지만, 한 사람에게서 모든 부분이 다 들어맞길 기대하지 않는다.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안 맞는 부분은 서로 조심하면 그만이다. 그조차 어려운 사람은 인연을 흘려보내는 수밖에.
그런데 연인 간에는, 특히 새로 시작하는 연인 간에는 지금껏 인간관계에서 대입해 온 공식이 잘 통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거란 믿음이 채 생기기도 전, 내가 아닌 환상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구태여 그 환상을 일찍 깨뜨려주는 게 과연 좋은 선택일까.
그와 내가 맞지 않는 부분에서 결핍을 느끼더라도 다른 사람이 대신 채워줄 수도 없다. 한번 연인으로 관계를 정의 내리고 나면 그 후에는 만남을 지속하거나 정리하거나, 둘 중 하나다.
물론 이별 후 재회는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하지만 재회 후 안정된 연애를 지속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한번 이별해 본 연인은, 상대가 언제든 자신을 떠날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이전만큼 관계에 대한 신뢰와 안정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배의 노력과 인내가 요구된다.
그만큼 연인 간의 선을 정의하는 일은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 과거에 나는 해결책을 찾지 못했고, 임시방편으로 이해심 넓은 사람인 척 구는 것으로 무마해보려 했다. 괜찮지 않아도 구태여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보편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안 괜찮은 상황이 맞는지 자꾸만 검열하고 확인받고 싶어 했다.
그렇게 몇 번의 필터를 거쳐 곱게 정제된 언어로 상대에게 전달했을 때, 안타깝게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부터가 솔직하지 못했던 탓이 크다. 연인 간에 필터가 많다는 게 그리 건강한 신호는 아니니까. 어쨌거나 그런 과정을 혼자서 몇 번씩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단순 명료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사람은 나랑 안 맞는구나.
나중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엉뚱한 결론으로 튀기도 했다.
나 같은 사람은 혼자 지내야 돼. 연애 자체가 안 맞아.
세상에 나와 온전히 맞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 앞으로도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편 따위의 추상적인 말에 공감할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기대감을 내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내던 시절,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또래 중에 꽤나 성숙한 편이라고 자부하며 은근슬쩍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데 익숙했던 나의 작고 오만한 세계를 좋은 의미로 깨뜨리고 확장시켜 준 사람.
남자친구와 오래도록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뼈저리게 통감한 사실이 있다. 나는 타인을 통제할 수 없다. 무작정 수용하고 양보하라는 뜻은 아니지만, 내가 불완전하고 미숙한 존재이듯 그 또한 서툰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우리의 관계가 소중하기에 나는 이 관계를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다. 그래서 그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말이나 행동 따위의 노력을 통제하고 또 통제한다.
우리는 장기 연애 중이지만, 여전히 유치한 문제로 다툰다. 함께 나이 들어가며 처한 상황과 입장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갈등 요소가 생긴다. 예나 지금이나 연인 간의 선을 조정하는 일은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 그렇지만 한 가지 믿음은 있다. 우리는 둘만의 선을 조정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애쓸 것이다. 설사 선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지치는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그 직전까지도 서로가 애썼을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