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망한 케익의 명복을 빕니다

내가 굽고, 무너뜨리고, 먹어본 관계들에 대하여

by 정채린

모든 빵은 시간과 열로 완성된다. 인간도, 관계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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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도전은 시폰케이크였어. 홈베이킹 초보자들에게 가장 쉽다는 그 달콤한 거짓말을 나는 그대로 믿었지. 내 손에는 진짜 핸드믹서가 아니라, 블렌더에 억지로 끼운 가짜 믹서가 들려 있었어.

차가운 흰자의 비밀도 모른 채, 나는 부엌에 서 있었지.

단순한 재료들을 보며 이 게임의 승자는나일거라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다는걸 알게 되는데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어.

계란, 밀가루, 설탕. 단 세 가지 재료로 만드는 게 오히려 더 어렵더라.

내가 만든 건 케이크가 아니라 계란찜이었어. 아주 좋게 말해서 계란찜이지.

이걸 빵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내 핸드폰이 41인치 와이드 모니터라고 우길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내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


케이크를 구웠는데 떡이 나왔습니다!


시폰케이크 다음에 도전한 건 바로 파운드케이크야, 파운드케이크를 굽기 전, 나는 성공담과 함께 실패담을 같이 찾아봤어.

인터넷에서 파운드케이크를 망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한 조각의 케이크에 좌절과 배움이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돼. 실패의 흔적이 단면에 확실히 새겨지지.

아무리 실패를 염두해두었다고 하더라도, 처음 파운드케이크를 구워본 나는 더 당황했어. 구움색이 너무 진하게 나왔어. 안은 너무 노랗고, 식감이 거칠고 퍽퍽해. 시럽도 넣어봤는데 해결이 안 돼. 빵 높이도 낮고, 이건 누가 파운드떡이라고 부르겠다고 해도 내가 거절할 수가 없을 그런 결과였어.

기포 포집이 충분했는지, 베이킹파우더를 썼는지, 오븐 온도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집요한 원인 분석이 따라오지.

나는 반죽기로 크림 질감이 날 때까지 맘껏 치댔어. 오븐 온도는 160도를 유지하려 했는데, 내 오븐은 실제로 더 낮았던 것 같아. 난 예열의 중요성을 몰랐거든, 이건 아주 최근에야 알았어. 그래도 온도를 높게 설정해서 떡짐 현상은 많이 개선됐지만, 완벽하지는 않았지.

달걀을 섞다가 분리가 나고, 부드러운 크림 상태가 되었는데도 케이크가 부스러졌지. 여러 시도 끝에 원하는 질감에 가까워졌다고 고백하지.

실패의 순간은 때로 ‘단면의 그라데이션’처럼, 겉과 속이 다른 결과로 남아. 밑은 진하고, 위는 연하고, 탄 느낌이 나서 총체적 난국이더라.



실패에서 배움으로

이렇게 파운드케이크를 망쳤어. 실패할 때마다 나 자신을 탓하고, 레시피를 다시 뒤적이면서 오븐 앞을 서성이게 되지. 그래도 주저앉지는 않지. 실패는 결국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니까. 여러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이론을 더 탄탄히 다져야겠다고 마음먹게 되더라.

파운드케이크를 망친 내 이야기는, 실패의 쓴맛을 삼키고 다시 달콤한 성공을 꿈꾸는, 집요하면서도 따뜻한 기록이야. 오늘도 오븐 앞에서 ‘이번엔 꼭 성공하리라’ 다짐하면서 반죽을 젓게 되지. 실패는 나에게 더 깊은 이해와 더 단단한 자신감을 남겨주지. 그리고 나는 알아. 파운드케이크의 길이 멀고 험난해도, 그 길 위에서 나도 조금씩 달콤해지고 있다는걸.



제누와즈와 내 마음의 경계

나는 제누와즈도 네 번을 실패했어. 그리고 이제는 진짜 다시는 케이크를 굽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어.

제누와즈든, 시폰케이크든, 뭐 어떤 케이크든, 그런 종류들은 그냥 사서 먹는 거라고. 이건 집에서 만드는 게 아니야. 나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어쩌면 그게 유일하게 내 마음을 지키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거 있잖아. 집에서 만들 수 없는 것들. 휴대폰을 집에서 조립하는 사람은 없잖아. 텔레비전도 마찬가지고. 새우깡 같은 것도. 그런 건 그냥 공장에서, 전문가들이, 만들어내는 거지.

내 손으로 만들 수 없는 것, 아무리 애써도 내 주방에서는 절대 탄생하지 않는 것. 케이크는 내겐 그런 존재야. 이제 나는 케이크를 볼 때마다, 그 달콤한 단면 뒤에 숨겨진 내 실패의 기억들이 떠오르지만, 동시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해. 집에서 만들지 않는 것들은 그냥 사서 맛있게 먹으면 되는 거니까.

베이킹으로 배운 인간관계의 지혜

어떤 인간관계는 시폰케이크 같아. 처음엔 폭신하고, 말랑하고, 가벼워서 괜히 기대하게 돼.

겉으론 다정하고 부드러워 보여도, 그 속은 머랭처럼 허약하고, 기초가 불안정하지.

말 한마디, 작은 온도 변화에도 금방 주저앉아버리는 그런 관계.

그래서 나는 이제 겉보기 부드러움에 쉽게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해. 시폰케이크처럼, 기대만 부풀다가 허무하게 꺼지는 사이들이 있더라고.


파운드케이크 같은 관계도 있어. 겉으론 기본만 지키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섬세함이 전부인 사이. 약속, 말투, 시간, 작은 것 하나하나가 꼭 맞아야만 부드럽게 이어져. 비율이 조금만 어긋나면, 퍽퍽하고 딱딱해져서 씹히지도 않아. 그래서 나는 파운드케이크처럼, 정직하고 균형 잡힌 마음으로 관계를 대하려고 노력해. 아니면… 그냥 떡이 되어버리더라.


제누와즈는 아무나 만들 수 없는 빵이야. 인간관계도 그런 게 있지. 혼자 아무리 애써도, 공기와 타이밍, 섬세한 손길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결국 실패하고 만다. 치즈처럼 뭉치고, 계란찜처럼 질퍽해지는 그런 사이. 그래서 나는 이제 깨달았어. 어떤 관계는, 혼자 굽는 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쿠키는 실패해도 나름대로 맛있더라. 인간관계도 그렇지. 망했다고 생각해도, 그 사람의 어떤 면은 내 안에 남아서, 시간이 지나면 그리워지기도 해. 그래서 나는 쿠키 같은 관계를 소중히 해. 실패해도 쓴맛은 남지 않으니까.

그리고, '사서 먹는 케이크' 같은 사람도 있다. 가까이서 만들면 안 되는 사이. 그냥 카페에서, 적당한 거리에서 맛보는 게 더 좋은 그런 관계. 좋은 사람인데, 나랑은 안 맞는 거지. 그걸 통해서 모든 사람을 내 손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됐어. 가끔은 관계에도 테이크아웃이 필요하다는 걸.

그래도 여전히 홈베이킹을 하고 있는걸 보면, 역시 직접 만든 관계가 최고긴 해.




이번 글에는 레시피가 없습니다.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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