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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bin Chang Jul 30. 2021

가치제안 (Value Proposition)

Ep.9: 가치제안 (Value Proposition)


박수가 한 차례 지나가고 나자, 장아라는 김필립이 그려온 스왓과 4C를 보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좋아. 이제 잘못한 점이랄까… 정확히는 개선이 필요한 점. 여기 스왓의 강점하고 약점을 보자고. 처음 써왔던 강점에는 줄을 그었으면서 약점은 그대로 남겨 두었는데, 여기에 대한 네 생각이 듣고 싶어.”


김필립은 장아라가 가리키는 부분을 같이 들여다보았다.



“응, 강점은 쓰다 보니까 비즈니스 센스 같은 건 사업에 도움이 안 될 것 같더라고. 아무래도 좋은 얘기인 것 같아서 빼버렸어. 그런데 자본이 없거나 기술이 없는 건 직접적으로 영향이 있을 것 같아서 그냥 둔 거야.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런 약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는 잘 안 떠오르길래 아까 보충해야 할 것 같다고 한 거고.”

“음, 그래. 보통 해답이 명확하게 안 나올 경우에는 분석이 잘못되었을 때가 많이 있지.”

“분석? 이거 말 그대로 그냥 쓴 건데…?”

“그렇게 하나하나 나눠서 쓰는 것이 바로 분석의 시작인 거라고. 자, 여기 봐봐. 디자인이나 브랜드, 요가 유행, 경쟁업체. 다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지?”

“어… 요가복 이야기지?”

“그럼 비즈니스 센스, 논리적, 자본, 기술, 이것들은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지?”

“어…어! 그래, 그건 나에 대한 이야기네.”

“그래, 너 혹은 네 회사 이야기야. 두 개를 막 섞어놓고 이야기를 하려니까 실마리가 안 보이는 거지. 딱히 상품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가야 하고 회사 이야기는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두 개를 섞어 놓으니까 이야기가 안 풀리는 거라고.”

“그럼 이걸 어떻게 해야 되지?”

“정말 비즈니스에 크게 영향이 있을 것 같으면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추가해서 분석할 필요가 있겠지. 그렇다면 논리적이네 이런 얘기도 당연히 다시 들어가야 되고, 기회나 위협에도 ‘4학년이고 학점을 다 채워서시간이 많다’라든지 ‘취업공부를 제대로 안 하면 졸업하고 백수 된다’라든지 이런 걸 넣어야지 얘기가 된다고.”


장아라는 김필립에게 이야기하며 태블릿에 새로운 스왓을 슥슥 그려나갔다.



“자, 네가 생각해 본 걸 스왓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되겠지. 그런데 결론이 뭐야? 넌 이미 취업준비하는 거보다 창업하기로 결심한 거잖아. 자본도 기술도 없는데. 결론 난 얘기 다시 해서 뭐해? 그냥 빼버려야지.”

“어… 그건 그렇네… 하지만 진짜 자본도 기술도 없으면 사업도 힘든 거 아니야? 뭔가 생각해둬야 하는 것 아닐까…?”   

“김필립. 시장은 큰 바다 같은 거야. 바닷속에 고래가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면 새우가 살아남는 방법도 있어. 자본이 많다고 다 이기는 것도 아니고 기술이 있다고 다 이기는 것도 아니야. 우리나라 인구는 5천만 명이나 있고, 그중에 만 명만 잡아도 이미 대박이라고. 오천 분의 일, 0.02%. 그 사람들 한테 만 원씩 받고 팔면 매출 일억 원이네. 그런 수준의 이야기야. 너를 무슨 시장점유율 70%를 잡아야 하는 삼성 같은 대기업이라고 생각하지 마. 그런 걱정 나중에 해도 충분해.”

