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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비버 Oct 23. 2024

[뜨카] 하지 못한 말

롯데리아에서 납골당까지

나는 원래 햄버거를 잘 먹지 않는 편인데, 신메뉴가 나왔다는 소식에는 괜히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용기가 생기는 편이기도 하다. 늘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 브랜드, 롯데리아에 가서 키오스크 앞에 섰다. 기대했던 신메뉴를 선택하고 포장 옵션을 눌렀는데 비닐봉지를 선택할 것인지 팝업이 떴다. 내가 좀 불편하더라도 쓰레기를 줄이는 편이 좋겠다 싶어 '비닐봉지 필요 없음' 버튼을 누르고 결제를 마쳤다. 계산까지 하고 햄버거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비닐봉지가 없으면 가방에 기름이 번지는 것은 아닐까- 아차 싶었지만 집에서 가까우니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이내 나 자신을 안심시켰다.


오랜만에 가본 롯데리아에는 정신없이 쌓이는 주문에 분주한 직원들도 보이고, 한층 더 복잡해진 키오스크 화면도 보이고, 감자튀김을 수북이 쌓아놓고 웃는 얼굴로 대화를 이어가는 가족의 모습도 보였다. 그 시끌시끌한 웅성거림에 방해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주문한 메뉴가 나오면 그것들을 가방에 넣고 빠르게 가게를 나갈 계획이었다. 드디어 천장에 걸린 모니터에 내 주문번호가 떴고 나는 음식을 픽업하는 데스크 앞에 서서 내가 주문한 메뉴를 눈으로 찾고 있었다. 아니 이게 웬걸, 생각보다 여러 메뉴가 동시에 나오는 바람에 정확히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내가 주문한 메뉴인지 한번에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데스크 앞에서 잠시 허둥대고 있자 맞은편에 서 계시던 직원분이 내 번호를 부르며 동시에 손끝으로 햄버거에서 감자튀김을 지나쳐 음료까지 총 세 개의 메뉴를 가리켜 주셨다. 그분의 손길을 눈으로 좇으며 나는 "이렇게요?"라고, 내 앞에 놓여 있는 3개의 종이봉투가 내가 주문한 메뉴가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려고 했다. 그 순간 그 직원분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아, 봉투에 담아 드릴까요?" 하고 내게 다시 물어왔다. 떨림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나는 황급히 "아니에요."라고 대답하고 햄버거를 챙겨 가방에 넣고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왜 직원분이 내게 물어왔을까 생각했는데, 그 답을 찾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총 3개가 내가 주문한 메뉴가 맞는지, 그럼 내가 이것을 전부 가져가면 되는 것인지'를 묻고자 '이렇게(3개)요?'라고 말했던 것인데, 그녀는 나의 말을 '이렇게 봉투에도 안 담아두고 가져가라는 거예요?'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 순간 명확하게 내 뜻을 전달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기도 했고, 내가 얼마나 이상한 손님으로 느껴졌을까 싶어 민망하기도 했고, 그동안 그렇게 의사를 표현한 손님이 많았던 것 같아 그런 반응을 한 그녀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녀 입장에서는 내가 분명히 주문서에 봉투 없음으로 선택해놓고 메뉴가 나오고 나서 뒤늦게 봉투를 달라고 말하는 해괴한 손님이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이날의 일은 기억도 나지 않는 한순간이었을 거고, 나 역시도 조금 더 말을 조심해야겠다는 살짝의 교훈만 남겼을 뿐 금방 잊어버린 순간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된 일이 있었다. 돌아가신 친척의 납골당에 갔을 때였다. 6월의 맑고 푸른 녹음 덕분인지 죽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던 그곳에서 사람들이 놓고 간 화분과 꽃다발을 보게 됐다. 납골당 안에 둘 수 없는 부피가 큰 것들이 건물 가운데에 한데 모여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에는 먼저 떠나간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이 아기자기한 편지지에 남겨져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할아버지, 삼촌, 이모부... 편지를 전하고 싶은 대상은 각기 달랐지만 대체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을 향한 말들은 비슷비슷했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 잘 지내라, 그립다...


내 옆에 있는 소중한 가족에게, 매일 만나는 직장 동료에게, 오랜만에 소식이 궁금한 그 시절 동창에게, 나는 몇 번이나 저런 따뜻한 말들을 해주었던가? 언젠가는, 나중에, 때가 되면, 말하지 않아도...이라는 말들로 계속 나의 진심을 덮으려고 했던 지나온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동시에 몇 개월 전 롯데리아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때 만약 그 직원분께 '봉투를 달라고 말씀드린 게 아니라, 제가 주문한 메뉴가 이렇게 3개가 전부 맞는지 여쭤본 거예요. 감사합니다.'라고 미처 못다 한 말을 했더라면 그분은 집에 가는 길에 조금은 덜 피곤했을까? 오늘 하루도 손님은 많았지만 기분은 좋았어-라고 퇴근 후 집에 가서 엄마에게 조잘조잘 그날 일했던 이야기를 늘어놓았을까?


지나간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놓쳐버린 기회는 영영 붙잡을 수 없다. 그때 그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아니면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걸, 하는 순간 역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마음속에 담아 두고 표현하지 못한 말은 입 밖으로 낼 기회가 있을 때 말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곤란하거나 불쾌하게 했을 때는 너무 오래 지나지 않았을 때 먼저 사과해야 한다. 나는 롯데리아에서 나를 응대했던 직원분을 다시 만날 수 없고,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 가족들은 납골당에 고이 잠든 고인에게 다시는 목소리를 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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