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붕? 슈붕? 난 껍붕

채우지 않아도 좋은. 채우지 않아야 좋은.

by 정채린

나는 속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붕어빵이 좋아.

하지만 속이 없는 붕어빵은 아무 데서도 팔지 않지.
만약 붕어빵을 내 맘대로 주문할 수 있다면, 진짜 아무것도 안 넣고 구워달라고 하고 싶은데 붕어빵 가게에서는 내 주문을 받아주지 않더라고.

붕어빵 사장님들이 거절하는 이유는 "한 판을 돌려 가면서 굽기 때문에 어떤 게 속이 들었고, 어떤 게 속이 안 들었는지 모른다는 거야. 그래서 “그럼 한 판 다 살게요.”라고 말했는데도 거절당했어.
아마 "귀찮아요."의 예의 바른 버전 대답이겠지.

그래서 나는 항상 붕어빵을 사면, 일단 머리를 먹고 팥을 짜서 버리고, 그다음 몸통과 꼬리를 먹어.
붕어빵에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건 아니야. 물론 팥이나 슈크림에도.

내가 붕어빵 말고 공(空)어빵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해.
그냥, 붕어빵은 속을 뺀 겉 빵이 맛있어.

그 바삭바삭하고 담백하면서 적당히 달큰한, 겉은 과자 같은데 속은 빵 같은 질감이.


나는 달콤함 대신 바삭함을 기대한다

갓 구운 붕어빵 봉지를 받아 들면 따뜻해서 기분이 좋아.

그리고 봉투를 열면 바삭하게 구워진 겉면에서 고소한 밀가루와 달걀의 향이 더운 김과 함께 코로 훅 다가와. 그 고소함을 느끼면서 손을 뻗어 붕어빵을 조심조심 꺼내 입으로 가져가.

한입 베어 물면, 얇고 바삭한 껍질이 사르르 부서지면서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데
작지만, 머리, 몸통, 꼬리마다 식감이 조금씩 달라서 다양한 재미를 주잖아.

추운 겨울, 호호 불며 따끈한 붕어빵을 한입 베어 물 때 퍼지는 온기와 달콤함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야.
붕어빵은 두 마리만 사면 안 돼. 집에 가면서 다 먹어버리니까.
최소한 다섯 개는 사야 해.
그리고 식은 붕어빵을 데워 먹을 땐 전자레인지 말고, 에어프라이어를 예열한 다음 살짝 돌려야
갓 나온 따끈 바삭한 식감이 살아나.


나는 속 없는 붕어빵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어. 그 바삭한 식감을 집에서 재현해 보려고 노력했지.

가게에서 붕어빵 만드는 걸 잘 살펴보니, 붕어빵은 반죽이 되게 묽더라고.

바로 그 묽은 반죽이 바삭함의 핵심인 것 같았어.
먼저, 인터넷에서 여러 개의 레시피를 찾아 각각의 레시피대로 집에서 구워봤는데 전부 실패했어.

집에서 구우면 그 파삭파삭 가벼운 질감이 아니라 묵직한 핫케이크처럼 돼버리더라고.
내가 기대한 건 바삭하고 가벼운 붕어빵의 식감인데, 무거운 빵이 돼버리다니 너무 실망스러웠어.

그렇지만 이 정도에서 포기할 내가 아니지. 그래서 방법을 바꿨어.

요리 인플루언서들의 레시피를 찾는 게 아니라.

시판 붕어빵믹스를 찾아 그중에서도 업소용 대용량으로 판매하는 가루의 함량을 뒤져봤어.
마치 '밀가루 탐정'에 빙의한 기분으로, “난 붕어빵계의 셜록이다!”를 외치면서,

다행히도 한국에서는 식품을 인터넷에서 팔 때 전자상거래법 때문에 제품 성분을 표기하게 되어 있거든.
그래서 성분을 하나하나 분석한 결과, 바삭함을 위해 꼭 필요한 세 가지 재료를 알아냈어.


첫 번째, 버터나 식물성 기름 대신 쇼트닝을 써야 해.
두 번째, 팽창제로는 집에서 쓰는 베이킹파우더만으론 부족해.

세 번째. 옥수수 전분이 꼭 들어가야 해.