“어…어, 그래. 듣고 보니 진짜 그렇네…”

“그리고 우리가 자본도 없고 기술도 없으니까 이걸 하는 거잖아. 더 좋은 전략을 가지고 이겨버리면 되는 거지. 지난번에도 말했지? 자뻑이라고. 우리가 파는 상품은 소비자가 살 수밖에 없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그래, 좋아. 그런 마음가짐으로 만들어야지!”

“아니, 마음가짐이 아니라 진짜라니까 그러네. 너 쨍쨍 더운 한여름에 사람 많은 바닷가 모래사장 한복판에서 500원짜리 물을 얼려가지고 천 원에 팔면 사람들이 살 것 같아, 안 살 것 같아?”

“그야 당연히 사겠지. 목마른 사람들이 많을 거고 슈퍼까지 나가려면 귀찮으니까.”

“맞아. 천원이 너무 비싸면 700원에 팔면 되는 거고, 사람들이 현금을 안 갖고 있다면 큐알코드 결재를 만들면 되는 거고, 어찌 됐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살 거라고. 우리가 지금 하는 것도 그거랑 똑같은 거야. 얼음물 대신 요가복이고 모래사장 대신 쇼핑몰인 것뿐이라고.”

“알았어. 밸류 프로포지션(가치제안)이라는 거지?”

“정답. 바로 그거야.”


한 모금 넘기는 맥주의 맛이 왜인지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김필립은 며칠 전 장아라에게 처음 들었던 뜬구름 같은 철학적인 말들이 점점 구체적이고 확실한 느낌으로 자신의 머릿속에 새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약점과 위협 때문에 찝찝했던 마음이 확 개운해졌다.


“좋아. 그러면 이 스왓 하고 4C에서 쓴 것을 바탕으로 여기에 나온 생각들을 네가 그냥 문장 몇 개로 정리를 해봐. 이런 프레임워크는 신경 쓰지 말고 말이야.”

“문장으로?”

“응. 네가 처음에 써왔던 것처럼.”


김필립은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 차분히 자기가 그려왔던 4C와 스왓 분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가 알아낸 것을 노트를 꺼내 정리해 쓰기 시작했다.


최근 다이어트 붐을 타고 홈트레이닝이나 요가를 시작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스포츠 메이저 브랜드를 비롯해 다양한 업체들이 좋은 소재나 편안한 디자인 등을 내세우며 요가복 시장으로 뛰어들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한편, 요가를 처음 시작하는 20대 여성층은 프로페셔널용 브랜드나 몸에 딱 붙는 디자인에 다소 부담감을 느끼고 있으며, 브랜드 선호는 특별히 없는 편이다.

결론: 특별한 브랜드 파워가 없더라도 적절한 디자인을 제공하면 요가에 입문하는 20대 여성층을 대상으로 한 초보자용 요가복 판매기회는 충분할 것으로 기대됨.

 

김필립은 메모를 완성하고 다시 한번 주욱 읽어봤다. 이 정도면 꽤 훌륭하게 쓴 것 같은데? 얼마 전까지 비즈니스 센스가 있고 자본이 없다 같은 얘기만 서너 줄 써놓았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었다.


“좋아. 아주 잘했어. 정말 비즈니스 센스도 있고 논리 정연하다니깐.”

“감사합니다~”

“정말이야. 이제 이걸 근거자료와 같이 제시하면 훌륭한 사업계획서의 도입부가 되는 거라고. 현업 마케터들이 신상품을 기획할 때 매니지먼트 팀한테 발표하는 것도 이런 방식이야. 보통 ‘백그라운드 -> 비즈니스 기회 혹은 문제점 -> 우리의 목표’ 같은 식으로 도입부가 시작된다고. 아무튼 그건 그거고. 자, 그러면 우리가 할 것은 말이지…”


장아라는 태블릿을 꺼내 노트를 사진으로 찍더니 그위에 뭔가를 빨간색으로 적기 시작했다.