대부분 사람은 그냥

“음~ 붕어빵 먹고 싶다.” → 붕어빵 가게로 직진!"인데, 나는

“공허한 붕어빵의 바삭한 껍질만을 원한다.” → “이 반죽은 쓸데없이 꽉 차 있어.” →

“전자상거래법을 조사한다.” → “쇼트닝 판매처를 찾는다.” 까지 간 거지.


쇼트닝은 인터넷에서 3천 원밖에 안 하는데, 배송비도 3천 원이더라.
하지만 내 ‘속없는 붕어빵 껍질’에 대한 집착은 그 돈을 낼만큼 충분한 값어치가 있었지.

생각해 봐. 나는 붕어빵 가게에 가서 “한 판을 다 살게요”라고 말한 사람이란 말이야.
그리고 결국! 해냈어! 그 바삭함을. 진짜로.

난 항상 그래왔어.


내가 원하는 게 있다면, 남들이 뭐라고 해도, 사람들이 전부 그게 옳다고 외쳐도
내가 원하는 것만 남기고, 원하지 않는 것들은 전부 빼버렸지.

다른 사람들에게 붕어빵의 달콤한 팥과 슈크림은 달콤한 즐거움일지 몰라도,
내가 붕어빵에서 원하는 건 그런 단맛이 아니었거든. 달콤한 걸 원했다면 다른 걸 먹었겠지.

내가 붕어빵에서 원한 건, 그저 담백한 껍질뿐이었어.
원하는 것만 남기고, 원하지 않는 건 과감하게 버리는 결심과 알기 어려운 길거리 포장마차용 레시피를 블로그와 쇼핑몰을 뒤져가며 찾고, 붕어빵 틀도 사서 직접 구워 입에 넣는 실행력.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지인들에게 자랑하고, SNS에 올리고도 모자라 브런치에 구구절절 써서 글로 올리는 관종력.

보통은 '속없는 붕어빵을 먹었다.'에서 끝내겠지만, 나는 '자아를 재확인하며 사회적 규범을 해체하고, 질감의 본질을 구현하고, 인간 존재의 목적을 SNS에 기록했다.'고 그럴싸하게 포장할 줄 알지.


《겉만 먹는 사람 - 붕어빵을 통한 현대인의 욕망 해체》2025. SORA 외 혼합재료.

작품《겉만 먹는 사람》은 개인의 기호와 선택이 하나의 예술적 행위로 전환되는 강력한 기호에서 출발한 조형 행위이다. 흔히 '단팥'이나 '슈크림'으로 가득 찬 붕어빵의 고정 관념을 해체하고, 입맛에 맞는 온전한 외피의 미학을 추구했다. 본래 대중적 음식인 붕어빵은 일반적으로 팥이나 슈크림으로 채워진 채 제공되지만, 이 붕어빵은 완전히 비어 있다. 이는 단순한 음식의 변형이 아닌, ‘비움’ 그 자체를 선택의 결과로 드러낸 예술적 제스처다.

이 붕어빵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굳이 채우고 있는가?”



길거리 스타일 붕어빵 레시피

- 재료

. 중력분 밀가루 360g
. 옥수수전분 40g
. 설탕 60g
. 쇼트닝 20g
. 탈지 분유 20g
. 설탕 2큰술
. 소금 4g
. 베이킹파우더 6g
. 베이킹소다 6g

. 바닐라 익스트랙 약간
. 우유 300ml
. 계란 2개
. 팥앙금 또는 원하는 속재료
. 식용유(틀에 바를 용도)


- 만드는 방법

. 볼에 밀가루, 옥수수전분, 설탕, 분유, 소금, 베이킹파우더, 베이킹소다를 넣고 잘 섞는다.
. 쇼트닝을 넣고 손으로 고루 섞어준다.
. 우유, 계란, 포도당 시럽, 바닐라 익스트랙을 넣고 부드럽게 섞어 반죽을 만든다.
. 반죽은 숟가락으로 떠서 흐를 정도의 농도가 적당하다. 필요하면 물로 농도를 조절한다.
. 붕어빵 틀에 식용유를 얇게 바르고 중불로 예열한다.
. 반죽을 틀에 2/3 정도 붓고, 팥앙금을 올린 뒤 다시 반죽을 덮는다.
. 틀을 닫고 앞뒤로 3~4분간 노릇하게 구워준다.
. 완성된 붕어빵을 꺼내어 식힘 망에 올려 바삭함을 살린다.

* 절대로 어떤 재료도 빠지거나 대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 그냥 집에서 만든 핫케이크 맛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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