· 최근 다이어트 붐을 타고 홈트레이닝이나 요가를 시작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사실

· 이에 따라, 스포츠 메이저 브랜드를 비롯해 다양한 업체들이 좋은 소재나 편안한 디자인 등을 내세우며 요가복 시장으로 뛰어들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사실

· 한편, 요가를 처음 시작하는 20대 여성층은 프로페셔널용 브랜드나 몸에 딱 붙는 디자인에 다소 부담감을 느끼고 있으며, 브랜드 선호는 특별히 없는 편이다. 리서치 가설 / 사실로 확인

결론: 특별한 브랜드 파워가 없더라도 적절한 디자인을 제공하면 요가에 입문하는 20대 여성층을 대상으로 한 초보자용 요가복 판매기회는 충분할 것으로 기대됨. 비즈니스 가설   


“이렇게 써두면, 나중에 복기할 때 어떤 게 가설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어. 만약 요가복이 잘 안되서 포기하고 다른 걸 찾는다면 이렇게까진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이 사업을 해야 한다든가 혹은 규모가 큰 사업이라면 나중에 돌아볼 때 편하겠지. 그리고 여기 쓴 ‘사실’이라는 것은 진짜 사실이어야 돼. 데이터 다 찾아봤지?”

“물론. 정리하면서 나름 인터넷도 뒤지고 정부 자료도 찾아봤다고.”

“그래, 아주 잘했어. 리서치도 스프린트 방식이지만 일단 했으니까 사실로 확인된 거라고 볼 수 있지. 몇 명 한테 물어봤다고 했지?”

“애들 친구의 친구까지 다 긁어모아서 20대 여자만 한 30명 가까이 될걸?”

“그래, 그 정도면 믿을만 하지. 진짜 리서치 하려면 시장에 출시하는 것보다 돈이 더 들 수도 있으니까 예전에 말했던 것처럼 그냥 한번 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자,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끝난 것 같은데?”

  

장아라는 앞에 놓여있던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고 태블릿을 새 페이지로 넘겼다.




가치제안 (Value Proposition)과 가격 경쟁

‘소비자가 원하는데 경쟁사는 제공하지 못하고 나만이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을 나의 상품으로 갖고 있다면, 생각만으로도 정말 기분이 째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첫날밤 장아라도 이야기했지만, 이러한 상품이 반드시 특허를 갖고 있다든지 시장에 처음 등장한다든지 하는 상품만은 아닙니다. 김필립이 고생 끝에 정립한 ‘초보자용 요가복’도 만약 지금 시장에 아무도 ‘초보자용 요가복’이라는 것을 팔고 있지 않다면, 심지어 기존 상품에 ‘초보자용’이라는 스티커만 붙여도 ‘가치제안’을 점한, 자사만이 제공할 수 있는 훌륭한 상품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보통 이후에 일어납니다. 역시 장아라가 이야기한 적 있듯, 이 4C의 ‘가치제안’이라는 것은 스냅샷에 불과합니다. 경쟁사들이 따라 하기 쉬운 가치제안일수록, 자신이 선점한 가치제안의 포지션은 쉽게 무너지겠지요. 그렇게 되면 2편에서 소개했던 '가치 = 이득 – 비용'의 공식에 따라, 비용을 줄여 가치를 높임으로써 ‘가치제안’ 포지션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다시 말해 남들보다 싸게 파는 것만으로 경쟁우위를 유지하려는 가격전쟁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본문에서 장아라가 ‘바다에서 고래가 사는 방법이 있다면 새우가 살아남는 방법도 있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가치제안 포지션을 선점했다면 그것은 ‘순간’ 일뿐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경쟁사가 어떻게 대응 할 것인지 미리 생각하고 그에 따라 어떤 전략적인 대응을 할 것인지 시나리오를 구상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선제공격을 한 사람의 우위를 잊지 마십시오. 선제공격을 한 사람은 언제나 그 다음 수, 다다음 수를 미리 준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작더라도 가치제안을 점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앞서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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